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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 독감에 엄마 생각

by 호박씨

A형 독감이 유행이라 그런지 소아과에 사람이 바글바글한다 했다. 딸은 어제부터 목이 따끔거린다고 하더니, 아침엔 일어나질 못한다. 편도가 커서 쉽게 붓는 아이는 목이 붓는 것으로 피곤함을 표하곤 한다.


"아들 낳았으면 하나면 될 텐데."

"넌 엄마생각은 안 하니?"

둘째가 생긴 소식을 전했을 때,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는 반기지 않았다. 환영인사는 커녕 친정엄마는 의절처럼 연락을 끊었고 시어머니는 둘을 어떻게 키우냐며 아들 걱정을 했다.

시어머니는 부산에서 재건축으로 요새 유명한 M아파트에 사셨고, 지금도 사시는 아파트가 제 값을 받을 때까지 버티고 계실 요량이다. 남편이 의사인 10살 위의 시누이는 결혼 10년 만에 아이를 힘겹게 갖었고, 둘째를 갖겠다고 시험관을 준비하니라 호르몬주사를 스스로에게 찔러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의사 부부는 둘째를 가질 자격이 있고, 월급쟁이는 자격이 없다. 어머니가 던진 메시지를 당시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아이가 14살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나보다 키가 훌쩍 커버렸지만 아프면 '엄마'라고 나를 찾는 지금까지도 시어머니가 내게 왜 둘째 소식을 반기지 않는지 몰랐다.

친정엄마는 아들인 첫째는 엄마의 아들처럼 반가워했다. 집안의 장손이라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동생이 여자라 40여 년 전 동생이 태어난 날 엄마는 혼자 병실을 지켜야 했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을 내가 중1 때까지 받으셨고, 엄마는 섭섭한 마음에 나와 여동생을 붙들고 서운함을 말하곤 했었다. 여동생은 내가 아들이었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테다.

약사인 아버지를 도와 약국일을 하는 엄마는 6시 병원 처방전이 끊기는 시간이면 신혼집으로 택시를 타고 오시곤 했다. 큰아이가 나오자마자도 남편은 출장에 야근이었고, 친정엄마는 공부밖에 할 줄 몰라 그저 처한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한 나를 위해 밥하고, 애보고 하길 연속이었다. 아들이라서 인지, 본인이 초반에 공을 많이 들여서 인지 엄마는 큰 아이가 예뻐라 한다. 분당에 작은 아파트를 한 채 사고는 이건 큰아이 몫이야 거듭거듭 말했다. 재건축 이슈가 나오니, 손주의 미래가 무럭무럭 가격이 올라간다며 현명한 투자를 했다며 흐뭇해하신다.


착하다 했다. 착한 딸이라고 순한 며느리라고 불렸다.

공부가 좋았는데, 공부는 순전히 내 몫이라 착하게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과가 나오니, 적성에 맞아서, 순도 100% 나의 즐거움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원비가 얼마나 들었고, 강남의 좋은 학원을 고르기 위해서 엄마가 애쓴 바를 칠순의 친정엄마가 이야기할 때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 공부조차 엄마의 결과물인 걸까?

초등학교만 나오신 어머니는 주방 살림을 가르치시면서도 너는 똑똑하니까 하셨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한 공부인데 가방끈 짧은 본인을 부끄러워하셨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자기 관리를 잘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나는 순할 리 없을 터이다. 어머니는 학교를 오래 다니실 수 없었고, 공부에 들이신 시간이 없으신지라 공부 잘한 며느리는 그저 모범생일 것이라 추측하신다. 그럴 리가..... 독하고 이기적인 면이 있어야 공부를 잘할 터인데요, 어머니.

사회생활이 안되고, 돈은 못 벌어오니 현모양처라고 하고 싶어, 좋은 딸이라도 하고 싶어서 고분고분 두 어른이 하자는 데로 했다. 그리곤 두 사람을 떠나 5년을 독일에서 지내고 마흔 중반이 되었다. 코로나에 공황장애, 불안증까지 혼자서 끌어안고 정신을 차려보니 두 노인이 보인다.

