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이 생일인 딸에게
- 국제 학교 학제 구분과 가자미눈
어제는 집 앞 반포고가 시끄럽다. 북소리와 함성, 그리고 음악 'Butterfly'속 가사, ' 너를 믿어'
는 구름이 하나도 없는 파란 하늘을 가득히 메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하늘이다. 누군가는 이 날까지 달려온 자신을 뿌듯해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후회 어린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그런 날이다.
제로섬 게임 같은 이 시험, 바로 오늘이 초등 5학년 딸아이의 생일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등교하니 여유가 있어 좋다. 생일 축하한다고 안아 주며 천천히 아이를 깨워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학생인 아들은 오전 11시까지 절대 자신을 깨우진 말란 말을 남기고 거실 소파 위에 나비 애벌레처럼 뭉쳐있다. 수능날은 한가로운 아침이다.
" 엄마, 수능인데 왜 내가 학교를 늦게 가? 그게 무슨 상관이야? "
딸아이는 수능의 의미를, 진짜 의미를 모른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이라는 사실과 수능시험을 통해 대학을 간다는 사실도 얼마 전까지 몰랐다. 내가 차근히 정리해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국제학교의 학제를 파악하기까지 나도 한참이 걸렸다. 학기 중간에 들어가다 오리엔테이션도 제대로 못 받은 데다가 아직 시동 걸리지 않은 영어 때문에 당장의 아이들 학교 적응에 필요한 정보들을 소화하기에도 버거운 날들이었다. 눈앞의 나무를 더듬거리니라 숲이 어찌 생겼는지 가늠도 못하는 상태가 한참을 갔다. 물어보면 될 텐데, 혼자 감잡니라 시일을 끌었었더랬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나만 몰라서 묻기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호박씨는 길을 몰라도 지도 보고 어떻게든 찾아가지 남에게 묻지는 않는 타입의 인간형이다. 어디서든 처음 또는 시작, 낯선 상태인 것이 싫다. 묻는 행위가 자체가 힘들어서 행위를 내 속에서 짜내야 하기 때문이다.
Frankfurt International School 프랑크푸르트 국제 학교, FIS가 아이들이 5년을 다니게 될 학교다. 흔히 피스라고 부른다. 유럽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8월 중순에 학년이 시작된다. 또한, 국제학교는 미국계와 영국계로 나뉘어 있다. FIS는 미국계 학교로 프랑크푸르트를 포함한 헤센 Hessen 지역에 주둔하는 유럽 최대의 미군 병력 주둔을 위한 편의 시설로 1961년에 세워진 오래된 학교다. 미 대사관이 있는 헤센주 비스바덴 Wiesbaden에 분교가 있으며, 헤센주의 오버 오젤 Oberursel에 있는 본교에는 60여 개국에서 온 180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하는 규모가 큰 학교다.
학교는 Primary, Elemetary, Upper로 구성되어있다. 프라이머리는 유치원, 엘레멘터리는 초등학교, 어퍼는 중고등학교라 보면 되겠다.
Primary는 First step, Pre-Primary, Primary, Grade 1 네 개의 학년으로 구성된다. Elementary는 Grade 2에서 Grade 5, Upper school은 Grade 6부터 Grade 12까지의 과정이다.
퍼스트 스텝은 그해 8월부로 만 나이 4세, 프리 프라이머리는 만 나이 5세부터 재학 가능하다. 그다음 학년들도 재학 가능한 나이는 한 살씩 더하면 계산이 되겠다. Grade 1이 한국으로 치면 초등 1학년인데 유치원 소속인 관계로 초등학교인 엘레멘터리는 초등 2학년부터 시작되며 한국으로는 중고등학교인 어퍼 스쿨은 Grade 6, 즉 6학년부터 다니게 된다. 한국 공교육제와는 학기 시작이 상이하며 학년의 소속 학교가 좀 다르다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꽤나 간단해 보이지만.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처음 시작한 프라이머리 스쿨은 학년이 구분이 되어있지 않고, 해님반, 달님반으로도 부르지 않았기에 한동안 헷갈려했다. 특히 프라이머리 스쿨 안에 프라이머리 학년이 있기에 누구에게 알려주기에도 혀 꼬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생일이 11월인 딸은 만 4세로 First step부터 시작하여 프라이머리 스쿨의 전 학년을 거쳤다. 딸이 프라이머리 스쿨에서 엘리( 엘레멘터리의 줄임말)로 넘어가게 되자, 프라이머리 터줏대감이던 딸아이가 큰 학교로 가게 됐다며 프라이머리의 여러 선생님들이 자기 일처럼 딸아이를 대견해하기도 또한 아이의 떠남에 섭섭해하기도 하셨다. 물론, 처음부터 나와 딸에게 프라이머리가 정겨운 곳은 아니었다. 그 시작부터 몹시 째려봄을 당했으니까.
