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아 두 스틱에 컵 가득 우유를 부었다. 공황 증세의 전조가 식욕과 잠이 사라지는 것인데, 오늘은 새벽부터 입이 쓰기 시작한다. 어쩐다. 초콜릿은 없고, 목이 따갑도록 달달하게 아이스 초코를 한 잔 마셔본다. 수액 맞듯이 이거라도 부어 보는 거다. 남편은 부산 시댁에 가서 집을 비운 지가 며칠이다. 내일이 돼야 그가 돌아온다. 탈출한 내 식욕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 짜증난다.
독일 와서 맞는 첫 주말 의기양양하게 남편은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안다며 우리를 데리고 외식을 나섰다. A66 고속도로를 타고 30Km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한식당이었다. 출장자로 한식당을 겸한 한인 호텔에 여러 번 와봤던 남편이 야심 차게 기억하고 준비해온 기색이다.
20년 전 배낭여행객에겐 그림의 떡이었던, 말로만 듣던 유럽의 한식당이었다. 며칠을 머리도 못 감고, 같은 옷을 입었던 우리 일행들과는 다르게 커리어를 끌고 다니는 단체 여행 대학생들은 이런 한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으려나 싶었다.
한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있고, 진하게 화장한, 부리부리한 눈의 부채춤 인형이 카운터에 놓여있다. 할머니 집 벽장 속에 있을 법한 융 호랑이가 벽에 걸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냄새. 불고기와 김치찌개 냄새가 베인 누릿한 벽지가 레스토랑이 지나온 시간의 향기를 뿜어낸다. 조악하지만, 영 가짜는 아니다. 진짜가 아님에도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거기까진 좋았다. 살았구나 싶은 기분이 메뉴판의 가격을 보니 식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짜장면 한 그릇에 10유로, 만 삼천 원이라니, 2015년의 주부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다. 메뉴판과 남편 얼굴을 번갈아서 보다 ' 애라, 모르겠다.' 싶어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나온 짜장면. 원가가 거듭 생각난다. 오뚜기 짜장에 풀무원 칼국수 데쳐서 먹으면 되겠는데 싶다. 음식에도 부아가 치밀고, 식당도 싫어졌다. 독일 와 처음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부심 차게 나온 남편과 눈을 마주치기 힘들다. 남편이 거듭 묻는다.
" 맛있지?"
남편의 선택에는 칭찬을 듬뿍 쏟아줘야 하는 편이다. 의구심도 많고 조심성도 깊은 남편이라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
말이 없어진 내 눈치를 보는 남편과 배부른 아이들을 보니, 비빔밥 같은 감정이 떠오른다. 일요일 Kriftel의 전원 풍경은 명화에나 나올 법한 스산하고도 한산한 모습이다. 오래된 붉은 지붕과 군데군데 보이는 사과나무, 멀리 보이는 넓은 들판. 우리 넷에게서, 내 입 속에서 풍겨 나는 파 기름에 볶은 돼지고기 냄새며, 춘장 볶은 내음이며 눈앞에 펼쳐진 독일과 불일치 정도가 심하다. 하아.... 우린 여기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물론이다. 지독히 먹는 것에 집착하게 되면서 생활이 단순해지는 적응기라는 것을 갖게 된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먹던 맛을 구현해 낼 수 있을까? 뭘 먹으면, 뇌가 거듭 떠올려내는, 이맘쯤에 먹었던 음식들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있을까에만 집중하게 된다. 유럽에의 적응이란 뇌를 달래는 작업인 것만 같다. ' 이만하면 비슷하지?'라고 다독거려주는 거다. 또는 '한국 가면 맛볼 수 있어. 기다려'라거나 또는 '출장 다녀온 남편 편에 전달받을 수 있어'라고 위로해주는 과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잊을 수 없는 심상들이 있다. 폭풍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이라는 것인데, 주로 명절이나 행사날이 되면 떠오른다. 외갓집에서 먹었던 빈대떡, 엄마가 해주던 깻잎 장아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었던 어묵 가락국수. 그 주에는 그것만 생각한다. 꼭 먹어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확신하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이번 주에 그 맛을 보고 말리라 결심한다. 활이 단순해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까? 어제 떠올린 맛에 어떻게 도달할 지에 대해서 궁리를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아이가 떠올리는 때도 있다.
