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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추락의 원인

by 늘봄

몇 년 전부터 교권 추락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며 학생 인권이 주목받던 것과 대비되는 상황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이 대비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대비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학생 인권이 주목받은 것이 교권 추락의 원인인 것처럼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커뮤니티 댓글을 보면, 체벌을 다시 부활해야 한다고 의견도 많은 호응을 얻는다. 그러나 교권 추락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교권 추락의 원인을 따지기 위해서는 ‘교권’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교권은 다양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교사의 권리’, ‘교사의 권위’, ‘교사의 권한’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교권 추락’이라고 이야기할 때, ‘교권 추락’은 ‘교사의 권위’이다. 현실적으로 교사의 권리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물론 충분한지는 논의해야할 것이다. 교사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받지 않기 때문에 교사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교사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결국 사회적으로 권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아무리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제도는 언제나 허점이 있다. 그래서 권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제도적 허점으로 인하여 계속해서 교권 추락의 문제에 부딪힐 것이다. 그래서 교권 추락의 핵심은 어떻게 교사의 권위를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된다.



권위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회는 특정 인간이 특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권위를 인정한다. 사회가 권위를 인정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첫 번째로는 제도가 있다. 두 번째로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권리’를 제도로서 보장하고,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를 통해 권위가 형성된다.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는 단순히 사회가 약속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특정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해준다는 의미에서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연스럽게 권위를 인정하는 것일까?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권에 관한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성’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의 약점을 알고 있으면, 권력 관계가 형성되고, 어떤 사람은 나로부터 권위를 얻는다. 이는 직접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권위이다. 이 경우 나는 없앨 수만 있으면, 상대의 권위를 없애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는 그 사람에 대해서 욕할 것이고, 기회만 있으면, 그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것이다. 직접적인 영향력 때문에 강제성을 띄지만, 일시적이고, 약하다. 기회만 있으면 언제나 부서지는 권위이다.


그러나 ‘전문성’은 단단하다. 예를 들면, 의사의 처방에 따르는 것은 전문성을 인정하여 그 사람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있든 없든, 의사의 처방을 가능하면 따르려고 한다. 이 경우에는 지속성이 있으며, 의사가 앞에 있든 없든, 우리는 영향을 받는다.



2010년부터 학교 내에서의 체벌이 금지되었다. 체벌금지는 학생 인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사들의 권위에도 금이 갔을 수 있다. 체벌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을 때에는, 교사가 학생들의 몸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몸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 때문에 강제성이 있지만, 약하다. 실제로 강제성을 바탕으로 권위를 행사하는 교사의 경우, 학생들이 앞에서는 존댓말을 열심히 쓰고, 권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사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욕을 하고, 비난한다. 강제성의 띄는 권위는 비-인륜적인 것으로 인정되어 2010년에는 체벌을 금지하고, 인륜적인 방식으로 교권을 전환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패한 것이다. 왜 실패했을까?



21세기에 교권의 전환은 강제성에서 전문성으로의 전환이었다. 물론 21세기 이전의 교사가 전문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특히 ‘전문성’에 집중한 것이다. 즉 인격적인 방식의 권위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의사는 의학에 관한 전문가이고, 가수는 노래의 전문가, 바둑기사는 바둑의 전문가로서 권위를 인정해준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떤 전문가일까? 교사는 자신의 전공의 전문가이고, 도덕의 전문가여야 한다. 왜냐하면 학교는 특정 과목을 가르치고, 도덕을 가르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교육이 발전하면서, 특정 과목의 전문성을 사교육에게 내주게 되었다. 교사들이 자기 전공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입시’라는 현실과 ‘올바른 교육’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타협하는 공간이다. 사교육은 ‘입시’라는 현실만을 추구한다. 그래서 두 가지 사이에서 타협하는 학교보다 특정 과목을 입시에 맞추어 가르치는 사교육이 과목을 입시에 맞추어 가르치기에 유리하다. ‘전공에 대한 전문성을 내주었다.’라는 말은 사교육이 입시에 효율적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교사가 가질 수 있는 전문성은 ‘도덕’밖에 없다. 그러나 ‘도덕’에 관한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



교권과 도덕의 문제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더 이상 세상이 ‘도덕의 전문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사들이 ‘도덕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덕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저 세계 이야기처럼 들린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한다.’와 같은 도덕적인 이야기들은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이해관계에 따라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사람을 돕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에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보다 돈 많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 이상 도덕의 전문가는 가치 있는 전문성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서 도덕 전문가의 권위를 인정하는 세상이 되면, 교권은 회복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교권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가 도덕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교이기 때문에 도덕성을 바탕으로 교육되어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는 도덕의 전문성을 통하여 선별하지 않는다. 단순히 교과 능력 등으로 교사의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사교육에게 전공의 전문성을 잃은 학교 교사가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까? - 물론 모든 교사가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도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덕적인 사람이 곧 도덕의 전문가와 동치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별로 도덕적이지 않은 교사도 많다. 누구를 도덕의 전문가로 보아야할지 논의할 수 있지만, 지금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가 의사, 가수 등등을 인정하듯 과연 누구를 ‘도덕의 전문가’로서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수는 있다. -



현실적으로 교권회복은 굉장히 어렵다.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논의 방식이 적절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이다. 현재 많은 논의에서 ‘교권’을 향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교권 추락의 원인은 따지지 않고, 맹목적으로 교권을 향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부적절한 논의 방향이다. 교권 추락의 책임은 모두에게 있고, 책임을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 도덕보다 개인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현실과 이상의 타협을 하는 학교도 책임이 있고, 입시라는 현실에 최적화 되어 있는 사교육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 도덕의 전문가가 아닌 교사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며, 교사들을 어떤 전문가로서 인정하지 않는 학부모와 학생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교권 추락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에 얽혀 있다. 단순히 교권만 향상하면,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면 안 된다. 모든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낙천주의이다.


말하고 싶은 것은 교권 추락의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직 교사들이 학생들과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제도적 교권 향상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복잡한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의 단순화는 현재 교권 문제에 관하여 책임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몇몇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때로는 모든 책임을 학생에게, 학부모에게 돌리지만, 실제로 교권추락의 책임은 교사에게도 있고, 국가에게도 있고, 사회에게도 있다.



교권추락이라는 문제를 우리는 단순히 특수한 몇몇 사람의 혹은 몇몇 집단의 문제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몇몇 사람의 반성과 제도적 변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위치해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반성하고, 고민해야하는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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