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점박이의 사랑
-황석영 <할매>를 오마주하다
최원돈
황석영의 소설 <할매>를 읽었다.
작가는 1943년생 83세의 노익장이다. 미수(米壽,88세) 때까지 글을 쓰겠단다. 그 후에도 죽을 때까지 일기라도 쓰겠다고 한다.
그는 일제 만주족이 세운 장춘에서 태어나 영등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네 살 적부터 자란 영등포가 내 고향이라 했다. 노후에 군산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군산 하제 마을에는 육백 년 된 서낭목 팽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이 터의 상징이다. 시민들의 염원으로 천연기념물 및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황석영은 막걸리 네 병을 사다 부어주고 축문을 지어 소지하며 이 나무를 지킬 것을 서원했다. 그 서원에는 팽나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한 편을 쓰겠다고 염원했다.
소설 <할매>는 그 약속의 실천이었다.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산자락이 끝나는 낮은 관목 숲으로 날아왔다. 등은 껍질 벗은 소나무처럼 짙은 갈색이었고, 머리는 검은색에 눈 위로 눈썹 같은 흰 선이 그어졌고, 배는 흰 바탕에 검은 반점이 얼룩얼룩했다.
풀발 위쪽 언덕 비탈에 자라난 참나무 가지 위에 갈색의 털북숭이 새가 앉아 있었다. 이 새는 말똥가리였는데, 동그랗게 놀란 듯한 눈을 부릅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다 날개를 펼치고 풀밭을 향하여 날아갔다. 말똥가리가 날아가면서 발가락을 쫙 벌려 개똥지빠귀를 잡아챘다. 개똥지빠귀는 울부짖고 날개를 퍼덕이며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자작나무 숲에 까마귀들이 후다닥 날아올라 말똥가리에게 달려들었다. 까마귀들은 몸집은 작았지만 빠르고 날쌔게 말똥가리를 추격하여 등 뒤에서 쪼았고, 다른 까마귀들도 연달아 달려들며 날개로 후려쳤다. 말똥가리는 움키고 있던 개똥지빠귀를 놓쳐버렸다.
개똥지빠귀는 강 건너 관목 숲의 아늑한 둥지로 날아갔다. 작은 새는 찔레나무 가시덤불 아래 둥지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놀 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개똥지빠귀는 앞가슴의 털이 뜯기고 날개도 몇 개 빠졌지만, 둥지에서 쉬면서 싱싱한 들쭉과 시로미 열매를 따 먹고 회복이 되었다.
이 수컷 개똥지빠귀 흰 점박이는 관목 가운데 높은 개살구나무 가지에 앉아서 '쯔빗 쯔빗 호로로록' 맑은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목을 쳐들고 노래할 때 연분홍의 별처럼 빈 나뭇가지에 피어난 개살구꽃이 파르르 떨리 곤 했다.
암컷은 흰 점박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근처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라, 조금 더 먼 곳에 있는 측백나무와 잣나무 숲으로 날아갔다. 암컷의 배와 가슴은 갈색 점이 짙은 갈색으로 덧칠되 뭉개진 것처럼 보였고 날개는 수컷보다 좀 더 밝은 적갈색이었다.
암컷이 땅에 내려앉자 흰 점박이도 뒤쫓아 내려왔다. 암컷은 고개를 숙이고 날개를 접고 얌전히 앉았고, 흰 점박이는 그 등 위에 올라앉아 짝짓기 하고는 얼른 떨어졌다. 개똥지빠귀 암수 두 마리는 제각기 '짹잭 찌르르' 하며 요란하게 노래했다.
암컷은 잘 익은 개암 열매처럼 밝은 적갈색 날개를 가졌으니, 개암이 날개라고 불렀다. 흰 점박이가 수컷 개똥지빠귀가 된 것처럼 개암이 날개도 암컷 개똥지빠귀가 되었다. 이제 이들은 하늘과 땅에서 단둘이 살아나갈 한쌍의 부부 새가 되었다.
