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거기 S랑 갔던 곳이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S와 S의 엄마, M과 함께 했다. 딸이 S를 떠올리는 횟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어 다행이다. 처음 S의 가족들이 사라졌을 때, 아이에게 어떤 설명을 해 줄 수가 없어서 얼버무렸다. S는 언제 만나냐고 묻던 아이에게 S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 쉽지 않았다.
구매대행이라는 기술은 바다를 서핑하는 기분이었다. 서핑해본 적이 없지만, 아마 서핑을 해본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여겼다. 태평양 건너 호주로부터 밀려온 바닷물이 데려다주는 호주의 내음과 파도가 내겐 신비로운 선물이다. 호주까지 시공간을 옮겨 가지 않아도, 방금 호주에 있던 물건이 내 앞에 와 있다. 태평양도 대서양도 지구의 어떤 물도 부러울 것이 없다. 전지전능해진 기분이 바로 구매 대행이다.
남편의 친구, M의 남편은 우리가 독일에 도착하기 6개월 전에 독일에서 구매 대행업 사무실을 차렸다. 한국의 동업자에게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제품들을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집을 구하고, 한국의 식구들을 독일로 초대했을 때가 우리의 독일 도착 6개월 후였다.
그들의 결혼 때 시댁에서 장만해주신 강남의 18평짜리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 그들의 자본이었다. 시흥동 전세를 살던 나에게 M의 강남 아파트가 부러웠던 것이 고작 5년 전이였다. 좁은 아파트였지만, 요정같이 생긴 M이 에이프런을 두르고 남편과 남편 친구까지 모두 불러 집들이를 했다. 그때 한번 만났던 M이 부러워 말을 걸지 못했다.
독일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주말이면, 방학이면 S네 가족들과 밥을 해 먹였다. 외식비는 비싸지만, 집에서 해 먹겠다고 하면 싼 것이 유럽 물가였다. 넙죽 우리 집에 와서 내가 한 밥을 맛있게 먹는 S의 가족들을 보며 우쭐해졌다. 자랑할 거리가 많았다.
남편을 도와 온라인 업무를 해야 하는 M은 타지의 살림할 시간이 나보다 적었다. 일주일 동안 친구 없이, 혼자서 터득한 바를 바로 알려주면서 M에게 찬사를 들었다. 딸 부잣집의 막내딸인 M은 여동생만 있는 첫째인 나와는 달리 듣기에 달콤한 여성용 칭찬의 전문가였다.
주재원이라서 좋겠다.
회사가 집세 내어줘서 좋겠다.
한인 타운에 살아서 부럽다.
아이들이 국제 학교 다녀서 부럽다.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맙다.
내가 차린 밥을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
친구 없는 나와 우리 아이들과 와서 놀아줘서 고맙다.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감사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M이 있어서 든든했는데, M은 내가 있어서 괴로웠나 보다. 남편이 퇴근하고 하루는 들어와 M이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갔다고 했다. 한국에 도착하고는 연락 두절이라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M은 남편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한국에는 M의 친정과 언니가 둘이나 있으니 그 세 군데 어딘가에 있을 테다.
M의 출국 이틀 전에 M에게 갔었다. 얘들 방학이면 으레 한국에 갔던 M이었으니 한국 간다고 구역 얼굴을 봐야 하는 것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M에게 가고 싶었다. 너도 나도 구매대행업을 하니, 레드 오션이 되어버린 독일 구매대행 사업의 수익성이 곤두박질을 치자 M의 남편은 한국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화점을 인수했다. M은 낮엔 가게에서 일하고, 밤엔 온라인 구매대행 상세 페이지를 만들었다. 아이들을 픽업하고, 저녁을 사 먹였다.
매장으로 M을 만나러 갔다. 집에 있던 한국돈 5만 원을 챙겨서 M에게 갔다.
" 할머니처럼 무슨 현금이에요."
평소 M의 음색과는 달랐다. 웃지 않았으며, 매장에 들어와 커피 마시고 가라는 소리를 건내지 않았다.
그녀의 두 아이를 차에 싣고 퇴근해야한다고 했다. 내가 내미는 현금을 흘깃 쳐다보았다. M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지만 M은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였다.
이모 이모 하며 늘 살갑게 나를 반기던 S는 그날따라 내게 말이 없었다.
컴컴한 고속도로를 내달음치며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에 M을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 후 남편은 M이 독일을 떠났고, 남편에겐 이혼장을 첨부한 이메일을 보냈다고 전해왔다. M의 남편은 한국으로 그녀를 찾으러, 만나러 가지 않았다. 자주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나에게 M이 어떤 이야기를 남겼냐고 거듭 물었다.
M이 나에게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번 했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했고, 남편을 이해해 주라고 했다. 법전에나 나올 법한 소리를 했었기에, M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할 수 있는 최선이였지만, M은 듣기 싫었다 보다.
" 언니, 나중에 한국 돌아갔다가 여행으로 다시 독일 오면 내가 벤츠 몰고 공항에 데릴러 가께!"
내가 해준 밥을 먹으면서 M은 눈을 반짝였다. M의 가게도 때돈을 벌고, 구매대행업도 언젠가는 잘되서 독일에서 제일 좋은 차를 사서 보란 듯이 나에게 지금 먹고 있는 밥을 갚아 주겠노라며 기뻐했다.
M아, 약속을 지켜. 연락을 했으면 좋겠다. 이별에는 공식이란 것이 있는데, 우린 그 공식 중 단 한가지 법칙에도 맞지 않는 것 같아. 얼굴 보고 이야기 하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