윈터링

by 최원돈


윈터링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최원돈



"어떤 겨울은 햇살 속에 온다."

윈터링(wintering), 동물이나 식물등이 겨울을 견디고 이겨 나는 일이다. 겨울나기, 월동을 말한다.


"원터링이란 추운 겨울을 살아내는 것이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겨울을 겪는다. 어떤 사람은 겨울을 겪고 또 겪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질병이나 사별이나 출산 등으로 찾아올 수도 있고 또는 치욕이나 실패로 인해 찾아올 수도 있다. 겨울나기를 하는 사람은 과도기에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떨어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윈터링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언제나 여름만 있는 인생도 있겠지만 우리만 그런 인생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엄청난 자기 절제와 행운으로 평생토록 건강과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겨울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디쯤에선가 넘어지게 되고,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삶 속으로 들어온다.


캐서린 메이는 영국 위트스터블의 바닷가 마을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수많은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글을 써왔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겨울을 나는 법을 배웠다. 소녀시절 자폐 증세가 있었지만 제대로 진단을 받지도 못하고 한겨울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열일곱 살 때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이를 극복했다.


그녀는 윈터링에 대한 감이 생겨 얼마나 오래갈지, 얼마나 깊을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할지를 알았다. 그러나 겨울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봄이 올 때까지 겨울을 살아낼 가장 편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겨울의 도래를 영원히 뒤로 미뤄두려고 한다. 겨울을 온전히 느끼려고도 하지 않고,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헤집어놓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흑독한 겨울은 때로는 우리에게 이롭게 작용한다. 따라서 무턱대고 겨울을 무의미하고 신경이 마비되는, 의지박약의 나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를 무 시하거나 없애버리려는 시도도 멈춰야 한다. 겨울은 실재하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겨울을 삶 안으로 받이 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겨울나기의 과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법을 배 우는 것. 우리는 겨울은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낼지는 선택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겨울을 겪을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겨울은 불쑥 찾아온다. 이럴 때 우리는 '캐서린 메이'처럼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겨울준비'를 하여야 하며 윈터링을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겨울잠'을 자 두어야 한다.


겨울준비란 무엇인가. 우리는 한겨울을 보내기 위하여 월동준비를 한다. 이를 위하여 가을겆이를 하고 김장을 하고 장작을 패 두어야 한다. 다람쥐가 도토리나 알밤을 묻어 두는 것과 같다. 강촌 구름방에서도 한 겨울을 보내기 위하여 가을겆이를하여 고추 장아찌를 담그고 깻잎이나 콩잎도 된장에 묻어둔다. 그리고 가장 큰일은 김장하는 일이다.

김장 하는 날은 행복한 집 식구들이 모두 모인다. 아내와 나는 목요일부터 김장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밭에 나가 배추를 뽑아 수돗가에 옮겨 아내는 배추를 반으로 잘라 다듬는다. 그리고 큰 다라에 물을 가득 붓고 7년 묵은 소금을 넣고 계란을 띄워 간을 맞추어 놓는다. 그리고 양념에 쓸 파 미나리 양파도 다듬어 둔다. 소금물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기다리면서 무우도 뽑아 무청은 잘라내고 무우만 다듬는다. 소금물이 다 녹으면 배추를 소금물에 담갔다가 건져 큰 고무통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마른 소금을 뿌려 준다. 올해는 김장배추를 100 포기나 심었지만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좋지 않아 번개시장에서 스무 포기나 더 사 왔다. 절인 배추를 하룻밤을 재워 이튿날 깨끗한 물에 헹구어 널따란 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러면 또 밤새 물이 빠져 양념을 버무리기 좋게 된다.

금요일 저녁부터 행복한집 식구들이 모인다. 모두들 직장을 마치고 손주들은 학교를 마치고 한집 씩 모여든다.

토요일은 김장하는 날이다. 삼 남매에 손주까지 열두 명중 둘만 빠지고 모두 열명이 모였다.

이른 아침 화덕 난로에 가마솥을 걸고 장작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면 상큼한 날씨에 모두들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 탁자에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절인 배추를 날라주면 밤새 버무려 놓은 양념을 발라서 제각기 제집 김치통에 담근다. 아내는 양념에 많이 신경을 쓴다. 다려놓은 젓갈과 농사지은 고춧가루를 듬뿍 붓고 다듬어 놓은 양념들을 버무린다. 맛도 중요하지만 양도 적당히 맞추어야 한다. 우선 배추 속에 양념을 발라 통영에서 보낸 굴 하나를 올려 모두에게 맛보게 한다. 나도 한입을 먹고 고개를 끄덕이면 큰딸과 며느리가 맛있다고 하면 그때부터 모두들 김장을 양념을 발라 김치통에 담그기 시작한다. 나는 절인 배추 꼭지를 다듬어서 날라다 준다.

사이사이 막간을 아용해 화덕난로 불을 살펴가며 시래기를 삶아 건져둔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저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며 김장하는 날은 무르익는다. 손주들은 모두 나와 뒷마당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줄넘기 공차기도 하면서 뛰어논다.

그래서 행복한 집 김장 담그는 날은 잔칫날이 된다.

세시쯤 김장을 끝내고 뒷 설거지까지 마치면 아내는 저녁준비를 한다. 딸과 며느리는 아내를 도와 저녁준비를 한다. 나는 사위와 아들과 함께 뒷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식탁을 가져다 놓는다.

아내는 수육대신 큰 맘먹고 한우를 사왔다. 대하 새우와 장어까지 사와 몸보신을 시켜주었다. 숯불에 구운 한우 한 점을 김장 겉절이 싸서 소맥 한잔을 곁들여 마신다. 입 안에서 육즙과 함께 감도는 매콤한 맛은 최고의 행복이다. 하루 종일 힘든 일을 마치고 맛있는 음식을 식구들과 함께하는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한 해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김장을 담그듯 겨울준비를 해야 한다. 인생의 한 겨울을 잘 보내려면 그 또한 겨울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인생의 겨울준비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제각기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힘써나가야 한다. 겨울잠을 충분히 자두어 체력을 비축하고 무엇보다 인간관계에 만전을 다하여야 한다.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배려하고 봉사하는 정신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충실한 사람은 비록 인생의 혹독한 겨울을 만난다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깨달은 삶의 지혜이다.

(2025.11.15 구름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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