개암이 날개는 다른 암컷 개똥지빠귀들이 그러듯이 알을 낳아 키울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개암이 날개가 나지막한 눈잣나무의 뾰족한 잎과 가지 사이에 마른 갈대와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근 모양의 둥지를 지었다. 개암이 날개는 부리로 찍어 온 축축한 땅의 진흙을 성글게 벌어진 나뭇가지 틈새에 꼼꼼하게 발랐다. 한 밤 두 밤이 지나 둥지에 바른 진흙이 마르고, 여린 낙엽 조각들로 푹신한 보금자리가 완성될 때까지 흰 점박이는 수고하는 짝인 개암이 날개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었다.
둥지를 짓자마자 개암이 날개는 연한 하늘색에 검은 모래를 살짝 뿌린 듯한 네 개의 알을 낳았다. 어미새는 그날부터 알 품기에 들어갔고 흰 점박이는 벌레를 잡아다 개암이 날개에게 먹였다.
그믐에서 만월이 가까워질 때까지 어미가 품었던 알은 차례로 깨어나 발갛게 투명한 알 몸을 드러내고 가냘프게 울기시작했다. 이제 아비새와 어미새는 번갈아 둥지와 들판을 오가며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다 새끼들에게 먹였다.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 둥지를 떠날 때가 되었다. 제일 먼저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가까운 나뭇가지를 향하여 날아올랐다. 서툴게 날갯짓하여 간신히 나뭇가지에 앉더니 바로 건너편의 더 키 큰 나무로 옮겨 날아가 앉았다. 다른 세 마리의 새끼들도 차례로 둥지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날아오른 새끼가 다른 나뭇가지에 미처 오르지 못하고 낙엽처럼 땅바닥으로 떨어지자 아비인 흰 점박이가 따라가서 종종걸음으로 주위를 맴돌며 부르짖었고, 새끼는 다시 날갯짓하여 나무 위로 간신히 날아올라가 앉았다. 둥지를 떠난 새끼들은 멀리는 가지 못하고 부근 나무에서 스스로 벌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대륙 북쪽에 가을이 깊어지자 차갑고 건조한 북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초원의 풀은 누렇게 변했고 나뭇가지의 마른 나뭇잎은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시베리아의 가을은 너무도 짧아 마른풀과 낙엽 위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면서 시내와 강변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북풍은 때로 우박과 싸락눈을 몰고 달려와 아무르 강의 들판과 숲을 뒤덮었다.
흰 점박이가 공중에 날아올라 '얘들아 모두 모여라, 얘들아 먼 길을 떠나자' 하고 우짖었다. 어디선가 개똥지빠귀들이 날아왔고 그중 몸집이 통통하고 날갯짓이 힘찬 수컷 한 마리가 날아올라 흰 점박이 옆에서 높은 소리로 '먼 길을 떠나자, 모두 모여라'라고 우짖었고, 흰 점박이는 그 새 주위에서 잠시 날다가 개암이 날개가 앉은 측백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기다렸다.
우두머리 개똥지빠귀가 허공에서 맴돌며 짖어대자 사방에서 개똥지빠귀들이 날아왔고, 새들은 측백나무 가지 위로 모여들었다.
갑자기 숲 속이 적막에 잠겼다가 푸드덕, 날갯짓 소리와 함께 흰 점박이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개암이 날개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잽싸게 날아올라 그 뒤를 따랐다. 개똥지빠귀들이 연이어 날아올랐고 흰 점박이는 일행이 모두 나를 때까지 허공을 크게 맴돌았다. 맨 마지막에 우두머리 개똥지빠귀가 일행 중 세 마리를 앞세우고 날아올라 대열에 끼었다. 이제 한 무리를 이룬 개똥지빠귀들은 날갯짓을 하면서 남쪽으로 날아갔다.
개똥지빠귀들은 해가 뜨면 날아올라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날아갔다. 출발할 때는 둥지에 같이 살 던 흰 점박이와 개암이 날개 한쌍뿐이더니, 날아가다 보니 그해 여름 분가했던 새끼들이 자연스레 어미와 아비의 곁으로 날아와 합류하게 되었다.
개똥지빠귀들은 하루에 천리를 날아갔다. 그들은 사흘 만에 따뜻하고 먹이가 풍족한 고장에 이르렀다. 닷새가 지나자 개똥지빠귀 무리는 아무르 강변에서 곧장 남으로 내려와 조선반도를 횡단하여 서해안에 도착했다. 새들은 오른편 바다를 끼고 반도의 남쪽으로 곧장 내려갔다.
