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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

by 미국의 할배


지난 며칠 동안 이곳 시애틀 날씨는 아직 겨울인 듯 비도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계획된 오늘은 흐리긴 하지만 봄날과 같이 포근 해졌다. 생일파티를 겸한 가족 식사를 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장모님을 모시러 가려는데 아들이 반팔 T-셔츠 차림으로 나오기에 밖에는 아직 추우니 옷을 두껍게 입고 오라고 하였더니, 아빠만 춥다고 했다. 내가 아직 한기를 느껴서 두꺼운 겨울 잠바와 바지를 입고서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서 거리를 보니, 도로변에는 예쁜 벚꽃들이 피어 있어서 이제 봄이라고, 이제 두꺼운 옷은 벗으라고, 나에게 속삭이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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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은 계절적 봄은 왔지만 아직 날씨는 춥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봄은 왔지만 내가 바라고 희망하는 그런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우리가 원하고 기다리던 시간은 되었는데 그 상황은 그렇지 못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예쁜 벚꽃들이 피어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봄이 되었지만 여전히 두꺼운 겨울 잠바를 입고 있는 나에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춘래불사춘"인 것이다.


이렇게 내가 봄이 왔음에도 겨울 잠바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혈액순환이 보통 사람들보다 잘 안 되는 심장병 환자라서 남들보다 더 추위를 타기 때문이다. 아마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지나가고 이 아름다운 꽃들이 지고 푸르름이 더해가는 초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서야 나만의 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봄은 왔는데 아직 봄이 되지 못한 곳이 나 말고도 다른 곳이 또 있다. 그곳은 바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나라의 혼란한 정치 상황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따뜻한 봄은 왔지만 대통령이 탄핵되므로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져 거리에 사람들이 나와서 집회와 시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판단을 해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유튜브 영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니 어쩌면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더 혼란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옴은 나만의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의 지난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눈도 많이 오고 추웠다고 했는데, 그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하고 희망에 찬 봄이 왔는데 아직도 정치적으로는 정리가 되지 않고 혼란스러워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져서 많은 사람들이 대공황이 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데,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선언하면서 세계 각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하여 그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 혹독한 겨울에 내린 눈이 녹고 예쁜 꽃들이 피는 봄은 왔는데 세계경제는 다시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하는 겨울이 오는 듯한 "춘래불사춘"의 계절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바라건대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우리나라의 정치가 하루빨리 안정이 되어서 이 위기를 함께 이겨나갈 수 있는 진정한 봄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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