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정의가 약간씩 색깔이 다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가페적사랑이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자식 사랑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라도 그들은 자식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에서는 가능한지 고개가 갸우뚱하다. 아무리 자식을 위한 것이라도 그 사랑이 그래도 타당성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런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손각락질을 받게된다. 요즈음은 아마도 에로스사랑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 말은 사람에 따라서 다른 생각이겠지만 무조건적 사랑은 없다는 의미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유산같은 것도 함부로 한꺼번에 다주면 자식으로부터 홀대를 받는 다고 조언들을 하고 있다. 어떤 이는 유산을 물려줄때는 각서를 받아서 각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원점으로 되돌려야한다고 한다. 부모 자식간에 그야말로 법적인 문제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는 생각이다. 흔히 말은 하지 않지만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랑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대에게 자기의 요구를 다 들어 달라고하면서 자기는 말로 얼버무려고하는 것이 팽배해 있다. 마치 생태계의 먹이 피라밑처럼 하는 사랑도 있다. 자기는 조금도 손해보지않고 얻을 것만 얻으려는 약육강식같은 사랑은 현대 사회에서는 어려운 것이다. 이기적 사랑이다.
최소한의 사랑은 내가 남에게 베푼 것만큼 해달라고 해야한다.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을 남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다. 사랑이란 것은 두사람이 똑같은 합일점이 있을 때에 두사람의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 진다. 지금은 이처럼 서로 주고받는 것이 공평한 사랑이란 것이 오히려 두사람을 돈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받으려는 사랑도 있는 만큼 주려는 사랑도 있어야 하는 데 그것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자기만의 욕심적인 사랑이 계속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잊어 버리고 싶은 사랑도 있다. 기억 속에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가물 가물한 잊지 못할 사랑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저건너 산너머로 넘어가면 잊혀지는게 사랑이다. 여기 저기서 그럴싸하게 묘사하는 사랑의 이야기도 이제 사라져간다. 너무 뚜렷이 기억속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아득히 먼 저 수평선 너머의 이야기로 남으면 더 멋진 것이 될 수도 있다. 생각날듯 말듯하는 이야기가 우리의 뇌리를 스칠때마다 살아온 내인생의 파노라마를 생각해보는 것도 우리를 즐겁게 할지 모른다.
이제 창가에 앉아 노을지는 햇살속으로 내 청춘의 멍한 사랑을 날려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