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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쿨럭

-아파도 쉬지 않는 나라

by 호박씨

"쿨럭쿨럭."

밤새 큰아이가 쿨럭거리더니 작은애가 쿨럭거리고 이젠 내가 슬슬 몸살이 온다. 독일서는 아프면 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 중학생인 아들 학교에서 나온 외고 입시전형에 보니 출결도 점수에 들어간다. 개근이 만점이구나. 참 낯설다. 겨우 5년 살았는데 뭘 그리 독일인처럼 생각하냐 하겠지만, 난 정말 그렇게 퐁듀를 치즈에 푹 담그듯, 독일에 푹 담갔다가 나온 인간이다. 뭘 그리 치우쳐서 사는지, 나란 인간은 뭣이 이리 극단적인지 모르겠다.

유치원 다니던 작은 아이 Homeroom 선생님, Ms. Fiona는 폐렴이 왔다며 2달 정도를 쉬셨다. 대체 선생님이 바로 그날 부로 투입되셨는데, 아이들의 불평이 빗발쳤다. 미스 피오나는 워낙 선생님으로서의 역량이 대체 불가인 사람이었다. 담임선생님 운이 정말 올해는 계 탔구나 했더니 안 나오신다. 안 나오심에 대한 연락도 부모들에게 따로 하지 않는다. 왜냐면 대체 선생님이 있으니까 말이다. 양해를 구하지도 않는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 '뭣이 중헌데'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VHS ( Volkshochschulen)은 시민대학 같은 것이다. 각 도시마다 시민들의 교양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교양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 곳인데 문화 센터나 주민센터 문화 강좌와 항목은 비슷하지만 강좌 기간이 일회성인 것도 있지만 1년짜리 코스도 있어 다양한다.

독일어 수업을 듣곤 했었는데, 독일어 선생님도 나와 비슷한 연령의 엄마였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할 때 아이들의 나이를 이야기해줬는데 미취학 아동 1명 취학 아동 1명이었다. 1주일에 2회 수업이었는데, 하루는 선생님께 왓츠앱이 왔다.

" 아이가 아프니 오늘 수업은 없습니다."

수업 시작 1시간 전에 온 문자. 등록을 해두고는 단계가 올라가니 게으름이 나서 숙제를 덜했었는데 수업이 없으니 공짜 시간이 생겼다 싶다. 한편으로는 사전에 강사가 고지한 강사 결석은 학원비를 돌려받지 못한다. 시립 VHS 이기 때문에 굉장히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립 시설 보다야 저렴하다. 문제는 약관이다. 강사의 사정으로 이렇게 수업 공백이 생겨도 수업료는 전혀 돌려받지 못한다. 그저 선생님의 아이가 건강하길 바래야 할 뿐이다.

그다음 주에 가보니 선생님의 아이가 와있다. 그래도 이 강사분 좀 양심적이다. 또 빠지기가 뭐 했는지 이번엔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는 얌전히 잘 앉아 있는다. 귀엽고, 또 부럽다.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강사분, 그녀가 진심 부럽다.

멀쩡한 척, 건강한 척 살고 싶지 않다. 무엇이 중요한가? 살아감이 중요하지 않은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약을 챙겨 보냈던 날들이 생각난다. 아파도 어린이집은 가야 한다. 엄마가 일해야 하니까. 아프면 안 된다. 아파도 함께 있을 수는 없다.

7년이라는 공백 동안에 육아 휴직을 하는 아빠들의 블로그 내용을 훔쳐보며 한국의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교육은 가장 보수적인 곳이니, 변하지 않는가 보다. 아프면 체험 학습 보고서 따위로 결석이 아님을 증빙하며,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조퇴를 해야 하는 아이는 근태 신청서를 작성하여 학교에 내야 한다.

회사보다 더하는구나. 온라인 수업을 하루쯤 빠졌으면 좋겠는데. 독일이었으면 무조건 하루 이불속에 폭 파묻혀 만화책을 봐야 할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연신 콜록거리고 있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앉아 있다.


아파도 쉬지 않는 나라. 타인의 시선으로 내 나라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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