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나이가 없다. 어떤 죽음이건 여기 존재할 뿐이다. 그 아이에게, 그 노인에게 당도한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이도 없고, 성별도 없으며 불멸하기까지 하다. 산 것이 죽음으로 이름에는 차별이 없다. 지구상에서 영원한 진실,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진리는 생명의 사라짐이다. 늙음은 겪지 않을지언정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16살의 아들은 한 번만에 죽지 않았다. 차 위에 투신이 되자 다시 건물로 올라가 뛰어내리고 나서야 죽을 수 있게 되었다. 꽃다운 죽음이란 말은 아슬아슬한 단어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 옆을 지키는 군자란의 주홍빛 꽃은 2주 만에 고개를 숙였다. 벌어진 꽃잎은 오므라들고 쭈글거려져 결국 꽃은 열매를 위해 떨어져 곧 사라진다. 젊고 어린 이의 죽음에 대해 꽃다움 죽음이란 말은 가혹하다. 말의 기원은 모르나, 죽음을 선택하고 두 번이나 시도한 어린 생명에게 꽃답다 하지 말길.
푸른 나무재단 이사장님의 아들이 떠난 지 어느덧 27년이라 아버지는 흰머리의 노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순간 노인은 중년의 대기업 임원이었던 그날, 심장이 뜯기듯 아팠던 날로 돌아갔다. 마치 어제 일처럼 살아있으며, 불멸의 존재로 아버지 속에 살아 숨 쉰다. 그것이 어린 죽음이다.
방송에 나와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까지 27년이 걸렸다. 아버지는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들에게 사과를 하고 그리워한다.
청년의 죽음이 어제 낮 SNS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 내가 아이돌인데, 친한 아이돌이 죽는다면 난 그날부터 침묵할 거야. 애도한다고 인스타에 올리면 죽은 사람이 읽어? 슬프다 하면 사람들이 착하네 하면서 칭찬해 주잖아. 그건 자기 위해서 그런 거야!"
케이팝엔 문외한인 아들이 케이팝 도사인 딸과 내가 나누는 대화를 잠자코 듣더니, A형 독감으로 잔뜩 쉰 목으로 한 방을 날린다.
진정한 애도는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심장을 송두리째 뺏기는 슬픔이라면 그 감정을 묘사할 정신을 없을 것이다. 아들 말이 맞다. 애도한다고 SNS에 빠르게 올린다면 올리는 속도만큼 죽음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야겠다. 청년의 동생도 청년의 가족도 그 누구도 한마디 붙일 수도 나눌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린 SNS에 올려진 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엄마, 호적메이트 보니까 자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고, 동생보고 행복한 2023년이 되자고만 하더라고. 나도 힘들었잖아. 그래서 보이더라고. 많이 힘든가 보다 하고."
남의 자식 이야기는 술술 하면서 내 새끼가 본인도 그랬다고 말하니 찌를 듯이 아프다. 친구 없이, 마음을 나눌 이가 없이 지냈던 시간이 딸에겐 길었다. 한국 와서도 딸은 본인을 증명이라도 해야 하듯 산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넌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덮어버려야겠다 싶다. 멀쩡하잖아, 넌. 그렇지?
"응. 힘들어 본 사람은 지금 힘든 사람을 알아보지. 맞아."
아프면 약자, 힘들다고 하면 최약자, 눈물은 유치한 짓, 감정 표현은 약점을 세상에 고래고래 외치는 어리석은 짓이라 한다. 외롭지 않은 척 돈 많은 척 마음도 부자인 척 센 척하는 게 권장되는 사회다. 그럼에도 딸은 스스로를 잡고 나아간다. 그러니 힘들었다고 인정해 주었다. 쉽지 않다. 아차하고 이 아이도 어린 죽음을 선택하면 어쩌나 하고 다시 엄마 마인드로 돌아가고 싶다.
아무렇지 않다고 널 완벽하게 기르는 엄마가 있으니 넌 매끄러운 달항아리처럼 흠집하나 없다고 우기고 싶지만, 아니다. 적어도 오늘은 제정신 차리고 엄마 딱지 띠고 아이와 이야기 나눠야지. 오늘만은 어린 죽음 앞에서 솔직해지자. 잠시 지구에 머물다 가는 지구 여행자 신분은 딸과 내가 전혀 다를 바 없다. 눈높이를 나란히 해야 딸에게 전하고픈 진실을 나눌 수 있는 법이다.
이 시간이 영원할 것이라 여기던 때가 있다.
S전자 홍콩 법인장으로 고속 승진하는 아버지가 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독일 법인에 나가 아이들을 비싼 국제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아빠가 된다. 주재원 수당까지 더해진 두둑한 남편의 월급을 아이들 영어에 부어 네이티브 스피커로 만드는 목표 달성에만 집중하는 엄마로 산다. 아역배우로 일찌감치 연예계 입성한 아이는 그 아이의 동생까지 아이돌로 데뷔하여 케이팝 역사상 전무후무한 아이돌 남매로 이름을 날린다. 불멸의 존재인 죽음은 조용히 어리석은 우릴 따라다닌다.
때론, 죽음이 자비를 베풀 때가 그 목전에 이르렀다 살아 나오기도 한다. 살아 나온 자는 깨달은 바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 영원하지 않다고,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고 부르짖어야 한다. 푸른 나무재단 이사장님처럼 말이다. 더는 어린 죽음의 소식은 듣고 싶지 않다.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 부지런히. 호박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태양을 놓치지 마세요, 부디. 귀한 하루입니다.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소중합니다.
사진: Unsplash의Wulan S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