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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산동 이자까야 Jun 22. 2021

영웅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현장에서 활약한 ‘영웅’ 가운데 동물도 있습니다. 36일간 매몰됐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아기돼지 주젠창(猪堅强)이 주인공. 실종된 가족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중국인들은 주젠창을 보며 위안을 얻었죠. 쓰촨성의 한 박물관은 “주젠창을 먹어선 안 된다”는 구명운동이 전개되자 축사를 지어 극진히 보살핍니다. 지난 16일 주젠창이 자연사하자 누리꾼들은 “쓰촨 대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에겐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며 애도했습니다.

경기도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진화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파키스탄 북서부에서도 진도 7.6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만 7만5000여 명. 기자가 최대 피해도시였던 발라코트에 도착했더니 멀쩡한 건물이 하나도 없더군요. 무너진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선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가장 서러운 존재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 며칠째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고아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길거리 야전침대에서 수술 받는 환자도 넘쳤습니다. 부산에서 파견된 의료진은 임시천막에서 머리가 찢어진 노인을 마취해 1㎝가량 벌어진 상처 부위를 봉합하기도 했죠. 


그곳에도 영웅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정부가 파견한 소방관과 119구조대원들. 그들이 매몰된 잔해를 헤집고 들어가 생명을 구할 때마다 파키스탄인들은 “슈쿠리아(감사합니다)”를 외쳤습니다. 계속되는 여진에도 영웅들은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가장 빨리 들어가, 가장 나중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졸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1일 쿠팡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경기 광주소방서 119 구조대 김동식 구조대장(52·소방령)의 영결식이 엄수됐습니다. 부디 소방공무원들 가운데 더는 영웅이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우리 곁에 머물면서 환하게 웃는 소방관이면 됩니다. 재난 현장에 투입되더라도,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먼지 툭툭 털고 살아나오는 구조대원이면 됩니다. 이제 우리가 영웅들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성숙한 안전의식이 ‘제2의 김동식’을 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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