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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창에 목숨잃은 새
연간 800만 마리

by 연산동 이자까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얼마 전 병문안을 갔다 왔어요. 라노의 새 친구 짹짹이가 크게 다쳤기 때문이었죠. 짹짹이는 비행을 하던 중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뭔가와 부딪히며 머리에 피를 흘리고 기절했다고 해요. 짹짹이의 친구들 중에서도 허공에 머리를 박고 죽거나 다친 새들이 많다는데요. 하나같이 장애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날았음에도 '투명한 벽'에 부딪혔다고 해요. 하늘이라는 광활한 공간에서 뜬금없이 만난 장애물이라 당황스럽고, 지나다니는 길목에 투명한 벽을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짹짹이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며 "언제 어디서 투명한 벽을 또 만날지 몰라 무섭다"고 토로했어요.

21764_1687066353.png 연간 800만 마리의 새들이 투명창에 충돌해 폐사하고 있다. 국제신문DB


환경부는 투명창에 충돌해 폐사하는 새가 연간 800만 마리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연구를 보면 건물 유리창에 연간 765만 마리(1동당 1.07마리), 투명 방음벽에 연간 23만 마리(1km당 163.8마리)가 구조물에 충돌해 목숨을 잃습니다. 새들에게는 생활 속 공간인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맞닥뜨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죠.


■새는 투명창을 보지 못한다

맹금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들은 거리감을 인식하게 해주는 '양안시야' 영역이 좁게 형성돼 투명창 등의 구조물 인식이 쉽지 않다. 국립생태원 제공

새는 왜 투명창과 허공을 구분하지 못할까요? 원인은 '눈의 구조 차이'에 있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많은 육식 동물은 전면에 눈이 위치해 시야가 앞을 향하고 있습니다. 두 눈을 함께 사용하면서 시야가 겹쳐지게 되는데, 이 겹쳐지는 시야 영역을 '양안시야'라고 합니다. 양안시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더욱 명확한 거리 판단이 가능하게 되죠.


그러나 맹금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들은 눈이 머리 양옆에 붙어있습니다. 두 눈이 각각 머리 양쪽에 위치해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시야는 앞과 옆, 뒤쪽을 향해 거의 360도를 볼 수 있습니다. 새들은 겹쳐지는 시야가 거의 없고, 사물을 볼 때 한 눈으로만 보는 ‘단안시야’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전면에서 거리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새들은 스스로의 속도를 자신의 옆을 지나는 물체를 보고 인식하기 때문에 날고 있을 때 시선이 꼭 앞으로만 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리창에 충돌할 위험이 더욱 커집니다.


'유리'는 사람에게 좋은 재료입니다. 동물들, 특히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는 치명적인 재료 중 하나죠. 어떤 조건 하에서는 건물의 투명한 유리도 거울처럼 보일 수 있으며, 건물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필름 처리된 유리는 더욱 거울 같아집니다. 유리에 반사된 하늘, 구름 혹은 인접한 서식지는 새들에게 실제처럼 비칩니다. 새는 반사되는 유리에 가까이 날거나, 유리를 통과해 날아가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유리는 새들에게 큰 위협이 됩니다. 바로 앞에 구조물이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는 새들은 유리같이 투명하거나 빛을 반사하는 자재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더 인식하기 어려워합니다.


새들이 중력을 이기고 날아가기 위해서는 평균 시속 36~72km의 빠른 속도가 필요한데, 이때 유리창과 충돌하면 그 충격이 매우 커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소형 조류의 두개골은 계란을 깰 수 있을 정도의 충격만으로도 깨지기 때문에 유리창에 충돌한 새들은 대부분 충격에 의한 뇌 손상으로 죽게 됩니다. 설령 새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하더라도 부리가 부러지거나, 깃털이 빠지고, 눈 손상을 입는 등 큰 부상을 입어 더 이상 자연에서 살아가기 어려워집니다.


■충돌 방지하려면

21764_1687066675.png '버드세이버'는 새 충돌 방지에 효과가 없다. 국제신문DB

과거에는 독수리 모양 등으로 맹금류 스티커를 만들어 유리에 부착했습니다. '버드세이버'라고 불리는 스티커인데요. 고속도로 방음벽 같은 곳에 흔하게 붙어있습니다. 새들이 맹금류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새들은 버드세이버를 천적이나 자연 물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금만 피해서 날아가도 되는 장애물 정도로만 인식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버드세이버는 새 충돌 방지에 큰 효과가 없다고 하죠.

대부분의 조류는 높이 5cm, 폭 10cm 미만의 공간은 그 사이를 통과해서 날아가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환경부 제공
21764_1687066937.png 해운대인문학도서관 창문에는 '5x10 규칙'이 적용된 새 충돌 방지 스티커가 붙어있다. 허시언 기자

대신 '5×10 규칙'을 활용한 스티커를 붙이면 효과가 있습니다. '5×10 규칙'이란 대부분의 조류는 높이가 5cm, 폭이 10cm 미만인 공간은 그 사이를 통과해서 날아가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일컫는 말로 미국 조류보전협회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5×10 규칙에 따라 무늬를 적용하면 조류의 투명창 충돌사고가 현저히 줄어든다고 하죠. 국립생물자원관에 의하면 진한 회색, 오렌지색이 가장 효과적이고, 흰색이 효과가 덜하다고 합니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 11일에 시행된 '야생생물법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설치·관리하는 건축물 방음벽 유리벽 등 인공구조물에 야생동물 추락·충돌사고를 최소화하는 조치를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투명하거나 빛을 전부 반사하는 자재로 지어진 구조물을 설치할 때는 일정 크기 이상의 무늬를 넣도록 했죠. 환경부 관계자는 "기존 건물부터 새로 만들어질 건물까지 새 충돌 위험이 있는 건물이라면 전부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새 충돌 실태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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