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식증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by 늘봄

*글의 내용은 일부 학생을 말하는 겁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였습니다. 그날, 호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나은 세상으로 바꾸고 싶은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그들과 저는 보다 나은 세상, 보다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했습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습니다. 올바름에 목마르던 제가 본 신기루.


책은 마음의 양식. 누구나 많은 양의 책이 기록되기를 원합니다. 물었습니다.


“다들 책 몇 권 읽었어?”

“너는 그거 다 읽고 써? 그냥 서평 보고 쓰면 되잖아. 책 다 읽고 쓰는 건 호구지 호구!”

“…”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이 눈물은 물이라고 생각한 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확인하고 떨어지는 절망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앞에서 저는 호구가 되었습니다. 양심을 지키는 일이 호구가 되는 방법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마주한 현실은 양심을 지키는 일은 곧 호구가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양심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들의 것은 그저 가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들의 글, 그들의 말, 그들의 생각은 그들의 것이 아닙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짜로 기록된 허구의 인물입니까?


거식증. 그렇습니다. 그들은 거식증에 걸렸습니다. 그들이 먹은 것은 모두 가짜입니다. 먹지 않고 먹었다고 착각해버린 겁니다. 누구입니까? 착한 학생들을 거식증에 걸리게 만든 이는 누구입니까?






많은 학생이 대학을 가기 위해 거짓된 독서를 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책을 읽지 않고,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건 비양심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비양심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만든 ‘그것’을 탓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본인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 아닐까요?


*글 안에서의 거식증과 실제 거식증의 증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공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