흰 점박이 일행은 강물이 세 줄기로 바다를 향하여 흘러가는 만에 이르렀다 서해안에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가 여러 군데 있었다. 기후가 따뜻하고 먹을 것이 풍부한 넓은 갯벌이 있고 내륙으로 끝없이 이어진 논과 밭의 경작지에는 바닷새와 함께 들새, 산새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남쪽 마을이었다.
바닷가를 막아선 야산의 긴 숲이 작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첫 번째 장소였다. 산의 서쪽은 갯벌과 바다였고 동쪽으로 너른 습지와 경작지가 펼쳐지는 아무르 강변의 들판과 비슷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을 지나 해가 가장 짧아지는 계절 동안 추위와 폭설이 계속되는 이듬해의 첫 째 달과 둘째 달 그리고 북쪽 시베리아로 되돌아가기 전 한 달 동안 개똥지빠귀 무리는 이 부근에서 이동하며 살아냈다.
흰 점박이와 개암이 날개 등 개똥지빠귀 무리가 제일 처음으로 머물게 된 터전은 서쪽 바다를 막아선 긴 산줄기의 숲이었다. 숲에는 나무 열매가 많았고 긴 능선의 동쪽에는 마른풀과 낙엽의 흙 속에는 월동하는 벌레들이 숨어 있는 너른 들판과 경작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십일월에서 십이월 중순까지 한반도 중부 이남의 초겨울은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새들에게는 고향의 봄보다 훨씬 살기 좋은 날씨였다. 그리고 두껍게 얼어붙은 북방의 땅에 비하면 한낮의 햇볕에 녹아 축축해진 이곳의 부드러 운 흙 속에는 곳곳마다 벌레가 잠자고 있었다. 개똥지빠귀 의 무리는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능선의 소나무와 호랑 가시나무 찔레나무 덤불 사이에 천적들을 피하여 둥지를 마련했고 서로 가까운 지역에 흩어져 살았다."
십이월 말에서 이듬해 일월은 이곳도 제법 추워졌다. 그래도 북방에 비한다면 역시 봄이나 늦가을 정도의 날씨여서 겨울 철새들에게는 살 만한 날씨였다. 겨울이 좀 더 깊어져 눈이 두껍게 쌓여 녹지 않거나 들판과 개천이 얼어붙어 지렁이와 애 벌레들을 잡아먹을 수 없게 되면, 개똥지빠귀들은 세 번째 강줄기가 흐르는 하구를 넘어 높은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숲으로 이동했다. 무리들은 출발하던 때에 비하면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진 다음이라 절반밖에 되지 않아 십여 마리에 불과했다.
흰 점박이와 다른 개똥지빠귀들은 이 넓고 깊은 숲에서 주목, 호랑가시나무, 팽나무로 옮겨 다니며 열매를 따 먹고살았다. 골짜기를 돌아나가면 바로 바닷가 갯벌이었고 하구 건너편에 다시 긴 숲과 들판이 나왔다.
이월말이 되자 남쪽에서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햇볕이 잘 드는 들판의 눈은 거의 다 녹았다. 바닷새들은 갯벌 위로 큰 무리를 지어 옮겨 다니며 풍부한 먹이를 먹을 수 있었지만, 겨우내 열매를 따먹으며 견디던 들새 멧새들은 벌레를 잡으러 다시 강변과 들판으로 옮겨갔다.
이월 말이 되면서 겨울 철새들은 봄이 오는 느낌을 알아채고 저희끼리 한 장소를 정하여 근처로 모여들어 먹이 활동을 했다. 머지않아 북방의 고향으로 무리 지어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삼월 초가 되어 마른 나뭇가지마다 움이 트고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봉오리가 올라올 무렵,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북방 하늘 높이 매서운 한기가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면서 북풍이 거세게 불어오고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꽃이 피는 것을 샘낸다는 꽃샘추위가 찾아온 것이다.
