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by 최원돈

차(茶)와 길

-「일일시호일」의 서문을 읽고

최원돈


「日日是好日」은 모리시타 노리코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차(茶)'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이야기이다. '일일시호일'은 "날마다 좋은 날"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알 수 없으니, 현재를 좋은 날로 채우자는 의미이다. 이 책의 서문은, 25년 동안 '차'를 배우고 느끼며 '차와 길'을 통하여 인생을 깨달아간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을 보았지만,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10년 후 대학생 때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이 영화의 주제곡인 '젤소미나의 테마'는 들은 기억은 났지만, 내용은 처음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길이란 이런 영화였구나’ 가슴이 졸여져 영화관 어둠 속에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실연하고 일자리도 실패하고 십수 년을 지났다. 삼십 대 중반에 또 '길'을 보았다. 여주인공 연기에 가슴이 찢어질 뻔했다. 페로니의 「길」은 다른 것이 되었다. 볼 때마다 깊어지고 있었다.


'茶'도 마찬가지로 대학생 때부터 해오면서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세상에는 '바로 알 수 있는 것'과 '바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없는 것도 페로니의 '길'처럼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조금씩 서서히 알아가고, 다른 것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은 전체 속의 아주 작은 단편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차(茶)'도 그런 것이다.


노리코는 '茶'를 배우기 위해 매주 다케다 선생 댁으로 간다.

"매주 토요일 오후, 나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한 채의 집으로 향한다. 그 집은 오래되었고 입구에는 커다란 팔손이 화분이 놓여 있다. 문을 열면 초인종 소리가 '카랑카랑' 울리고, 현관 '다다키'(장식대)에서 물을 치고 있어, '쓱' 숯 냄새가 난다. 정원 쪽에서는, 졸졸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나는 정원에 접한 조용한 방에 들어가 다다미에 앉아 뜨거운 물을 끓여서 '茶'를 우려내어 마신다."

그녀는 다도 공부를 대학생 때부터 25년간 계속해 왔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의문을 품으면서, 다리는 저리고 예법은 까다롭다. 스무 살 때 '茶'는 예의범절로만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비가 몰려와 후덥지근한 냄새를 낸다. '아, 소나기가 온다'라고, 생각했다. 정원수를 두드리는 빗방울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로 들렸다. 곧바로 주변에서 '훅'하고 흙 내음이 가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는 '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일뿐, 냄새 같은 건 없었다. 흙냄새는 의도하지 않았다. 나는 유리병 속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유리병 덮개가 벗겨져 계절이 '냄새'나 '소리'라는 오감에 들썩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태어난 물가의 냄새를 맡는 한 마리의 개구리 같은 계절의 생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은 일본어로 읽어야 제맛이 난다. 아무래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색해진다. 그래서 번역가는 직역보다는 의역한다.


"매년 4월 초순에 제대로 벚꽃이 만개하여 6월 중순 무렵부터 약속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 당연한 것을 서른 살 가까이 되어서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전에는 계절은 '더운 계절'과 '추운 계절'의 두 종류밖에 없었다. 그것이 잘게 되어갔다. 봄은 처음에 명자나무가 피고, 매화, 복숭아, 그리고 벚꽃이 피었다.

잎 벚꽃이 피었을 무렵, 등나무 송이가 향기롭고, 만개한 철쭉이 끝나면 공기가 울렁이기 시작하고 장마를 시작하는 비가 내린다. 매실이 부풀어 오르고, 물가에서 창포가 피고, 수국이 피고 나면 치자나무가 달콤한 냄새를 풍긴다. 수국이 지면 장마도 올라가고, 버찌나 복숭아가 나돈다. 계절은 겹겹이 찾아오고 공백이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은 옛 달력에서는, 24 절기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실제로 '茶' 배우러 다니는 매주 매번이 다른 계절이었다.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빗소리에 전념하여 듣고 있는데, 돌연, 방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내가 비가 되어 선생님댁 정원수에 내리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게 이런 거였구나’"


소름이 돋았다. '茶'를 계속하는 동안 그런 순간이 정기예금의 만기처럼 가끔 찾아왔다. 무언가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이십 대의 삶을 살고, 평범한 삼십 대를 보내고, 사십 대를 살아왔다. 그사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한 방울 한 방울 컵에 물이 고였다.