" 엄마, 동치미."
그래, 동치미. 나도 엄마가 해주는 동치미가 먹고 싶구나, 딸아. 넋두리할 시간이 없다. 동치미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은 느낌적으로 온다. 초보 주부인 데다 못하는 음식이 없는 친정엄마를 둔 덕에 동치미를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수도 없이 먹었으니 동치미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우러남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무를 구해야 하고, 쪽파를 찾아야 한다. 어디에 보관을 하고 어떻게 숙성을 해야 할지 조사하고 적용, 실행한다. 우울해지거나, 번 아웃될 틈을 주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 아이들에게서 솟아 나오는 맛에 대한 그리움 덕에 실컷 바쁠 수 있다. 한국 슈퍼에 무는 나오는지, 독일 무의 밀도와 탄성은 한국 무와는 어떻게 다른지, 프랑스산 굵은소금은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가니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맛을 구현해낼 사람이 오직 나뿐이기에 실패는 있어도 절망은 없다. 망치면 잽싸게 다시 해보았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잘 훈련된 취사병처럼 한식을 해내는 내가 있더라. 배달 음식을 시켜먹어 보면, 실망만 하고 돌아서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집 한 군데만 찜하고 나머지 메뉴는 내 손으로 하는 것이 훨씬 나은 상황이다. 식재료를 손만 까딱하면 구할 수 있으니 밥하기엔 낙원 같이 느껴져 코로나에도 악착 같이 챙겨 먹이고 해 먹여 내다보니 네 식구가 동글동글해졌었다.
생존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권태의 시간이 온다. 독일 적응기도 한국 적응기도 그 궤를 같이 한다. 독일 3년 차 여름이 되자 손도 까닥할 수 없는 때가 오더라. 오직 운전만 가능해서 반경 30분 이내의 한식당 어디에서든 10유로짜리 Mittag 메뉴로 점심을 해결하고, 저녁은 Waldraut의 수제버거나 터키인이 운영하는 케밥을 테이크아웃으로 아이들과 때우곤 했다. 살만해지니, 입맛은 한국으로 줄달음쳐버렸다. 그리움에 영혼도 한국에 싣어보내면서 미각도 함께 태워 보내버린 듯했다.
딱 오늘도 그런 날인가 보다. 아들은 새벽같이 혼자 일어나 숙제를 마무리하고 스스로 챙겨 수학 학원에 갔고, 딸은 내가 만들어둔 김밥을 싸들고 3시간짜리 미술 수업을 간 토요일 10시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젠장, 다 어디 간 거냐고! 한국만 오면 걸신들린 듯 먹어댈 것이라고 칼을 갈았던 거 아니었어? 먹고 싶었던 것들, 기억의 저장고에 차곡히 밀어 넣어 두었던 것들은 신기루처럼 한국에 왔는데 사라져 버린 것이란 말인가?
제 때 먹어야 낫는 병이라고들 하더라.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 병이 나은 것이라고들 하던데, 아무리 애를 써봐도 맛있는 것의 'ㅁ'도 떠오르질 않으니 큰일이다. 지혜를 짜내 보자면, 이번에는 그리움을 독일로 실어 보내봐야겠다. 먹을 것이라곤, 맛있는 것이라곤 눈을 부릅떠야만 찾을 법한 독일이지만, 입맛을 돌이킬 수 있는 기억 한 조각은 있을 테다. 얘들이 돌아오려면 서너 시간은 내게 주어졌으니, 찾아보자. 입맛, 맛있는 것, 침샘 자극했던 그 순간, 한 번은 있겠지.
대문 그림
월하송죽호족도, 조선 19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