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꽃값
-이정원의 수필집을 읽고
최원돈
"언제부턴가 왜 '꽃' 자 쓰려고 하면 겁이 나는 걸까요. 다른 글자는 무난히 써나가다가도 꽃 자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떨려 기어이 틀리고만 기억, 그게 쌓인 까닭일까요.
꽃 이야기가 들어간 수필을 써온 게 오십 년 가까워 오니, 꽃은 이미 애착의 대상이 아닌 때론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가슴을 누르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꽃들 못지않은 아픈 사연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피워 가는, 꽃보다 더 절절한 존재 들 인지도 모르니까요. 꽃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 품은 이야기에 빠져들다가 사람살이에까지 연결을 시키다 보니, 꽃이 들어간 글이 모이기 시작한 거지요.
'그래, 차라리 꽃 수필을, 터져 나오듯이 꽃이 피어 나는 달에 태어난 내 삶의 작업으로. 여기자꾸나. 모자라는 말로 그려내느라 저회들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종당에는 꽃들의 지옥에 끌려가는 경우가 생 기더라도.'
돌아보면 꽃 수필은 글이 아니라 곧 내 삶이었어요. 눈부신 햇살처럼 쏟아져 내리던 한순간의 환희와 때로는 저린 기슴을 안고 혼자 흘려야 했던 핏방울보다 진한 눈물, 그렇기에 한번 글에 담겨진 꽃은 더 이상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었지요. 써내는 사이 그건 이미 나의 일부분이 되어갔으니까요.
거기다 우리의 다양한 삶을 여러 가지 꽃에 비유한 조선 시대의 가객 노가재 김수장의 꽃 사설시조를 대하면서는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어요.
의인화된 열두 종류의 꽃이 초장부터 종장까지 나열되어 있는 그 사설시조를 통해 나와 같은 착상을 한 이가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는 것. 삶이란 아무리 긴 세 월이 흘러도 결국은 거기서 거기이기에, 엄밀한 의미의 독창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식하게 될 것이기 도 했지요.
꽃을 항한 나의 눈이, 삼백 년 전의 살았던 가인의 눈을 닮은 것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한 그 꽃 사설시조 탓일까요. 얼마 전부터는 꽃 이야기가 들어간 수필에 제목을 달기가 싫어졌어요.
어느 날 뜬금없이 그동안 내가 사들인 꽃의 값은 얼 마나 될까를 헤아리다 보니, 그건 단순한 꽃값이 아니 라 나와 누군가를 위해 쓴 마음 값이었다는 결 알게 되더군요.
그러고 보니 쓰다가 틀리는 글자가 '꽃' 자에 이어 하나가 늘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꽃에 너무 매달리 다가 그 글자 대하기가 두려워졌는데, 이제는 '값' 자까 지 그리되게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틀리면 다시 쓰기를 반복하면서라도 안고 갈 밖에요.
하늘 정원에서 응원해 줄 조경가 남편에게도 물론-처음 꽃이야기를 쓸 때 도움을 준 그 사람의 책들은 지금도 내 책꽂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꽃이 그 값을 다하기 위해
성의 있게 피었다 지듯이,
나도 목숨값은 하고 가야겠지요.
그게 지금껏 써온
글값이기도 할 테니까요.'
시계꽃 도시에서
이정원 "
이정원 수필집 <다시, 꽃값>의 서문이다.
꽃 수필을 쓰게 된 동기이자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꽃 이야기가 왜 이다지도 슬픈 노래일까. 아직도 그 사람의 책을 가까이 두고 그것은 떠난 망부(望夫)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엔젤 트럼펫의 꽃값
표지그림 천사의 나팔은 엔젤 트럼펫이다. 진홍색의 길쭉한 대롱같이 생긴 꽃이다. 활짝 핀 꽃 봉오리가 별처럼 생겼다.
아들은 수리산 자락에 있는 성당에서 트럼펫을 연주한다. 고교시절 유난히 힘들어했던 '우울'은 대학 일 학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학년 되면서 거두어지고 트럼펫을 익혀 군악대로 갔다.
갑작스레 아비를 잃고 이곳 성당을 찾아왔다. 어미는 아들의 트럼펫 연주 <시온의 빛나는 아침>을 들으며 눈물을 짓는다.