"컵이 가득 차기 전까지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윽고 가득 차서, 표면장력으로 달아오른 수면에 어느 날 어느 때 균형을 맞추는 한 방울까지 떨어진다. 그 찰나 단번에 물이 컵의 가장자리를 흘러내린 것이다. “


물론 茶를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단계적으로 인생의 깨달음을 경험해 간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눈을 뜨고 자신의 성장을 때때로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보이지 않는 나의 성장을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 '茶'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는 삶과 겹치는 것이다. 바로 알 수 없는 대신 컵의 물이 넘쳐 나고 세상이 펼치는 순간의 묘미를 몇 번이고 맛보게 해 준다.

어렸을 때 몰랐던 팔리니 감독의 '길'은 지금 나는 끝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가슴이 에워진다.

'茶'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 하나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25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보면서 지금은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지혜를 아련하게 알 수 있다.


"살기 힘든 시대를 살 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자신감을 잃었을 때, '茶'는 알려준다. '긴 안목으로 살아라.'라고.‘"


책의 서문이라기보다 한 편의 수필이다.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글솜씨가 가슴에 파고든다.


마침, 수필 선생님이 영화 <길>을 보내주었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 했던가.


'일본어 강독'을 공부한 지 어느덧 3년을 헤아린다. 나는 뒤늦게 정년 퇴임을 앞두고 '경희 사이버대학교' '일본학과'를 다녔다. 막연한 호기심이 나를 자극했다. 일본 문학을 접하면서 나는 심취했다. 그러나 졸업하고 일본어를 등한시했다. 그런데 집 부근으로 '강남문화원'이 이전해 왔다. 이참에 '일본어 문화비평' 강좌에 등록했다. 일본 원어민 SAYA 선생님의 강좌를 통하여 잃어버린 일본어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 이번 강좌는 「日日是好日」 '茶' 에세이이다.


첫 수업 강독을 통하여 '사야' 선생은 영화 <길>의 주제곡을 들려주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귀에 익은 음악이다.

참으로 인생은 '우연의 연속'인가.


"긴 안목으로 살아라."라는 작가의 말을 가슴에 새겨본다. (2025.07.13)


茶と道

- 「日日是好日」の序文を読んで

「日日是好日」は森下典子の自伝的エッセイである。

「茶」を通じて人生の意味を悟っていく話だ。 「日日是好日」は「日々良い日」だ。 過去は過ぎ去り、未来は分からないので、現在を良い日で満たそうという意味だ。この本の序文は、25年間「茶」を学び、感じて「茶と道」を通じて人生を悟っていく。


小学校5年生の時、両親の手に導かれ、フェリーニ監督の映画「道」を見たが、まったく意味が分からなかった。 10年後、大学生の時にこの映画を見直した。 この映画のテーマ曲である「ジェルソミナのテーマ」は聞いた記憶はあったが、内容は初めて見たそれも変わらなかった。 「道とはこんな映画だったな」 胸が眠くなって映画館の闇の中で泣いた。 そして実演して仕事も失敗し、十数年を過ぎた。 三十代半ばにまた「道」を見た。 女主人公の演技に胸が引き裂かれた。

フェロニーの「道」は別のものになった。 見るたびに深くなっていた。


'茶'も同様に大学生の時からしてきて'なぜこんなことをするのか'という考えに満ちた。


世の中には「すぐに分かるもの」と「まさにわからないこと」がある。 すぐに分かるのは通り過ぎればやめる。 だが、まさに不明なのもフェロニーの「道」のように何度も行ったり来たりする間、少しずつ徐々に知っていき、他のものに変わっていく。 そして自分が見ていたのは、全体の中の非常に小さな断片に過ぎなかったことに気づく。


「茶」もそういうものだ。


典子は「茶」を学ぶために毎週武田先生のお宅に行く。

「毎週土曜日の午後、私は歩いて10分ほどの距離にある一軒の家に向かう。その家は古くて入り口には大きな腕が植木鉢が置かれている。庭の側では、眠くなった水の音が薄暗く聞こえる。

彼女は茶道の勉強を大学生の時から25年間続けてきた。 「なぜこんなことをするのか」疑問を抱きながら、足が下がって芸法は難しい。20歳の時、「お茶」は礼儀であると思った。


