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지만, 나에겐 아이가 두 번째다. 아이에겐 내가 다시없을 엄마인데, 처음이 아니라니... 공정함이란 없다는 것이 세상의 진리지만, 내가 딸의 입장이라면 기가 막힐 노릇일 것만 같다. 큰 아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자꾸자꾸 작은 아이를 들여다본다. MBTI가 평화수호자 INFJ 인프제인 사람도, 엄마라는 타이틀을 짊어지면 이렇게 되는 게다. 딸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작은 소리로 또는 행동으로 신호를 보내면 읽어낼 도리가 없다. 그러니, 아이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 내내 사실 '저 좀 바라봐주세요, 엄마' 또는 '난 오빠랑 달라요.'를 삶 내내 부르짖고 있는 셈이다.
한 돌이 되도록 큰 아이는 간을 해먹이지 않았고, 그 흔한 단 것조차 주질 않았다. 세돌이 된 큰 아이에게 새콤 달*을 내밀자, 이제 막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작은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
"나도!"
그렇게 만 2년이라는 나이차이는 부서지고, 딸아이는 시간을 가로질러 첫째인 아들과 눈을 나란히 하고 나를 대했다. 뭐든 알아차리고, 누구에게든 자신이 느끼는 바를 또렷이 이야기하는 똑순이라고 생각했다. 둘째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이는 없다 여겼다. 나의 오만방자함은 그때쯤 깨졌어야 했다.
사라졌다. 만 2살의 짧고 통통하며 양 갈래로 머리를 묶었으며 눈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는 아이는 내 손이 닿는 이쪽 무릎쯤에 있어야 하는데.....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아이는 없다.
에버랜*에 오는 게 아니었어. 롯데월*에서 잃어버렸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야. 에버랜드는 광대하고, 동물들도 있잖아, 젠장.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진행방향으로 더 나아가는 남편의 빠른 걸음을 쫒았다. 그러다 멈춤. 내가 딸이라면? 2년 동안 한 몸처럼 붙어 있던 우리였으니, 이 정도 능력은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때부터 내 안에는 작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 딸의 관점으로 나를 욱여넣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래형 체험관이라는 조악한 건물이었지만, 건물 안에 사람이 바글바글 하니 뭔가 볼거리가 있나 싶어 들어갔다. 건담처럼 생긴 또한 조악한 로봇의 가슴팍엔 스크린이 있는 작은 방이 있었고, 유아들을 위해 스크린을 향해 혼자 서너 계단을 위해 올라갈 수 있게 사다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스크린에선 보나 마나 어떤 유치한 장면이 있을 거야 생각하며 딸의 손을 잡고 지나쳐왔다.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작은 아이들이 대여섯 기다리고 있기에 시간 소요할 필요 없이 다음 방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 다음 방은 레고가 가득한 체험 공간이었다. 레고라면 사죽을 못쓰는 우리 아들에게 딱이네 하는 생각을 하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여기저기 레고를 조립하는 작고 동그란 밤갈색 머리들 사이엔 양 갈래로 묶은 머리는 보이지 않는다.
딸아이를 찾아 나서는 남편을 뒤를 따라 건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건물 입구로 뛰어들어갔다.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듯하고, 피는 다 말라한 방울도 없는 기분이었지만 내 발만은 어찌나 제 역할을 잘하던지.
거기 있었다, 우리 아기.
부모의 손을 잡고 스크린을 기다리는 작은 아이들 가운데 사이에서 가만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은 채 차분하게 사다리를 오를 기회를 맞기만을 기대하는 딸아이를 보았다. 부모와 같이 줄 서 있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지만, 비록 양갈래 머리에 통통하고 조그맣지만, 그녀의 단호함만은 조악한 건담보다 튼실하게 느껴졌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허덕이는 호흡을 숨기고 가만 딸 옆에 섰다. 계단의 폭이 커 기어올라가다시피 사다리를 오르고, 작은 문을 열어 스크린을 들여다보고 로봇의 열린 심장의 언저리를 체험하고 나서야 딸은 만족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일은 기꺼이 내 도움을 허락했다.
"2년이면 끝난 거지!"
코로나가 없었다면,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인 친구가 생기고 여느 아이들처럼 중학교를 다녔을까? 한창 추운 작년 12월의 밤 남편은 아들은 가망이 없다고, 사회부적응자라고 선언하는 듯해 보였다. 아이의 눈빛이 뿌옇게 느껴지고 늘 잠에 취해 있었으며, 제 방을 나서지 않았다.
그럴만했다. 아들보다 세배 넘게 지구별에서 시간을 보낸 나도, 남편도 어찌 살아야 하나, 한국을 어떻게 맞아야 하나 또한 중년은, 나이는, 가족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총체적인 난관이 따로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우린 궁리하고 나아가고 여기까지 왔다. 남편 몰래 글을 쓰고 있고, 내가 겪어 보지 못한 대기업이라는 환경에서 승진을 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시간과 상태에 이름을 붙이고 판단할 수 있을까? 맥락 없이 말이다. 부서져서 기억되는 남편의 말들을 조합해서 그를 판단하는 것 또한 배우자란 명분으로 계속 해선 안될 일이다.
" 엄마는 인프제. 알았지? 이제 안 잊어 먹겠지?"
MBTI에 심취한 작년 내내 우리의 사이를 바쁘게 종종거리며 다니던 딸이었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나의 MBTI를 줄줄 읊어대던 딸보다 내가 나을 바라곤 손톱만큼도 없다. 다행히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그것은 바로내가 인프제라는 사실!
타고나길 평화주의자인 데다 개별화가 강점이다. 상대방을 꼭 집어 알고 싶다면 끝도 없이 물고 늘어져서 분석하는 게 취미자 장점이며 기쁨인 타입이다. 그러니,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리고 남편에게도 그들의 맥락이 되어 고통을 함께하고 그들을 햇빛으로 끌어내는 게 내 소명이다. 덕분에 작가인가 보다. 글을 쓸 수 있게 나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것은 MBTI가 아니라 가족들 덕이로군. 끄덕끄덕.
기말고사가 코 앞인 중3 아들의 방에 등을 기대어 더위를 식히며 이 글을 쓴다. 의자에 베인 땀만큼이나 너는 나아지고 있는 중인거지? 인프제인 나는 켜켜이 쌓이는 이 시간의 맥락으로 아들을 찾고 있다. 남편의 마음속 실종신고는 여전히 접수되어 있지만, 아들은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