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장애를 낫게 하는 데 특효약은 취침시간 준수와 끼니 챙겨 먹기인 것 같다. 먹고 자고가 안되면 신경증이든, 정신의 감기든 나을 리가 없다. 학구열이 하늘을 찌르는 동네로 귀임을 했지만, 밤 10시가 되면 우리 집은 소등이다.
" 엄마는 머리가 어지럽고, 쉽게 피로해지는 병에 걸렸어."
코 고는 남편을 안방에 두고 거실 바닥에 이불을 피고 자기 시작했다.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눈이 부셔 잠이 안 온다고, 탓을 해보고 예민을 떨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으니, 아직 밝은 얘들 방문을 일일이 닫고 자리에 일치감치 누워본다.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잠에게 제발 일찍 와달라고 간청한 지 몇 달째다.
주말이라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잔 탓에 12시를 넘겨 버리면, 수면 유도제를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때 방문을 열고 나온 아들.
" 자기 전에 얼음물을 먹으면 화장실을 가게 되더라."
자다가 나왔다면 저렇게 또박또박 말할 리가 없는데 싶어 방에 따라 들어가니, 아이 핸드폰에 켜져 있다. 에어 팟으로 흘러나오는 젊은 미국 남자들의 팟캐스트. 에 심장이 발끝으로 내려앉았다. 침대 속에서 게임 유튜버들과의 대화를 들으면서, 깨소금 재미를 맛보고 있었을 열다섯 살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향수병이었다.
독일 아이들은 빠르면 8시, 늦으면 9시면 잔다. 독일서는 독일인처럼 사는 거야. 좋은 건 배우면 되는 거야. 이 두 가지를 가슴에 새기고 9시면 하늘이 무너져도 침대로 밀어 넣었다. 그들이 침대로 들어가면, 컴퓨터를 켠다.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이었다. 독일서도 넷플릭스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봐야만 하는 한국 드라마를 넷플릭스를 통해 얻을 수는 없었다.
호박씨의 취향 탓도 있다. 사람이 둘 이상 죽거나, 사람 아닌 외계 생명체 이를 테면 좀비 따위가 나오는 드라마는 아예 보지 않는다. ' 도깨비'에서 귀신들 나오는 장면도 독일 새벽에 아줌마 혼자 앉아서 보면 소름 끼치게 무섭다. '도깨비'는 로맨스 드라마인데 혀가 새카만 악령은 왜 자꾸 나오느냔 말이다.
'시그널' 에는 대학 동기도 엑스트라로 출현해서 챙겨 봐야 하는 것이 인지 상정인데 친구가 살해당하는 역할로 나오는 데다가 사람도 줄줄이 죽어나가니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팅커벨이 뿌려주는 마법 가루 뿌리듯 처럼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 주소를 주소창에 써넣어본다. 화면을 헤집고 들어가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밤마다 피터팬처럼 한국으로 날아갔다.
서른여덟의 나보다 대 여섯 살 어린 서른 초반으로 설정된 여주인공이 서울의 밤 편의점에 앉아 친구랑 연애 상담을 한다. 독일에서는 한 병에 만원도 하는 초록병 소주를 쌓아 두고 마셔댄다. 집에서 한 발자국만 나서면 애 딸린 동양 여자일 뿐인데, 드라마 속 그녀는 거칠 것 없이 나의 도시 서울을 누비고 다닌다. 여주인공보다 조금 덜 이쁘고 성격 좋아 보이는 조연, 동성 친구에게 한국말로 실컷 가족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술김을 빌어 있는 말, 없는 말 다하는 주인공이 부러워 미치겠다.
마른 프레첼이나, 독일 육포에 알코올 프리 맥주, Radler를 곁들이다가 눈물을 훔쳤다.
아... 씨... 집에 가고 싶어.
내 집도 없는 서울에 가고 싶어.
저 못생긴 가로등, 차가운 도시의 보도블록, 봄날 길가에 눈 익은 들꽃들, 어느 것도 여기선 찾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워한 것은 싱글의 자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잠 안 자고 드라마를 보다 보면 느지막이 잠만 자러 집으로 들어온 남편을 맞게 된다. 그 시간까지 놀다 들어오긴커녕, 마시지도 못하는 술이 그득한 술자리를 지키다 온 그가 드라마 좀 적당히 보라고 말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알고 보면 남편의 인내심은 상상을 뛰어넘는 깊이겠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검푸른 바닷속인가 보다.
시계가 한시를 가리켰다. 10시에는 잘 준비를 하고 11시에는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엄마가 세팅한 루틴의 힘으로 낯선 이곳에 녹아들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새벽 한 시에 영어로 된 팟캐스트를 듣니라 깨어있는 아이가 아들이라니. 거기다가 서툴어 금세 들키는 만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
한글 쓰기 시킨다고 7년 전 독일에서부터 일기를 쓰게 하고 답을 달아주었다. 7년째 아이들과 일기로 편지를 주고받고 있는 셈이다.
3월 전면 등교를 하면서부터 아들의 일기장엔 국제학교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동시에 한국 얘들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이해되지 않는 것에 끼끼 덕 거리며, 재미없는 것을 즐기러 몰려다니는 반 친구들들이 멍청하고 , 말도 안 된다고 쓰기 시작했다. 국제학교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한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도 했다. 한국식 문법 용어를 익히고, 외운 문법을 시험 보는 영어 시간에는 특히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학교와 학원 말고는 집 밖에 한 발자국도 안나 갈려 하기에, 매일 아이를 데리고 미도산을 간다. 야트막한 산이라 하니 '한국 싫어'를 래퍼처럼 흥분하며 쏟아내면서도 적당히 호흡할 수 있는 강도의 걷기다.
아이의 말을 엮어 비트를 붙이면 ' 교실 이데아'나, ' No more dream' 같은 명곡이 나올 것만 같다.
겪어보니 향수병은 불치다. 5년 내내 지속되다 돌아와 보니 잠시 사라진 듯하기가 무섭게 이번엔 아들에게 전염되었다. 잠 안 자고 드라마를 보던 호박씨를 말릴 새도 없이 남편은 바빴다. 듣기 싫은 말은 하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 탓도 있다. 글쓰기에 전념하면서, 내 병을 구실 삼아 반쯤 눈감고 남편을 본받아 너그럽게 아들을 대해야 할까? 아들이 향수병을 앓을 데까지 앓게끔 둬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다.
몰래 듣던 팟캐스트가 들키자 에어 팟을 손에 꼭 쥐고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엄마, 정신 차릴게."
아직은 향수병 하고 친한 정도 보단 엄마 호박씨랑 친밀한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본다.
속내를 일기장에 적어내고, 산길에서 랩을 해대는 아들에게도 한국을 그리워할 날이 올 것이란 것을 안다. 그러니 어제 그리고 오늘이 전부인 냥 아이의 향수병을 다그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다독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