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풍경을 지나갈 때

by 최원돈


수필이 풍경으로 건너갈 때

-윤종희의 <마당으로 들여온 봄>을 읽고


최원돈



윤종희 수필가의 두 번째 수필집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책을 손에 든다. 파스텔 풍의 표지화와 캘리로 쓴 제자가 눈길을 끈다.

오페라 색상의 속지를 보니 더욱 놀랍다.

"속지를 구하지 못해 책이 늦어져 속이 상해요." 북토크 출판기념회 때 작가가 한 말이다. '무슨 종이인데 애를 태우는가' 했는데 표지를 보니 고개가 끄떡여진다.

수채화 물감 중 오페라 색은 예쁜 색이다. 이 색을 노랑이나 오렌지 색에 섞으면 더욱 예쁘진다. 하지만 붓이나 물이 깨끗해야 한다. 이 색상은 하늘에도 풍경에도 인물에도 잘 어울려 그림을 살려준다.


"상처가 풍경으로 건너갈 때 상처는 순화되어 그리움이 되고 그 그리움은 나를 성찰하게도 타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도 한다.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움이요, 그리움은 나를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고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길이 되어 준다."


'상처가 풍경으로 건너갈 때 상처는 순화되어 그리움이 된다'는 작가의 말은 이 책의 주제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첫 수필 '마당 안으로 들여온 봄'이다.

"곤줄박이다." 첫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곤줄박이는 박새과의 텃새이다. 참새같이 생겨 머리와 목에 검은 띠가 있고 얼굴은 희고 잿빛 날개 아래 뱃살은 흙색이다. 앙징맞고 귀여운 작은 새이다.


"곤줄박이다. 입춘이 지나면 바람의 무게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새들의 울음소리도 달라진다. 앞마당 정원에선 새들의 식사가 한창이다. 까마귀 두세 마리 홍시를 통째로 물고 앞산 넘어가고, 까치 떼 왔다 간 자리에 오랜만에 작은 새 곤줄박이들 잔치다."


새 봄은 마당 안으로 들어온 곤줄박이로부터 오는가 보다. 산수유 열매가 떨어지고 나면 새들은 먹을게 없어진다. 그럴 때 들깨며 콩을 새들의 먹이로 내어 놓으면 커다란 까치가 와서 모두 먹어치운다. 시어머니는 막대로 쫓아 보지만 헛수고였다. 작가는 이 집을 물려받아 그 옛날 시어머니가 하든데로 하고 있다.


"오늘은 작년에 바빠서 전지를 못한 뒷마당 아로니아 나무부터 잘랐다. 작년에 열매도 많지 않았고 웃자라서 높이는 하늘을 찌른다. 곁가지부터 치려고 전지가위를 대는데 오동통 팥 색깔의 녹두만 한 싹 눈이다.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처럼 우우우 솟아나 있다. 음력 2월 초 황사 주의, 봄은 아이들 세상, 눈물 없던 시절의 아이들 웃음으로 돌아가 그렇게 새봄은 시작되고 있다."


열매가 블루베리를 닮은 아로니아 나무이다. 겨우내 산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벼루었을까. 소소리 바람이 뼛속을 파고드는 이른 봄날 작가는 참지 못하고 전지가위를 들고 나선다.


"전지 하는데 요란한 새 울음소리다. 마당전깃줄에 곤줄박이 세 마리다. 두 마리는 붙어 있고 한 마리는 떨어져 있다. 혼자 앉아 있던 새가 다가가면 같이 있던 한 마리가 요란하게 울며 쫓아 버린다. 멀찍이 떨어졌다가 또 슬금슬금 다가간다. 그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한참을 쳐다보더니 저 둘은 부부일 것이고 한놈은 짝 잃은 수컷인데 아마도 암놈을 넘보는 것 같다는 남편."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던가. 그 아내에 그 남편이다. 그런데 전지는 남편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아내가 전지를 하고 남편은 곤줄박이 제 짝 넘보는 것만 쳐다보는 걸까.


작가는 시어른이 살던 집을 물려받아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전원에서 그들은 오순도순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자연을 들여다보고 들으면 그 속에 사람 사는 법이 보인다. 풍성했던 가을도 지나 새 생명을 위해 안식으로 들어가는 겨울이 바스락거리며 잰걸음으로 오고 있다. 부족하지만 누군가의 가슴에 영혼 한 자락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두 번째 수필집을 펴냈다."


'마당 안으로 들여온 봄'은 비발디의 사계(四季)를 연상하게 한다. 사계 중에도 봄을 노래하듯 경쾌하다.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1악장과 같이 힘차다.

이 수필을 읽으면 이른 봄날 아침을 깨우는 듯하다. 맑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지리란 겨울을 지나 새봄을 알려주는 곤줄박이의 새소리와 같다.


나는 이 수필집 이름을 '수필이 풍경을

건너갈 때'로 불러본다. (20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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