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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산동 이자까야 May 11. 2021

2.3m와 2.7m 사이

국내 민간 택배서비스의 시작은 1992년. (주)한진이 ‘파발마’라는 브랜드로 공공택배(우체국)와 경쟁합니다. 2005년 60개를 넘었던 택배사는 통폐합을 거쳐 현재 18개 내외. 개인이 매일 문 앞에 상품을 배달한 원조는? 신문도 빠지지 않을 겁니다.

최근 ‘공원형 아파트’가 택배기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서울 고덕동의 한 아파트가 아이들 안전을 이유로 택배차의 지상 진입을 금지한 탓. 
택배기사들도 배송을 거부하며 9일 파업에 돌입했죠. 입주민들은 “자동차의 지상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만큼 택배차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택배차는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면 된다”는 입장. 반면 택배기사들은 “지하주차장 높이(2.3m 내외)가 택배차 높이(2.5~2.7m)보다 낮아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합니다.

택배회사 직원이 건물에 붙은 도로명 주소를 살펴보고 있다. 국제신문DB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시행인가를 받은 공동주택만 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 확보하면 됩니다. 현재 상당수 아파트 주차장 높이가 2.3m인 이유. 택배차를 개조해 높이를 낮추려면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가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화물칸이 낮아지면 택배기사가 무릎을 끓고 물량을 꺼내야 하죠.

부산의 A아파트 일반 분양자들도 고민이 가득합니다. 이곳 지하주차장도 2.3m로 설계돼 있거든요. 최근 일부 일반 분양자들은 “현재 터파기 단계인 만큼 지하주차장 설계를 변경해 높이를 2.7m로 높이자”고 제안했습니다. ‘갑질 아파트’로 불릴 여지를 없애자는 의미. 시행사 측은 입주 지연은 물론 막대한 추가 공사비가 발생할 수 있어 반대한다고 하네요.
                

더 나은 주거환경에 대한 욕망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의 희생 덕에 내가 편해진다면 대가를 치르는 게 상식입니다. 정부는 10일 지상 출입제한 아파트의 배송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택배 노사에 제안했습니다. 욕망, 배려, 이기심, 인간애가 2.3m와 2.7m 사이 어딘가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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