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으면 어떻게 될까
바쁘고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면서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아가는 속을
아무에게도 드러낼 수 없을 때 브런치로 달려온다.
토하듯 글을 써 내려가면 어느새 글 자체에,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집중하느라 내 마음이 가라앉고
내가 왜 이토록 불안했는지 한 템포 떨어져 생각해 보게 된다.
아침이 되면 '긍정 확언'이나 '경제 뉴스' 등을 틀어놓았는데 최근 긍정 확언도 경제 뉴스도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불안도가 높아졌다.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 또 눈을 뜨고 하루를 마주할 자신이 없는데 어김없이 아침이 되었다는 것이 속상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잠에 도망가버리면 꿈에서라도 평안할 수 있는데 잠에서 깨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 실체 없는 그 불안과 자괴감, 자기혐오,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감이 나를 감싼다.
최근 지인이 "넌 걱정이 없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아프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걱정이 많고 불안이 많은지 다 토로하고 "야 나도"라고 말하며 서로 어깨동무라도 하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좋았다. 내가 이렇게 무너져내려도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구나.
그러던 오늘 아침 우연히 스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내가 욕심낼 수 없는 것을 욕심내니까 괴로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꽃을 너무 좋아하고, 길에 핀 꽃을 보고 "예쁘다, 좋다" 하는 것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걸 보고 "내가 다 꺾어서 가져오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괴로움이 온다는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것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걸 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안 되는 것을 붙잡고 계속 바라니까 마음에 괴로움이 쌓이는 것이라고.
그 말씀을 듣는데 조금은 체기가 내려가고 몸에 온기가 느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다.
오지도 않은 미래,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공간이나 사람에 대한 박탈감, 이미 멀어진 인연에 대한 미련 등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에 이토록 매달리는 내가 참 어리석다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반복된 실수를 고쳐보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에 사람이지 않은가.
정말로 성숙하고 싶다. 나를 좀 아껴주고(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괴로워하는 나를 꺼내주고 싶다.
기억하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면, 나에게 남는 것은 결국 '괴로움' 뿐이라는 걸.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두면 적어도 나는 그 괴로움에서는 탈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