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에스프레소 철학], "음식예술 제6강")
칸트 : 아름다움은 비경험적(a priori)이고, 초월적이며, 순수한 것이다. 그것은 비개입적이고 사심없는 태도를 요구한다.
헤겔 : 예술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전개 과정을 거쳐 발전한다. 특히 헤겔에서 아름다움과 예술의 본질은 정신적(지성적)인 것이며, 감각적 차원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예술이 감각적 차원을 갖는다면, 그것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의 이해를 돕는 부차적인 것이다. 아름다움과 예술의 이해에서 감각적인 것은 가장 낮은 것이며 최소한의 것이다.
감각적 차원에서는 시각과 청각만이 예술 작품의 영속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은 예술작품을 변형시킴이 없이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각과 후각은 예술의 영속적인 아름다움을 지각할 수 없다. 그것은 대상을 손상시키고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과 예술적 취미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교육받은 특권계급에 의해서 일반화되는 특성을 갖는다. 칸트와 헤겔이 말하는 예술적 아름다움의 보편성은, 지배적이고 존경받는 집단,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의 특권을 말하는 것이다.
맛은 음식의 풍미를 식별하는 감각 능력으로서 맛의 감각(미각)은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판단되는 것이다.(1) 그런데 그런 맛의 기호(嗜好)들은 서로 다른 사회 계급들의 습성(habitus)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 습성들은 경제적, 교육적 요인들, 그 외의 사회적 결정 요인들과 관계된다. 그런 습성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음식의 맛과 예술적 감상을 지각하는 범주를 만들어낸다.(2)
선별된 엘리트들의 맛의 습성은 다른 사람들의 기호에 압박으로 작용한다. 18세기 유럽 사회는 보편적이고 통일된 맛의 표준을 만들어 냈고, 지배적 가치를 갖게 되었다. 그런 맛의 표준은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로 작용한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소수 엘리트들의 맛집 선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과 같다.
칸트의 비경험적(a priori)이고 사심 없는 맛의 쾌락은 여가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부유한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부르디외는 프랑스에서 고급 요리를 먹는 사람과 노동자들의 식습관 연구하였다. 그는 여가를 즐기는 부르조아들의 식사 습관을 “자유롭고 사치스러운 맛”으로, 노동자 계급의 식사 습관은 “필요에 의한 맛”으로 특징짓는다.
“부르조아들의 사치스러운 음식은 접시에 진귀한 것들을 올려놓으며, 식탁 위에 펼쳐진 것들을 시각적으로 즐긴다. 그것은 힘든 노동으로 신체에 자양분을 주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은 자양분이 많고, 접시에 가득 채워지고 부피가 크며, 술을 마실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3)
맛을 감각을 초월한 것으로, 순수하고 관조적 관점으로 보는 것은 허구다. 계급적 특권에 오염되지 않은 식사와 맛은 없으며, 맛의 쾌락에 대한 순수한 판단 같은 것은 없다. 맛은 사회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며 특수한 것이다. 따라서 특수한 종류의 맛을 보편적인 미적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우리가 철학적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은 맛의 경험, 신체적 쾌락, 그리고 음식과 음료 그 자체다.
[각주]
1)Pierre Bourdieu,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trans. Richard Nic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p.1.
2)Ibid., pp. 56, 170, 466.
3)Carolyn Korsmeyer(1999), Making Sense of Taste -Food and Philosophy, Cornell University Press, New York., p.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