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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ul 19. 2022

개업하기 부끄러워서

' 20일 날 오픈 못하겠어.'

카톡으로 보내왔다. 매장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파티시에가 오픈을 못하겠다고, 카톡으로 보내오다니. 

'음.. 사람들에게 20일에 오픈한다고 다 이야기했는데?'

그랬다. 카톡에 올려둔 프로필을 보고 코로나 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나의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독일에서 같이 주재를 했던 엄마들도 한국에서의 오랜 인연들도, 코로나로 붕 뜬 인연들이 '여왕의 오후' 오픈이 쓰인 프사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내 돈은 한 푼도 안 들어갔지만, 내 가게라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주재기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한국에 돌아와 보니 번아웃과 공황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반토막난 월급과 생각보다 잘 사는 반포, 그리고 훌쩍 커버린 아이들.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반포 학원가가 코앞이라, 아이들은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의 사교육비를 들여 생활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내손에 매달 쥐어지는 것은 350만 원이었다. 시댁에 보내드리는 50만 원을 제하고, 불규칙하게 주어지는 보너스도 빼고 월 350만 원이 통장에 찍혔다. 어디라도 취업을 해야겠다 싶었다. 마트 캐셔라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데.... 독일에서 털린 체력과 닥친 코로나에 취업은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코로나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한국 교육에 적응하니라 고군분투했다. 배달음식이라도 시켜 먹고 싶은데, 가계부를 적어가면서 식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계라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간식이라도 해서 아이들을 달랬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줄어든 월급에 적응하지 못해서, 노래처럼 부르던 강남 살이에 적응하지 못해서 포기하기는 싫었다. 주눅 들어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 당신이 거기서 장사하면 얘들이 부끄러워할 수 도 있어." 

아파트 바로 앞 상가에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지하층에 빈자리를 보고 눈이 뜨였다. 남편에게 투자하는 셈 치자며 눈을 반짝이며 계획을 이야기했다. . 당장이라고 계약하지 않으면 싼 자리가 나갈까 봐 마음이 급해서 남편에게 설명도 빠르게 했다. 말없이 유튜브를 보며 나의 계획을 듣고 있던 남편에게서 나온 답 속엔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들어있었다. 

의사, 변호사, 외국계 워킹맘들로 가득한 동네에서 장사를 한다면 아이들이 동네 부끄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보증금 천만 원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서 남편에게 말하길 머뭇거리고 있던 나에게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디저트를 구워서 팔고,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파는 엄마가 부끄러울까?  어차피 난 의사나 변호사 엄마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안 부끄러운 엄마가 되려면 남편이 생각하는 고급 직업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못할 바에야 집에서 숨죽이고 있는 편이 나은 것일까? 



동생에게 내가 음료를 팔아서 월세를 낼 터이니, 하고 싶은 디저트를 구우라고 했다. 동생의 반응도 예상과는 달랐다.  일단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파티시에 일도 자신 없어했다. 월세 싸고 집에서 가까우니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고 출퇴근 시간도 아낄 수 있는 것은 나였다. 어두운 지하층은 일하기 힘들다고 했다. 

동생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 아이들 돌보면서 집 안일에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자리를 세팅하고 동생에게 함께 하자고 우겼다. 

오픈을 앞둔 지금 생각해보면, 디저트 카페는 배수와 전력, 환기 등의 요소들을 고려하여 입점해야 한다. 파티시에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내가 동생을 데리고 이 자리, 저 자리 아무 자리 나 네이버 부동산을 뒤져서 반포와 교대 일대를 보여준 것이었다. 마침 코로나가 한창이라, 점포들의 권리금은 전혀 없었고, 매물도 많았다. 1년 전 요맘때였다. 찌는 듯한 더위에 주말만 되면 동생을 강남으로 호출해서 집 주변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 





'20일 날 오픈 못하겠어.'

동생의 카톡을 한참 노려보았다. 복식호흡을 했다. 후우 후우. 

친정의 투자금이 들어갔고, 동생의 꿈이 들어간 여왕의 오후에서 내 자리는 아르바이트생이다. SNS 마케팅을 하고 있고, 배너를 만들고, 메뉴판을 그리고, 시장조사를 하고,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아르바이트생이다. 등록도 되어있지 않은 직원이다. 


' 응. 하고 싶은 데로 해. 27일 오픈? '

' 아니. 28일 오픈. 언니 나 일주일 동안 열심히 디저트 연습하고 나서야 자신 있게 오픈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상태로는 문을 열 자신이 없어.'

여왕의 오후는 그녀의 가게다.

  아무리 동생이 나에게 매달려 이것저것 상담하고, 요것 저것 부탁한다고 하더라도 가게를 채울 달콤함들의 엄마는 동생이다. 파티시에의 디저트는 만드는 이의 손으로 태어나는 작품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의 영혼이 담긴다. 쉽게 말하면 그날의 컨디션이, 어렵게 말하면 순간의 삶이 닮기는 것이 음식이다. 

자신 없어하는 파티시에의 마들렌은 자신 없는 맛이 난다. 불안한 파티시에의 휘낭시에에서는 불안의 맛이 스며 난다. 그러니, 영영 오픈을 못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을 늦추고야 말아야겠다는 동생에게 내가 해줘야 하는 것은 무한대의 지지와 응원이다. 


'일주일 늦춘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어. 뭐라고 할 사람 없는 일하려고 창업한 거잖아. 28일 오픈. 알겠어! 인스타랑 블로그에 공지 올리께.'

즉시 Canva에 들어가서 금손 아줌마로 태어난다. 

공지를 보며 동생은 폭풍 칭찬. 

' 언니는 못하는 게 뭐야?'

말만 언니지, 사실은 언니는 그녀일지도 모르겠다. 내 가족의 입장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먼저 생각하는 나보다 훨씬 더 나를 생각해주는 그녀가 분명 나의 손위다. 받은 만큼의 응원보다 더 응원을 해줘야 하는 지금, 늦었지만 제대로 된 언니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다. 

' 그렇지? 이게 얼마짜리 디자인이니. 공짜로 해준다'

늘 그렇듯 동생 앞에서 큰소리를 쳐본다. 오늘 당장 의사나 변호사가 된다고 해도, 나는 부끄러울 것이다. 이기적으로 내 것을 챙기며, 나만을 생각하면서 살게 된다면 아이들에게 한 없이 부끄러울 것이다. 


지난 주말, 홀 단장을 끝낸 가게에 아이들이 찾아왔다. 

" 엄마, 멋진 공간이다. 대박."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칭찬을 쏟아낸다. 이렇게 우리만의 속도로 세리머니와 위로를 하면서 살 맛나게 일하려고 가게를 연 것이다. 

오늘부터 동생은 마들렌을 굽기 시작하고 있다. 고소한 버터향이 가게를 채운다. 완벽한 마들렌이 어떤 건지 나로선 알 도리가 없지만, 완벽한 오픈이 무엇인지는 안다. 열고 싶은 때 여는 것, 그것이 완벽한 개업의 닉네임이다. 

그나저나, 동생아. 3개월 임대료 면제는 8월말까지인거 알고 있지? 8월말까지는 오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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