기꺼이 용감하게 엄마로 여기까지 살아온 베이비 부머들이다. 그들의 젊은 날에 비하면 나는 손에 물도 안 묻히고 사는 셈이다. 그들의 호시절에 비하면, 난 꽤나 한심한 편이다. 젊은 그들은 굶지 않겠다고, 넉넉히 먹이겠다고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살았고 벌이를 모아 살 집을 구했다. 살 집을 구하고 나면 아이들 살 집을 한 채씩 마련하고는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이제 됐다 하는 순간들이 그들을 맞았을 것이다.

효도한다고 그들에게 부러 전화를 한다. 그들의 옛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착한 사람이라, 요새 전 이래서 해서 힘들어요 하면 그들은 내 입을 틀어막는다. 객관적으로 훨씬 더 힘든 시절이었고, 그 힘든 시절을 이기고 너를 받쳐주고 있으니 아무 말 말라고 한다. 힘든 척도 하지 않았으면 하시는 것 같다. 요새 나의 고민은 그들에게 말하지 않고, 삶 속에서 행복함을 집어내는 데에 소질이 있는 딸 이야기만 한다.

작은 아이 이야기에 흐뭇해하시는 두 분의 음성을 들으면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왜 이 아이를 반대하셨어요?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우리를 찾아온 소중한 생명을 지우라고 하셨어요?


남편은 출장이었다. 생리가 멈추고 아랫배가 묵직하니 느낌이 싸했다. 첫 아이라 큰 아이 한 명을 데리고 불안덩어리로 육아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또 임신이라니.... 남편에게 아이를 지우겠다고 했다.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없었다. 친정 엄마에게 매일 전화하고, 친정 엄마를 매일 불러대는 상황이 한심스러웠다. 약국 일도 바쁜 엄마에게 이렇게 의지 해서 아이를 키우고, 엄마가 없으면 내가 애를 어떻게 만들까 봐 무섭고 두려웠다. 처음 하는 일에 실수 연발일까 봐 인턴처럼 늘 초조했다. 하나가 감당이 안되는데 둘을 어찌 키울까? 순진했다. 그러니 돈 없으면 둘째는 안된다는 시어머니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 하나면 됐지 더는 필요 없다는 엄마의 화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딸의 나이쯤에 멈춰있었나 보다. 딸의 나이쯤으로 나를 대했나 보다, 그들은.


독감이 유행이라는데, A형 독감 예방 주사도 안 맞았는데 자꾸 목 아프다고 하니 독감인가 싶어 걱정이 찾아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코로나도 아이 혼자 씩씩하게 이겨냈으니, 독감은 엄마인 내가 관심 가져주면 코로나만큼은 힘들지 않게 지나가겠지 싶다. 남편은 아버님 병간호에 집을 비웠고, 나와 큰아이까지 코로나에 걸리니 딸은 아프단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이 든 엄마가 증상은 제일 심했으니 알아서 조용히 앓았다.

딸은 종종 그런다. 한 번도 딸아이에게 말하지 않은 아이의 출생 스토리를 다 듣고 있었나 보다. 생명의 씨앗이었던 순간부터 딸은 느꼈으리라. 씨앗을 품고 산부인과로 가 임신 중절 수술을 상담받고 예약했다. 딸이라는 생명의 소식을 전화로 알리고 거절당했다. 딸이 나오자, 둘을 어찌 키우나 싶은 불안감이 하늘을 찔러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도 품었다. 먼저 나온 큰아이에게 소홀해진다면 그것은 딸아이 때문이야 싶었다. 두 어머니의 말을 들을 것을, 착하지 못하게 반대를 무릅썼으니 이 고생을 한다 했다.


딸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엄마가 되어야겠다. 진짜 엄마말이다. 딸에게 존재 자체로 귀하고 소중하다며, 너는 두 번째 아이가 아니라 내게 오직 하나뿐인 인연이라고 두고두고 일러주는 엄마가 되겠다. 아이를 지우겠다고 갔지만 돌아오던 날부터 이미 마음먹었어야 하는 바를 이제야 기록으로 남기다. 옆에서 목 아프니 회를 먹어야겠다고 호출한다. 목 아픈데 웬 회? 독감엔 회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광어회 뜨러 나가봐야겠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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