FIS는 다양한 국가에서 오는 주재원 가족이 편안한 독일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국제학교이기에 입학 전형 또한 가족 중심적이다. 예를 들면, 교직원 자녀는 입학 순위 1위이다. 교직원도 가족처럼 함께 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교직원 자녀가 반에 적어도 2명씩은 된다. 비스바덴 캠퍼스 또한 본교 입학 순위 1위다. 또 다른 입학 우선순위는 형제, 자매다. 같은 Family 가 재학 중이거나 동시 입학을 원하는 가족의 수가 많다면 입학 순위가 우선한다.
프라이머리 스쿨 입학 첫날,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그날, 작은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한국 여자아이를 데리고 옆반으로 들어가는 내 나이 또래의 엄마와 마주쳤다. 그 아이의 옷차림새로 보아 한국인이 분명하다. 반갑다.
" 안녕하..... 세요......"
말을 다 잊진 못했다. 쌩하고 내 옆을 지나가는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살을 찌푸리며 급하게 지나쳐간다. 딸아이 옆반 한국 아이 J였다. 당시 딸아이 학년, First step 에는 한국인이 여자 아이만 딱 3명이었는데 딸아이 반에 하나, 그리고 옆반의 J가 다였다. 알고 보니 우리 반 한국 아이 P와 J는 같은 회사 선후배여서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였고, J 엄마는 P엄마를 언니라 부르며 잘 따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문제는 우리 가족의 입학이라고 했다. 아들과 딸아이를 FIS에 14년 11월에 입학 지원을 제출하니 FIS는 지난 10월부터 FIS에 들어오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J에게 입학허가를 취소한다고 12월에 통지를 했다고 한다. J엄마는 P의 엄마를 통해서 한국 아이가 그 반에 들어오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J의 입학 취소는 우리 아이들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듯해 보였다. P엄마에겐 워낙 깍듯한 J 엄마였기에 J 엄마의 나에 대한 태도를 꿈에도 모르는 P 엄마가 힌트를 잔뜩 주었다.
" 한국 친구가 반에 온다고 해서 J가 오는 줄 알았는데, 호박씨 따님이 같은 반이 됐더라고요. J는 갑자기 입학 취소가 됐고요. J 엄마가 어이가 없어서 학교에 난리를 쳤죠. 다른 독일 유치원에도 갈 수 없는 12월이라서 학교에 통사정했더니 겨우 추가 인원으로 우리 학교 들어오게 된 거예요. "
그렇고 보니 J의 반 정원이 한 명 많다. 그렇구나.
제로섬이란 Winner- take-all이다. J엄마의 고생한 시간들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 또한 한국에서 아이들 유치원과 어린이집 대기를 서느라 애를 먹었었다. FIS가 매끄럽지 못하게 해결한 바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가져가진 않았다. First step은 반이 2개뿐이어서 그 두 반은 함께 Recess 쉬는 시간을 보내며, 같이 식사를 하고 함께 Field trip 체험학습을 간다. 나의 아이와 그녀의 아이는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국제학교라는 새로움을 경험했다. 딸만이 위너가 아니라 J 또한 반짝이는 그 시간들을 가져간 셈이다.
그럼에도 첫날의 싸늘한 눈빛은 J가 프라이머리에 들어온 지 9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그날까지 계속되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 조막만 하고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가자미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 딸이 프라이머리를 계속 누릴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과 함께 독일에서 J를 집에서 데리고 고생한 시간들에 대한 푸념을 했다. 그 푸념은 사실 푸념이 아니다. 그녀가 낯선 공간에서 했을 독박 육아의 고충을 나도 거쳐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제로섬 게임 속에서 다투는 대상이 아닌, 국제학교 속 한국인이라는 기운 운동장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고 눈물을 닦아줄 대상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호박씨는 결심한다. New Comer, 누가 오든 새로 오기만 하면 상대방이 질려 도망갈 만큼 잘해주리라 라고 말이다. 독일 살이가 1년도 안된 주제에 그런 결심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1년은커녕 도착한 날부터 그 맘을 먹었으니 기 막힌 호박씨다.
수능날이 생일인 호박씨의 딸은 하루 종일 나가 놀며 생일 축하를 받느라 바쁘다. 오지랖이 유럽 대륙만 한 호박씨 딸이라서 그런가 보다. 다행이다. 7년 후 딸아이의 수능날에도 아이가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함을 가진 이였으면 좋겠다. 제로섬 따윈 멍멍이나 줘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