「ある日突然雨が降ってきて暑くて匂いがする。「あ、シャワーがやってくる」と、思った。

それまでは雨は「空から落ちる水」だけで、臭いのようなものはなかった。土臭は意図しなかった。私はガラス瓶の中で外を見ているようだった。そのガラス瓶のカバーが剥がれ、季節が「臭い」や「音」という五感に浮かび始めた。自分が生まれた水辺の匂いを嗅ぐ一匹のカエルのような季節の生き物だと思いました。


この文章は日本語で読む必要があります。どうやら韓国語に翻訳するとぎこちなくなる。だから翻訳者は直訳よりは意訳を 頼む。


「毎年4月上旬にちゃんと桜が満開し、6月中旬頃から約束どおり雨が降り始める。そんな当たり前のことを30歳近くになってこそ悟ってびっくりした。以前は季節は『暑い季節』と『寒い季節』の2種類しかなかった。 梅、桃、桜が咲きました。

葉の桜が咲いた頃、藤の松の香りがし、満開のツツジが終わると空気が泣き始め、梅雨を始める雨が降る。梅が膨らみ、水辺で樽が咲き、あじさいが咲いたら、クチナシが甘いにおいを漂わせる。あじさいが負けると梅雨も上がり、チェリーや桃が出る。季節は二重に来て空白がない。

「春夏秋冬」の四季は昔のカレンダーでは、24季節に分かれていた。しかし、私には実際に「茶」を学びに通う毎週毎回が違う季節だった。

雨が抑水のように降る日だった。私はヒゲに専念して聞いているが、突然、部屋が消えるような気がした。 やがて私が雨になって先生の家庭園水に降っていた。

「生きているのがこんなことだったんだ」


不気味だった。 「茶」を続けている間、そのような瞬間が定期預金の満期のように時々訪ねてきた。何か特別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が、20代の人生を生き、普通の30代を過ごし、40代を生きてきました。その間、自ら気付いていない間に一滴一滴カップに水が溜まった。


「カップがいっぱいになるまでは何の変化も起こらない。やがていっぱいになり、表面張力で湧き上がった睡眠にある日、ある時バランスをとる一滴まで落ちる。


もちろん茶を学ばなくても私たちは段階的に人生の悟りを経験していく。人は時間の流れの中で目を開いて自分の成長を時々発見していくのだ。しかし、自分で見えない私の成長を実感させてくれるのが'茶'だ。最初は自分が何をしているのか全くわからない。ある日、突然視野が広がる人生と重なるのだ。 まさに未知の代わりにカップの水があふれ、世界が繰り広げる瞬間の醍醐味を何度も味わわせてくれる。

子供の頃知らなかったパリニ監督の「道」は今、私は無限に涙を流している。 理解しようとしなくても胸が囲まれます。

「茶」を学び始めたとき、いくら努力しても、自分が何をしているのか何一つ推測できなかった。しかし、25年の間に段階的に見て、今はなぜ、そうするのか、その知恵を惜しみなく知ることができる。

「生きにくい時代を生きる時、暗い暗闇の中で自信を失った時,「茶」は知らせる。「長い目で生きなさい」と。


本の序文というより一本のエッセイだ。

作家の繊細な感性と手紙が胸をときめく。


最後に、エッセイ先生が映画「道」を送ってくれた。

人生は「偶然の連続」と言ったのか。


「日本語講読」を勉強してからいつのまにか3年を計る。私は遅く定年退任を控えて「慶熙サイバー大学校」「日本学科」に通った。漠然とした好奇心が私を刺激した。日本文学に触れながら私は心酔した。しかし、卒業して日本語を遡った。ところが家付近に「江南文化院」が移転してきた。これに「日本語文化批評」講座に登録した。日本ネイティブSAYA先生の講座を通じて失われた日本語勉強を再びしている。今回の講座は「日日是好日」「茶」のエッセイだ。


初めての授業の講読を通じて「サヤ」先生は映画<ギル>のテーマ曲を聞かせた。どこかが聞いた耳に熟した音楽だ。

確かに人生は「偶然の連続」なのか。


「長い目で生きなさい」という作家の言葉を胸に刻む。 (202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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