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가기 딱 좋은 날씨다. 태양의 고도가 좀 더 높다면 정확히 오늘 같은 날씨이다.
2015년 3월, 오버오젤시 공공수영장이 시설을 개보수하여 개관을 했다. 그해 여름에는 나와 같은 시기에 재독 주재원이 된 M언니랑, 수영장을 함께 찾아가 보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6월인데 태양은 지글지글 끓어대고, 바삭한 공기에 새로 연 야외 수영장에 한가롭게 누워있는 독일인들이 보인다. 독일 정부에 내는 세금이 얼만데, 꼭 이곳을 내 곳으로 만들리라 마음먹었다.
독일 수영장은 남녀 탈의실 구분이 없어서, 물품 보관함 앞에서 알아서 잘 갈아입으면 된다. 당황스럽지만, 것 또한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아이들이 어렸기에 문을 잠글 수 있는 가족 탈의실 또는 그룹 탈의실을 사용해서 갈아입곤 했고, 옆 사물함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독일인들의 나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탈의실도 귀찮은지, 독일인들은 야외 명당자리에 일단 자리부터 잡은 다음에 홀랑홀랑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것도 잘하는 편이다.
독일 현지 학교보다 방학이 한 달가량 빠른 국제학교 학제에, 6월 초순 야외 수영장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다. 연금 수령으로 시간 여유가 많은 오버오젤 노인분들 몇몇 계실 뿐이다. 이 연금 수령자들을 위해 공공 수영장은 낮 기온이 15도만 넘어도, 야외 수영장을 반지르르 닦아 정돈하여 여름 시즌 개장을 기꺼이 하는 눈치다.
나와 아이 둘, 가족 할인으로 들어가면 15유로 약 2만 원 정도이면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야외 잔디, 어린이용 풀, 마른 잔디에 깔린 부드러운 나의 애정템 하리보 돗자리를 깔고 앉은 순간에는 공간이 다 우리 것이라서 입장료는 싸게 느껴진다. 남편도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싶었다. 천국은 이런 모양일꺼야 하는 순간을 남편이 누릴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았다.
돗자리에 반쯤은 눕고 반쯤은 앉은 자세로 주변을 둘러봤다. 1번으로 아침부터 수영을 즐기신 할아버지가 건너편 나무 밑에서 툴툴 몸을 말리더니 수영복을 내리신다. 원하지 않게 할아버지의 엉덩이를 보게 된다.
탈의실은 남녀 구분이 없으나, 샤워실은 구분이 있어서 뿌연 김 속에서 독일인들 엉덩이를 실컷 볼 수 있다. 남자아이인 큰 아이는 여자 샤워실 사용을 꺼려하니, 큰 아이를 얼른 씻겨서 내보낼 것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큰아이를 씻겨 내보내고 짬이 나면, 처음 보는 한인의 누드를 구경하는 눈빛들의 쏟아짐도 느껴진다.
아동 학대로 한인의 집에 독일 경찰이 출동했더라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재독 한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몽고반점이 선명한 아이였나 보다. 한인 아이의 몽고반점을 멍으로 생각한 독일 할머니는 수영장에서부터 한인 아이와 가족을 따라나섰다. 그들의 뒤를 밟아 주소를 알아내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우리 얘들은 몽고반점이 보일 때는 아닐 만큼 커서 다행이다는 생각만 했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같은 이야기네 하며 흘려 들었던 호박씨였다.
정인이가 가고, 또 다른 정인이들이 나올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하고는 살던 대로 산다. 아이들이 죽어도, 나는 내 아이들과 잘 지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한다. 내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삶 속에 파묻혀버린다. 누군가 하겠지 또는 어찌 되겠지 한다. 시퍼런 멍을 보고도 전화를 들지 않으며, 멍을 가진 아이를 쫓아 가 신고하지 않는다. 신고를 받으면 문제시하지 않고 덮는다. 별일 없겠거니 생각하고 신고를 무시한다.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사건이 커졌을 때는 아이가 죽고 나서다. 그럼 신고를 받은 이가 방송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저녁이 되면 자신의 아이가 자신을 반기는 집으로 돌아간다. 사과했으니까 나아지겠지 하며 내게 등을 기대고 뉴스를 보는 아이를 보담는다.
독일인들 아동학대가 없을까만은, 몽고 반점을 신고한 할머니 같은 이의 행동으로 어느 생명이 목숨을 구할 수는 있다. 독일은 더 나은 국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볼 만한 사회구나 하겠다. 이런 깨달음이라면 삶을 살고 싶어 진다. 희망을 잘라버리는 사회라면 삶을 내려놓고 싶어 진다고 믿는다.
희망을 자르지 않는 이가 나이고 싶은 마음에 전화기를 들어본다. 버튼도 눌러본다. 오늘도 수고하라는 배웅을 받으며 학교에 간 아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내 숨을 걸 수 있는 두 아이도 우리가 애증 하는 이 공동체 속의 하나이니, 펜을 들어 세상을 향해 휘둘러 본다.
브런치 벗이신 발검 무적님이 브런치파 궐기 대회의 장을 여셨네요. 도움이 되고 싶어 글을 올려봅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 글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ahura/1052
대문 그림
Peder Severin Krøye, Boys bathing at Skagen, Summer evening, 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