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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물든 교육

by 연산동 이자까야 Mar 04. 2025

'참담한 15.3%'.


2007년 2월 15일 자 국제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입니다. 내용이 뭔지 짐작 가시나요. 대한민국에서 처음 치러진 교육감 직접 선거 결과를 다룬 기사입니다.

2006년 12월 7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전국 시·도 교육감을 주민 직선제로 선출하게 됐는데요. 직선제 1호 교육감이 부산에서 탄생했습니다. 개정법 시행 이후 전국에서 부산교육감의 임기가 가장 먼저 끝났기 때문이죠. 2007년 2월 28일 부산교육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직선제 선거는 같은 달 24일 치러졌습니다. 전국의 눈과 귀가 쏠렸죠.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투표율 말인데요. '고작' 15.3%에 그쳤습니다. 당시 역대 광역시·도 단위 선거 중 최저 투표율이라는 불명예를 썼죠. 선관위는 첫 직선제 교육감 선거임을 고려해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홍보비를 쏟아부었습니다. 선거 당일에는 차량 240대를 동원해 시민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지만,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죠. 선관위가 "참담함을 금치 못하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선거 다음 날 국제신문 1면에는 '참담한 15.3%'가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고, 당선인 기사는 옆으로 밀렸습니다.


2010년부터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교육감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아시다시피 현행법상 교육감 선거는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지 않습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인데요. 하지만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무관심이 '정치의 개입'을 부르고 말았습니다.


어느 때부턴가 교육감 후보들은 보수·진보·중도로 나눠 정치색을 띠기 시작했죠. 이뿐인가요. 사실상 거대 정당의 세력이 유력 후보 캠프에 합류해 교육감 선거를 주무릅니다. 다들 알면서도 모른 척 눈 감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 후보는 스스로 보수니 진보니 중도니 색깔을 나눠 진영별 단일화를 추진합니다.


다음 달 2일 치러지는 부산교육감 재선거도 똑같은 전철을 밟는 중입니다. 역시나 "내란 주범 옹호자" "선동 정치" 등의 발언으로 정치색을 숨기지 않는 후보가 난립했는데요. 단일화를 두고 같은 진영 후보끼리도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맞섭니다. 급기야 한 후보는 "정치적 중립성을 위배한 후보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며 반대쪽 진영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죠.


부산교육감은 연간 5조 원 이상 예산을 집행하고, 유·초·중·고 학생 교육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중요한 자리죠. 그런데 정책도 '깜깜이' 인물도 '깜깜이'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할까요. 무작정 후보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도입된 지 18년이 지난 선거 제도를 찬찬히 되짚어 볼 때가 됐습니다. 시민의 관심과 정치적 중립, 백년대계 공약까지 끌어낼 수 있는 묘안을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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