"그때 들었던 나팔 소리가 지금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하나가 되고 있음을 느낀, 바로 그 순 간에 떠오른 꽃이 엔젤 트럼펫 관처럼 긴 초록색의 꽃 꼭지에 매달린 큼지막한 노란색 통꽃의 모양새가 트럼 펫을 아래로 향하게 한 모양과 매우 닮았지요. 밤이면 활짝 피어 짙은 향을 내다가 아침이 오는 소리와 함께 그 향기를 거두는 까닭에, 트럼펫 중에서도 엔젤 트럼펫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지요."
-상사화의 꽃값
"딸아. 오늘 저녁 너의 모습은 모처럼만에 나를 안심시키는구나. '상사화의 어머니'라고 나를 부른 너의 눈 빛이 그 꽃빛깔만큼이나 곱구나.
피에타- 겸허한 마음이라는 뜻을 지닌 그 말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나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에 붙여져, 비탄에 잠긴 어머니라는 뜻으로 쓰였지. 가시관을 쓰고 끌려간 아들은 끝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고, 그 시신을 끌어내려 무릎에 눕히고 내려다보는 -처절한 슬픔에 눈물조차도 흘리지 못하는 나의 형상 앞에선, 어머니이기에 겪는다고 느껴온 너의 자잘한 괴로움들이 아예 할 말을 잃고 만다고 그래서 더욱 힘겹다고 수차례 고백했지.
그리고는 이어 그 고통을 통해 내가 천상 어머니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 나사렛 마을의 한 처녀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걸어야 했던 쓰라림의 길이 하늘에서는 지극히 아름다운 꽃길로 화했음을 깨달아 '피에타의 꽃길'이라는 글을 내게 봉헌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한데 오늘, 네가 꼭 나 하늘로 올라간 나이가 되어 다시 앞에 선 저녁. 너는 비탄의 어머니 대신 상사화의 어머니라는 비유로 나를 부르는구나. 잎이 나왔다가 다 말라서 없어진 다음에야 꽃대가 올라와 화사한 분홍색 꽃을 피우기에, 잎과 꽃이 영영 만날 수없음을 들어 상사화를 이별난초라고도 한다지."
-무명초의 꽃값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이십팔 년을 함께한 반려자를 발병한 지 스무 여드레 만에 보내고 무명옷 대신 머리를 깎았다. 선산 납골묘에 봉안하고 돌아온 뒤부터 못해준 것만 가시풀처럼 돋아나 가슴을 찔렀다.
아비를 앓고 홑 자식으로 남은 아들 역시 가슴이 미어지기는 매한가지,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잘라내는 어미를 따라 저도 머리를 밀었다.
머리를 밀며 품었던 무명초(無名草)의 바람은 건강했던 목숨이 예고 없이 쓰러지는 걸 보며 내 목숨에도 뜻을 두지 않겠다는 무명초(無明草)의 상징으로 소복을 대신했다.
여고시절 수련이 전하려고 애쓴 평상심(平常心)의 꽃값이다.
"내가 다닌 여고에는 해마다 이맘때면 흰빛과 분홍빛의 수련이 피어나던 연못이 있었어요. 그 꽃이 물 위로 이파리와 꽃대를 내밀어 피는 연꽃과 다르다는 걸 가르쳐 준 이는 머리 희끗한 국어 선생님이었어요. 저녁이 되면 꽃잎을 오므려 잠을 자는 꽃이기에, 수련(水蓮)이 아닌 수련(睡蓮)이라는 걸 일러준 이 또한 그분이었고요.
'물 속도 물 밖도 아닌 수면에 그 자리를 정한 수련 이야말로, 평상심(平常心)의 의미를 아는 꽃일 게다. 평상심이란 무엇을 꽉 그러쥐고 있지도, 탁 놓아버리지도 않은 보통 때 마음이다. 점심 녘에 꽃잎을 펼쳤다가 어둑어둑해지면 하루를 접는 수련은 낮과 밤의 이치 또한 몸에 익힌 꽃인지 모른다.'"
이정원 작가의 수필에는 치열한 삶의 시련들이 남아 있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반려자인 남편을 보내고 나서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다시, 꽃값> 속 한편 한편 마다 이렇듯 아픔의 고통들이 녹아있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동기생인 김종희 교수의 서평이 눈길을 끈다.
이정원의 수필을 읽으면 마음 한 구석이 시려온다. 작가의 시련과 고통이 읽는 이에게 전이되어 나의 고통처럼 느껴진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고통이기에 조용히 성당의 신자석에서 그 슬픔을 삭이며 눈물을 감춘다. 이젠 그 그늘에서 벗어나 밝고 맑은 물망초처럼 살았으면 한다.(202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