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배우는 삶

by 최원돈


나무에서 배우는 삶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을 읽고

최원돈

해르만 헤세는 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라고 말한다. 또한 나무들이 숲에서 종족이나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면 경배심이 든다. 홀로 서 있으면 더 큰 경배심이 생긴다. 무슨 약점 때문에 슬그머니 도망친 은둔자가 아니라 고독한 사람 같다.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자신을 고립시킨 위대한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헤르만 헤세는 전원을 사랑하여 전원에서 살기를 좋아했다. 그것도 그냥 전원에 묻혀 글이나 쓰며 사는 것이 아니라 몸소 전원을 가꾸며 꽃과 나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소통자이다.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그냥 보지를 않는다. 나무를 통해 인생을 깨닫고 나무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현자처럼 산다. 그의 깊은 사유와 통찰은 니체나 베토벤이 고독을 통해 얻은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와도 같다.


나는 20년 전부터 전원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며 살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모두 듣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나무의 모습을 통하여 희미하게 알아차릴 수는 있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차리려고 애를 쓴다.


소리산 숯가마에 가면 커다란 밤나무가 한 그루 우뚝하게 서 있다. 늠름하고 의젓한 모습을 보노라면 최고의 설교자로 보인다. 또한 고독하고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를 넘어 거룩한 성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참 동안,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도 저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듬직한 모습으로 말없이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게 하고 어지간한 비바람에는 꿈쩍 도하지 않는다. 가을이 되면 알밤을 떨구어 많은 생명을 구휼하고 예쁜 단풍으로 갈아입고 사람들을 낭만에 젖게 한다.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을 맞으며 삭풍을 막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새봄이 찾아오면 새싹을 틔우고 새 삶을 맞는다.


헤세는 그루터기에서 나무의 일생을 관찰하며 그 일생을 알아내고 그 삶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고 통찰하며 삶의 지혜를 깨우치고 있다.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된다는 삶의 근원 법칙을 이야기한다.


"한 그루 나무는 말한다. 내 안에는 핵심이 있어 불꽃이, 생각이 감추어져 있지. 나는 영원한 생명의 생명이다. 영원한 어머니가 나를 잡고 감행한 시도인 던지기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왜 이것을 나무의 직분이라고 말할까. 영원한 어머니가 나를 잡고 감행한 '던지기'는 무엇일까. '자연은 나무에게 알아서 살아가라는 뜻인가?' 이것이 나무의 직분일까. 자연은 나무에 내 던지기를 통해 유일무이한 영원성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무는 자연에 내 던져져 알아서 살아간다는 뜻인가. 그리하여 나무는 '나의 힘은 믿음'이라고 하였을까. "나는 신이 내 안에 깃들어 있음을 믿는다." 우리가 슬픔 속에 견딜 수 없을 때 한 그루 나무는 "조용히 해봐! 조용히 하렴!" 하며 나를 보라며 "삶은 쉽지 않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다며 그런 건 네 안에 깃든 신이 말하게 해 보라고 외친다. 그리하여 "고향은 어떤 곳도 아닌 네 안에 깃들어 있어."라고 말하는가 보다.


나무는 누구를 탓하지도, 의지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기 스스로 신이 깃들어 살아간다고 외치고 있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고 나면 비할 바 없는 기쁨이 된다.

"그것이 바로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이것이 <나무들>을 통해 들은 설교이다.


나도 나무처럼 살고 싶다.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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