개똥지빠귀들은 강 건너편 하구 모퉁이에 있는 절을 둘러싼 숲을 기억하고 있었다. 절집 주위에는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어우러진 숲이 있고 거기서 강을 따라 더욱 동쪽으 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모여사는 포구마을이었다. 그곳에는 감나무가 많았고 지난가을 이곳에 도착했을 때 며칠 동안 맛있는 홍시를 쪼아 먹었던 것을 새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새들은 팽나무 숲에 도착해서 저마다 마음에 드는 가지를 향하여 쪼르르 달려들었다. 팽나무 가지마다 마치 콩알만 한 사과처럼 생긴 열매가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다. 가을에 막 익었을 때는 노랑 바탕에 붉은색이 물들어 싱싱하고 물이 많았지만, 열매는 겨우내 찬바람에 말라서 색깔도 검붉게 변했고 과육은 덜 말린 곶감처럼 달고 부드러 웠다.
팽나무 숲은 개똥지 빠귀에게 가장 요긴한 삶의 터전이었다 하루 종일 팽나무 숲에서 먹이를 찾다 흰 점박이를 비롯한 개똥지빠귀 일행은 강 건너 야산 숲으로돌 아가기 위해 날아올랐다. 새들은 좀 더 빨리 귀소본능을 서둘렀어야 했었다. 북풍이 거세지고 눈보라가 몰아쳤기 때문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언덕의 나무 위에서 습지 쪽을 내다보던 황조룡이 한 마리가 있었다. 머리와 꼬리가 회색이고 날개가 밝은 갈색의 암컷 황조롱이였다. 그 황조롱이는 개똥지빠귀들이 힘겹게 맞바람을 헤치고 강을 건널 때부터 바람에 날리는 헝겊 조각 같은 작은 새들을 노리고 있었다.
황조롱이가 획 날아올라 맞바람을 타고 공중에서 정지하여 아래편으로 접근해 오는 두 마리의 새를 내려다보았다. 허공에서 내리꽂으면서 파드닥하고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고 큰 새가 개암이 날개를 채어갔다.
황조롱이가 개암이 날개를 발아래 움켜쥐고. 습지가 끝나는 비탈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았고, 흰 점박이는 용기를 내어 뒤를 쫓아가며 까마귀 소리를 흉내 내며 울부짖었다.
황조롱이는 그 소리에 놀라 잡아 온 새 에게 꽂으려던 날카로운 부리를 쳐들고 두리번거렸다. 흰 점박이가 연신 까마귀 울음으로 짓어대며 소나무 쪽으로 날아가 날개로 황조롱이를 후려치는 시늉을 하고는 나무 위쪽 가지로 날아갔다. 황조통이가 공격자를 잡으려고 발에 움키고 있던 개암이 날개를 놓고 나무 위쪽으로 뛰어올랐다.
혼이 나갔던 개암이 날개는 그런 틈을 놓치지 않고 황조통이의 발톱을 벗어나 온몸의 힘을 다하여 날개를 파닥이며 더욱 깊은 숲으로 도망쳐 날아갔다. 흰 점박이는 천적을 피해 얼른 침염수의 뾰족한 잎이 무성한 가지의 중심부로 들어가 처박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상대가 두려워하는 수리부엉이 소리를 냈다. 황조롱이는 그 새가 보잘것없는 지빠귀 종류의 참새나 다름없는 먹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상위 포식자인 수리부엉이 소리를 내는 상대에게 놀라서 대뜸 공격은 않고 머리를 갸웃 거리며 자세히 살피려고 했다.
자세히 살펴보려고 솔가지 사이로 동그란 눈을 굴리며 들이미는 황조롱이의 머리를 그 작은 새가 사정없이 쪼아버렸다. 개똥지빠귀의 부리는 땅을 파헤쳐 벌레를 잡아내고 나무의 굳은 열 매를 까먹을 만큼 날카롭고 뾰족했다. 황조롱이는 정통으로 머리를 찍히자 아픔과 놀라움에 '께께꺽!' 큰소리를 지 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흰 점박이는 소나무 아래로 떨어져 바로 습지 가장자리에 자라난 무성한 갈대 속으로 달아났다. 황조롱이는 개똥지빠귀가 갈대밭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에 아슬아슬하게 날아가 먹잇감을 발로 후려치고는 날아올랐다. 간신히 포식자의 발톱에서 벗어난 흰 점박이는 빽빽한 갈대밭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치고 들어가 숨었다. 눈보라는 더욱 거세게 내렸고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황조롱이는 사냥에 실패하고 말았다.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황조롱이는 진작 사라졌고 하늘에는 어떤 새도 날아다니지 않았다. 흰 점박이는 갈대숲 사이에서 기어 나와 날아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높이 오르지도 못하고 퍼덕이다가 얼마 못 가서 다시 땅에 내려와 처박히곤 했다. 흰 점박이는 갈대 속에 숨어들기 직전에 황조롱이에게 얻어맞아 한쪽 날개가 상했다.
