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보내온 신호
최원돈
하늘에서 보내온 신호이다.
이제 어제와 같은 삶을 살지 말아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어떻게 할까.
언제까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하여야 하나.
지난달 건강검진을 받았다. 두 해 동안 검사를 받지 않다 아내의 채근에 부랴부랴 신청했다.
이른 아침에 집에서 나섰다. 논현 초등학교 담벼락 느티나무가 노랗게 물들고 있다. 단풍나무도 붉게 타고 있다. 아침노을이 비쳐오니 더욱 장엄하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가을은 해 질 녘이라지만 동틀 녘 노을도 멋지다.'
건강검진센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력검사부터 한다. 왼쪽 눈을 가리고 시력판을 가리키는데 갑자기 하얗게 보인다. 놀라 몇 번을 보았지만 윗줄 큰 글씨만 보인다. 다행히 왼쪽 눈은 아랫줄까지 보인다. 0.6/0.3 이란다.
'아니 언제 이렇게 까지 눈이 나빠졌나'
엉겁결에 나머지 검사를 모두 마치고 돌아왔다.
안과 특진을 신청했다. 막연히 백내장 전문의로 했다. 종합병원 안과는 시력검사에서부터 각종 검사를 하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지루한 검사를 마치고 전문의 진료를 받았다.
"지금 백내장이 문제가 아니고 황반변성이 있어요. 망막 전문의의 진료부터 받으세요."
"황반변성은 치료가 가능합니까."
"백내장도 있지만 이것부터 치료해야 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착잡하다.
일주일 후 다시 망막 정밀검사를 했다. 안과에 도착하자 시력검사부터 또다시 한다. 지난번에 하였지만 매번 하여야 한단다. 망막 검사실에서 여러 검사를 했다. 측정기에 이마와 턱을 바짝 붙이고 번갈아가며 안구 검사를 한다. 왼쪽 눈은 초점이 또렸했지만 오른쪽 눈은 초점도 흐릿하고 색상도 틀려 보인다. 검사 선생님도 유난히 오른쪽 눈을 세심히 살펴보고 촬영을 한다. 두 시간가량 검사를 마치고 망막 전문의 진료를 받았다.
송수정 교수님은 눈이 언제부터 나빠졌느냐면서 담배는 피우지 않느냐고 했다. 엉겁결에 한 일 년 전부터 잘 안 보였는데 백내장이 왔는가 했다며 담배는 오래전에 끊었다고 했다.
"백내장이 있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고 더 큰 문제가 생겼어요. 황반변성이 심한 상태로 넘어가서 황반에 나쁜 혈관이 자라면서 중심축에서 확 떨어지는 상출성 상태로 넘어간 상태예요."
혈관검사를 해 보아야겠지만 눈주사를 맞아야 할 것 같다며 오후에 혈관 촬영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다행히 오후 검사가 가능해 안약을 주며 30분 간격으로 넣으라고 했다. 피부 알레르기 검사를 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오란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간호사에게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술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며 혈관에 생기는 병이라 금물이란다. 운동은 심하지 않게 산책 정도가 좋다며, 목욕탕 찜질방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눈주사이기 때문에 세균감염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곳에 올 때마다 아내와 함께 자주 들리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과 소보로 빵 하나를 시켰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 초기라더니 중증으로 넘어가 눈 주사 치료를 받아야 한다니'
커피맛도 소보로 맛도 느끼지 못하고 일어섰다.
다시 7층 안과로 왔더니 조형제 혈관 주사부터 맞았다. 망막 촬영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을 넘겨가며 찍고 또 찍는다.
송수정 교수님의 2차 진료가 시작되었다. 안구 사진을 보더니 전공의 선생님과 상의하고 나서 설명해 주었다.
"안구에 하얀 실핏줄 같은 것이 나쁜 혈관이에요. 이 핏줄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눈 주사를 놓을 거예요. "
"왼쪽 눈도 황반변성이 있지만 지금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오른쪽 같이 될 확률이 40%가 넘어요."
"환자분은 중증 난치성 황반변성으로 예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나라에서 암과 같은 대우를 해주어요."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그만큼 예후가 좋지 않다는 뜻이에요. 처음 한 달 간격으로 12월 1월 2월 세 번을 맞고 경과를 봐서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계속 맞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이 병은 완치는 없어요. 잘못되면 실명까지 될 수 있어요.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에요."
심각한 상태인 것 같다. 동의서를 받고 주사실 들어가기 전에 모자를 씌우고 옷 위에 초록색 덧옷과 신발 위에 덧신까지 씌운다.
주사실 안에는 가운데 침대가 놓여있고 간호선생님이 여럿 있다. 침대 위에 반듯이 누이고는 좌우에 붙어있는 포대기로 몸을 감싼다. 눈 주위에 소독을 하고 안구에 마취 안약을 넣고는 송수정 교수님이 들어왔다.
"움직이면 안 돼요. 똑바로 눈을 뜨고 위를 봐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금 할 수 있는 상황은 없다. 남자 간호선생이 몸을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아주었다. 순간 아무 생각이 없다. 따끔한 것 같기도 하고 눈 위를 얼른거린다.
"끝났어요. 잘했어요."
눈에서 까만 물체가 얼른거린다.
남자 간호선생의 부축을 받으며 탈의실로 왔다. 눈에는 안대를 씌웠다. 집에 갈 때까지 쓰고 있으란다. 오늘은 세수도 하지 말란다. 안약만 넣으라고 했다. 눈동자에 까만 점이 계속 돌아다닌다. 편의점에서 마스크와 물 한 병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착잡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어떻게 해야 할까'
집에 들어오니 아무도 없다. 조금 후 아내가 왔다.
"망막주사 맞았어요. 황반변성이 심해요."
"그렇게 눈을 혹사하더니 어쩌겠어요."
"이제 모두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변함없더니 이제야 몸이 다 망가지니 집에 들어앉겠다는 거예요."
"모두가 자업자득 아니에요."
아내의 이 말이 서운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달갑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듣기 싫었든 말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술은 한 방울도 마시면 안 될 것 같아"
"이제 나까지 술 한 잔 못하게 생겼구먼"
아내는 미운마음에 하는 소리다. 어릴 적 동생 데리고 놀다가 다쳐서 집에 가면 어머니에게 꾸중 들으며 들었던 소리였다.
아내는 저녁 밥상을 정성껏 차려 내온다.
오히려 속이 편하고 후련하다. 그동안 아내가 얼마나 다그쳤든가. 무슨 취미활동을 전쟁하듯이 하느냐고 하든말이 귓전에 맴돈다.
걱정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지금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야 하는 것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는가.
하루 종일 시달리다 받은 밥상이다. 깨끗하게 한 그릇을 다 비웠다.
하지만 내일 출판기념회는 마쳐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이다. 눈동자 안에서 검은 점이 계속 굴러다닌다.
하늘에서 보내온 신호이다.(202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