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은 올해 3월 김문숙(94)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을 인터뷰했습니다. 20대의 김문숙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 드렸더니 “언제까지나 나라 사랑해라. 우리나라 지키도록 노력해주라. 일본에는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사망한) 조선사람들 뼈단지가 많은데 고국에 묻지 못해 원망스럽다. 뼈단지를 들고 와야 하는데…”라고 하시더군요. 김 이사장은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대모. 일본 법원이 최초로 위안부 배상 판결을 내린 1992년 ‘시모노세키 재판’을 이끈 주역입니다. 배우 김희애가 영화 ‘허스토리’에서 김 이사장을 연기. 2004년부터 사재를 털어 부산 수영동에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운영하던 김 이사장이 30일 별세했습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 처녀들이 가엾고 불쌍해서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죽더라도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통해) 자손들이 (위안부를) 기억할 수 있길”이라는 마지막 인터뷰는 유언이 돼 버렸습니다.
올해 4월에는 ‘우리 시대의 어른’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나 1961년 방송국 PD로 입사했다 3개월 만에 사표를 던집니다. 방송을 선전도구로 이용한 군사정권의 지시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 아버지인가 운영하던 강원도 삼척군의 탄광을 물려 받은 그는 한때 소득세 납부 전국 2위 부자에 등극. 그런데 1973년 갑자기 광산업을 접고 재산을 처분해 동업자와 광부들에게 나눠줍니다. “돈 버는 것이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되기 전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채 이사장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수배된 청년을 숨겨주거나 자금을 후원한 ‘뒷배’였습니다. 군사정권에 내쫓긴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사준 일화도 유명합니다. 1988년에는 경남 양산의 효암고·개운중을 둔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 무급으로 일했습니다. ‘서울대 보내려 하지 마라’는 교육 철학은 유명합니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오징어게임’ 세상에서, 돈·명예·권력에 곁눈질하지 않고 평생 후손을 위해 헌신한 두 큰 어른을 놓아 드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