개똥지빠귀는 이제 두 날개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 내렸다. 상한 날개를 비죽이 옆으로 펼치고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고 부리는 반쯤 벌린 채 흰 점박이는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그 위에 눈보라가 내려와 덮이기 시작했고 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북풍이 며칠 동안 연이어 불어오고 샛강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이 계속되었다. 폭설은 끊임없이 몰아쳐서 숲과 들판과 얼어붙은 강 위에 하얗게 덮였다.
흰 점박이는 폭설이 내리던 그날 밤, 두 번째 강줄기의 하구 부근 곰솔이 무성한 숲에 이르지 못하고 잡풀이 듬성듬성 자라난 빈터에 떨어졌다. 기진맥진한 작은 새의 몸 위에 눈보라가 들러 씌워졌고 체온이 떨어진 개똥지빠귀는 숨이 끊어졌다.
죽은 새는 눈 속에 며칠 동안 얼어 있다가 봄을 이기지 못한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훈풍이 다시 불 어오면서 썩어갔다. 들꽃이 피고 여름새들이 찾아와 사방에서 지저귀고 매미가 울어댈 무렵에는 비도 여러 차례 내 렸고 땅 위에는 새의 어떤 흔적도 님아 있지 않았다.
개똥지빠귀의 뱃속에는 팽나무 열매 몇 개가 있었다. 열매의 거죽은 새의 시신과 함께 곧 사라졌지만, 딱딱한 굳은 씨앗은 부드러운 모래흙 속으로 들어가 스며드는 물기와 함께 땅속으로 묻혔다.
굳고 딱딱한 씨앗은 한 해를 보내고 겨울을 맞으면서 움이 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해 이른 봄. 땅에 떨어지던 때와 같은 무렵이 되어서야 굳은 겉껍질이 오랫동안의 습기에 불고 금이 가면서 싹이 트고 실 같은 뿌리가 생겼다. 싹은 부드러운 모래흙을 밀고 지상으로 푸른 움을 드러냈고 뿌리는 땅 밑 사방으로 살금살금 퍼져갔다.
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이 녹아들어 기름진 땅속으로 뿌리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 나갔고 어린 팽나무 싹은 여름 이되자 묘목이 되어 몇 개의 가냘픈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 나와 바람에 팔랑대고 있었다.
바람과 햇빛과 물안개와 가랑비와 폭풍까지 견디며 버티어낸 어린 팽나무는 다시 겨울이 오자 추위에 죽어버린 듯, 삭풍 속에 꽂혀 있는 메마른 작대기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이 팽나무는 스스로 죽음 같은 겨울의 멈춤과 봄마다 찾아오는 새 생명의 활기를 깨닫게 되었다.
개똥지빠귀 흰 점박이의 일생이다. 대단한 서사이다. 황석영이 아니고는 쓸 수 없는 문장이다. 어느 누가 이토록 절실하게 보잘것없는 개똥지빠귀의 일생을 쓸 수 있으랴. 어느 조류나 식물의 학자라도 이런 글은 써지는 못하리라.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는 "인간의 시대를 넘어 생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황석영 문학의 새로운 경지"라고 했나 보다.
이 어린 팽나무가 자라 하제 마을의 육백 년 묵은 팽나무 '할매'가 되었다.
"괜찮아, 너는 그 자리에서 씨를 뿌렸을 테니 봄이 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개똥지빠귀는 이 팽나무로 다시 돌아 올 것이다. 개암이 날개의 사랑이다.
(202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