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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an 09. 2023

한국문화에 적응 중입니다, 여전히

"엄마, 이번 방학 엄마랑 같이 시간 많이 보내게 돼서 좋아."

"엄마, 나 수학이랑 과학 100점 맞을게."

아니, 그렇지 않아도 된다. 이미 넌 내게 100점짜리니까.

우리는 존재함으로 충분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아들과 함께 출근했다. 길고 지루한 공부라는 여정, 학생이라는 신분 그리고 시대에 맞지 않는 공교육 그 어느 하나도 아이를 설레게 할 수 없다면 움직여야 한다. 무슨 수를 내야 한다. 여왕의 오후로 출근하며 공황장애는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다. 잠을 잘 수 있고 배가 고프다. 그러니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아이가 알아서 해 내겠거니 했다. 남편이 도와주겠거니, 나눠 짊어지겠거니 했다. 그렇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일어나야 한다.

벌떡, 지금 당장, 머뭇거리지 말고 일어나야 한다. 나는 엄마니까. 처음부터 엄마가 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인 양 하고 살기로 하지 않았던가. 주저앉아 통곡하는 것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이와 지하철을  탄다. 나란히 걸어 매장에 도착했다. 

 아이의 첫 출근 날 외국인 남편을 대동한 고객이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객의 세 아이도 국제 학교에 다닌다. 삶이 내게 속삭거리는 것만 같다. 국제학교에 다닐 때에도 삶은  터널 속 같았다고 말이다. 되돌려보면 지금 힘든 것은 힘든 것도 아니라고 말해준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이 베이킹 클래스를 들을 수 있겠냐고 묻는 고객의 말속에는 걱정이 묻어난다. 한국을 살면서 미국 학교를 다니면 물에 뜬 기름처럼 일상생활 모든 곳에서 거리감이 생긴다. 독일에서 미국계 학교를 다니다 보니 그 거리감이 더 심했다. 아이 혼자 이동하기 힘들었고, 지역사회와 거리가 있었고, 독일을 사는지 미국을 사는지 그도 아닌 한국인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니 클래스를 예약하는 엄마의 표정과 그녀 뒤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아들을 보며 삶은 내게 얼마나 위트가 넘치는지 깨닫는다. 릴랙스 하라고 다독여준다. 청소기 돌리다 대성통곡하고, 글을 읽다 울컥하고 아들의 편지를 읽다 눈을 껌벅껌벅 거리는 짓거리는 이제 충분하다. 

" 모닝커피 한잔 드리까요?"

그녀의 남편에게 한국에도 말하니 그도 한국어로 답한다.

"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 한국어 잘하시네요. " 

베이킹 수업을 예약했으니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다 싶어서 옆에 서있는 남편에게 따뜻한 커피를 내미니 

" 시럽 있어요?" 

공짜 커피도 그냥 마시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은 중요하다. 한 모금을 마셔도 내 입이 즐거워야 한다. 

바닐라 시럽병을 내미니, 바닐라는 안된다고 한다. 설탕 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래. 이제 기억이 난다. 

아들은 이런 문화에서 5년을 살았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냥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정받을 필요도 전 과목을 잘 볼 필요도 없는 학교를 다녔다. 그곳이 아이의 전부였다. 



국제학교 교육, 미국 문화가 전부는 아니다. 아프면서 알아간다. 겪으면서 깨닫는다. 엄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고 있기에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이 시간들을 통해서 아가의 걸음마처럼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아이도, 호박씨도 지금이 최선. 우리는 누구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인정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래도 즐기고 사랑하자.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내일도 아이와 신분당선을 탄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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