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설음
가고시마(鹿兒島)대학에 방문교수로 1990년대에 7월 중순경에 간적이 있다. 그때에 오이타(大分)현의 산림청에 가는 도로에 백제마을이라는 프랑카드가 길을 가로 질러 걸려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많이 일어 났다. 볼일을 보고 가고시마로 돌아오는 길에 오이타현의 백제마을에 가게 되었다. 나를 안내하든 오이타현의 산림청소속 운전수에게 백제마을을 가고 싶다고하니까 기꺼이 나를 데려다 주었다. 길도 좁고 모든 것이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백제마을이라는 곳에 신사(神社)가 길이 2-30m 되는 줄로 친 대나무 숲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신사나 기념품가게는 보잘것 없었다. 다시 차로 여인의 언덕으로 갔다. 그 길은 무척이나 가팔랐다. 차가 올라가는 데 헉헉 거릴 정도였다. 언덕의 광장 아니 넓은 공터에 도착하였다. 주위를 보니 첩첩 산중이었고 저 멀리에 보이는 것도 산이었다. 계절도 제일 더운 7월의 중순이었다. 내려서 포장마차처럼 된 가계에서 아이스크림 2개를 사서 운전수와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운전수의 고마워하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고마운지 절을 여러번 하였다. 관광객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광장 끝머리에 있는 정자를 보았다. 그것은 “백화정” 누각인데 부여의 낙화암에 있는 정자와 똑 같았다. 그 밑에 기증자 김종필로 되어 있었다. 주위는 온톤 빽빽한 숲이고 저 멀리로 산들이 물결치듯 펼쳐져 있었다. 정말로 첩첩 산중이었다. 이런 곳에 백제의 왕족들이 망명 정부를 세우고 백제의 부흥을 도모하려는 장소로 택한 이유를 알것 같았다.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가 다시 이들의 독립을 괴멸시키려 오기에는 불기능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고시마로 가기위해서 정거장 근처에 여관을 정하고 목욕을 하니 살것만 같았다. 피곤하여 누우니 조금전에 본 여인의 언덕이 떠 올랐다. 나는 여인의 언덕이라고 누가 이름을 붙였을까. 여러 상상을 하게 되었다. 역사에는 백제가 망하고 백제의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왕족들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와서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안다. 그때 왕족을 따라 궁녀들이 같이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그때 따라온 궁녀들은 나이가 십대 중반들 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부모, 형제가 그리웠겠는가. 그들은 백제의 부흥 아니 백제를 다시 세우는 것보다는 부모 자매, 형제, 그리고 동무들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래서 높은 이 언덕에 올라와서 서쪽의 산들 넘어에 있는 백제의 고향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어쩌면 사랑하는 애인, 친구, 같이 뛰어놀던 동무들을 얼마나 그리워 했을까. 궁녀들이니 마음대로 왕족들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 그들 앞에서 허리만 굽히면서도 마음속은 산넘어, 서쪽바다 건너에 있었을 것이다. 고향을 그리면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울었을까를 생각하니 나도 저절로 눈물이 났다. 망국의 한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부모, 형제를 보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애절하였가를 생각해본다. 그들에게는 백제의 부흥보다는 자기를 그리워 할 가족, 산천이 더 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본 이곳 주민들이 여인의 언덕이라 이름 지었을 것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그런데 오이타(大分)현에서는 이곳을 한국을 겨냥한 관광사업을 위하여 관광개발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아이로니를 아니 느낄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