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칸트의 음식 미학

(유튜브, [에스프레소 철학] "제4강, 칸트의 음식 미학")

by 권오상

1. 취미 판단이란?


1) 취미 판단

취미 판단은 음식의 맛이나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이다. 그것은 과학적, 논리적 판단과 구별된다. 우리는 짬뽕을 먹고 “맛있다”라는 판단을 한다. 또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미술 작품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판단한다.

그런 맛과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과학적 판단(개념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내면적 “느낌”이자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한 판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느낌”에 대한 판단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다.


2) 과학 판단과 취미 판단의 차이점


① 과학 판단은 사실 판단이거나 논리 판단이다.


a. 사실 판단은 어떤 경험적 사실을 이해하는 판단이다.

예) “이 짜장면은 감자 2개, 양파 1개, 고추가루 5g, 춘장 20g으로 만들어진다.”

“물은 100도C 에서 끓는다.”

b. 논리 판단은 수학이나 논리를 사고하는 판단이다.

예) “2+2=4”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180°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② 취미 판단은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예술적 판단)이다.


취미판단은 판단의 형식을 취하지만, “아름답다” “추하다” “맛있다” 등 주관적 느낌을 표현하는 판단이다.

예) “5월에 핀 장미꽃은 아름답다.” “이 짜장면은 맛이 있다.”

“생 수틴(Chaim Soutine)의 ‘고깃덩어리’라는 그림은 추하다.”


2. 취미 판단의 개별성과 보편성

1) 쾌락의 느낌

“나는 미술 작품을 보거나 음식을 맛봄으로서 쾌락을 느낀다. 그것은 어떤 증거가 없이도 납득될 수 있다.”(1) 우리는 짜장면이 왜 맛이 있는지 (과학적)증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짜장면이 맛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다. 짜장면의 맛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짜장면을 맛보는 사람들 자신의 쾌, 불쾌의 감정에 따라 결정된다.


2) 취미 판단의 개별성

취미판단은 쾌나 불쾌의 술어가 개인의 개별적인 경험과 결부된다.

예) “이 짜장면(주어)맛있다(술어).”(나의 개별적인 경험판단)


3) 취미 판단의 보편성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 짜장면이 맛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보편성)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느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필연성)한다.

예) 나는 어느 맛집에 가서 음식을 먹고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음식이 맛있을 거라고 생각(보편성)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필연성)고 생각한다.

3. 맛과 취미의 구분

1) 미각적인 맛과 예술적 취미는 엄격하게 구분된다.


흄(D. Hume)은 그의 미학에서 미각적인 맛과 예술적 취미는 유비적 관계(유사성)에 있다고 보았다. 볼테르(Voltaire)는 미각적인 맛과 예술적 취미는 쉽게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칸트의 미학에서는 미각적인 맛과 예술적 취미는 엄격하게 구분된다. 그것은 칸트에게 예술적 취미판단이 지성의 형식적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취미판단이 “순수한”(순수하게 지성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모든 신체적 욕구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칸트는 배고픔이나 목마름과 같은 신체적 욕구는 가장 낮은 감각으로 순수한 예술적 사색을 방해한다고 본다. 또한 어떤 경험적인 만족감도 취미판단을 결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2) 취미판단은 아름다움의 a priori한(비경험적) 근거를 요구하며 비개입적이고 사심없는(무관심한)(disinterested) 태도를 요구한다.


2) 시각과 청각만이 예술적 감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칸트는 오직 시각과 청각만이 예술적 감각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시각과 청각은 외부 대상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그것을 판단하고 숙고할 수 있다. 나는 눈으로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멀리서 들려 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각과 후각은 외부 대상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서만 감각할 수 있다. 우리는 미각과 후각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쾌감을 느끼거나 불쾌감을 느낀다. 그것은 주관적 쾌락과 관련된 것으로 외부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는 미각과 후각을 예술적으로 또는 미학적으로 무의미한 것으로 보았다.


4. 미각적 경험의 예술적 감상

1) 미각적 경험이 예술적 감상이 될 수 있는 조건


그렇다면 칸트의 관점에서 미각적 경험은 전혀 예술적 감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그 조건은 무엇인가?

칸트는 만약 어떤 사람이 음식에 대한 신체적 욕구가 없이, 또는 그런 욕구가 충족된 뒤에 음식에 접근한다면, 그는 그가 섭취한 것에 대해 예술적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럴 경우 맛의 식별은 예술적 판단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신체적인 감각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관련된다. 그것은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경험과 비교될 수 있다.


2) 탐식은 미식주의의 적이다.


우리는 단지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보다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맛있는 식사를 원한다. 그것은 미식적(美食的)인 맛보기와 관련된다. 그것은 “깊이 생각하는, 그리고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음식의 풍미를 식별하거나 식사를 즐기는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탐식은 미식주의(美食主義)의 적이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결코 미식가가 될 수 없다.


[각주]

1.ImmanuelKant, (1913), Kritik der Urteilskraft, Kant’s Werke Band Ⅴ. Berlin: Druckund Verlag von Georg Reimer. S.285.

2.Kant(1913), S.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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