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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엄마는 불안의 고리를 자른다.

by 호박씨

따끈하고 보드라운 털뭉치 하나를 옆에 붙이고 글을 쓰고 있다. 딸은 며칠이라도 개를 키우고 싶다고 5월 황금연휴 놀러 가는 친구네 개를 맡아주기로 했다. 7살 먹은 개인 데다 말티푸라 눈치가 빤해서 서열 1위만 졸졸 쫓아다닌다. 샤워하면 샤워실 앞을 지키고, 설거지를 하면 주방 매트 밑을 지킨다.

누군가가 이렇게 나를 조건 없이 따라다녀 주기란 오랜만이다. 엉덩이 한쪽 구석이라도 붙이고 있어야 잠이 오고, 엎드려 쉴 수 있다.




부모님에게선 걱정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나 또한 그렇게 바라본다. 두 분은 언제쯤 동동 거림을 그만두실까? 어버이날도 코 앞이고 말을 나누지 않는 남편과 친정에 함께 가기도 싫어 남편이 출장 간 사이 두 분을 집으로 모셔 고기를 구웠다. 1년 만에 딸내미 집에 온 부모님이시다. 아이들 얼굴을 본 지도 거진 3개월이다.

친정 아버지는 아들에게 요샌 뭐가 관심사냐고 물으신다. 여전히 신경 정신과를 규칙적으로 가고 있고, 한국에서는 마음 나눌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아들이다. 아들이 닥친 문제와 키우면서의 고민을 아버지는 감당하실 수 없다. 그러니, 아이의 현실에 대해서 아빠에게 나눈 적도 없을뿐더러, 도움도 바라지 않았다. 내심, 아빠가 좋아하시는 바둑이라도 아이와 주말마다 함께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주말이면 집에서 공부 아니면 게임만 하는 아들에게 나 말고 누구라도 소통할 사람이 있었으면 했으니까.

아이의 문제를 남편과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내게 돌아온 답은 '모든 문제는 네 탓이다.' 였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친정 엄마는 가져오신 김치 잘 먹는 손녀은 마음이 놓였는지, 깨작거리며 밥 반공기 먹고 방으로 들어가는 손주 입맛을 돋워줄 고민을 끌어안는다. 학원 알바 일은 어떠냐고 물으시기에 식당 써빙은 아토피로 손이 찢어져서 못 나가는 상황인데 데스크 직이라도 불러줬으니 감사하다 했다. 엄마의 눈이 컴컴해진다. 네가 무슨 식당엘 나가냐고 하시지만, 식당이 과연 나를 고용해 줄지 조차 미지수인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딸 걱정, 손주 걱정에 돌아서는 엄마는 뒷모습은 어둡다.

" 필라테스 다녀봐, 엄마."

자식 생각 좀 그만하라고 운동을 권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돈 없어다. 종류별로 김치를 담글 돈은 있지만 본인 운동 갈 여유는 없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 잘 살고 있는지 의심으로 가득 차는 날이 있다. 아들이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가슴이 쿵 가라앉는다. 드디어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안 가기로 선택했다고 하면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사회생활이 안돼서, 친구 하나 없어서 어쩌나 싶은 불안이 나를 채운다. 채우다 못해 송두리째 시간을 잡아먹고 생각은 흘러 흘러 얘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모든 것을 뒤덮기도 한다.


구슬처럼 까만 눈으로 글을 쓰는 나를 쳐다보는 개에겐 표정이 있다. 빤히 눈을 맞추다, 몸 어딘가 한 군데를 붙이고는 코를 골며 선잠을 자기 시작한다. 뭔가를 내게 요구하지 않는다. 살아 숨 쉬며 개에게 눈을 맞추고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만족이다. 최고의 반려다.

아들에게 반려견 같은 엄마가 되어주면 어떨까 싶다. 존재만으로 다 괜찮다고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이리해라 저리 해라 하는 가족은 되지 말자.


" 수학여행 안 가도 등교는 해야 해. 급식도 안 나와서 도시락 싸가야 한데. 교실에 너만 있을 수도 있어."

얼르고 달래 본다.

" 교실 가서 수학 학원 숙제하고, 자습하면 되지. 급식은 진짜 맛없는 거 엄마도 알잖아. 공부하면 돼."

설득할 길이 없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만 하는데 어쩌겠는가?

" 설악산 콘도로 가는 것 같은데, 강원도 가서 놀면 좋잖아.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 강원도가 어딘데? 엄마 난 산, 바다 둘 다 싫어"

여전히 외국인처럼 한국을 사는 아들은 강릉, 설악산을 모른다. 독일 가기 전의 설악산에 가서 신나게 황태 강정을 먹었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체험학습 안 가도, 수학여행 싫어도, 친구 없어도 괜찮다. 얘를 이리 키우고 있냐고 가족들이 뭐라 할지언정 아이는 멀쩡하다. 오전 시간 오도카니 집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글을 쓰며 학원 알바가 끝나면 무거운 어깨를 달래 저녁을 차린다. 아이들과 학교에서의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체처럼 11시만 되면 곯아떨어진다. 딱히 친구도 없고, 남편과 말을 나누지 않아도 나는 멀쩡하다. 사느라 바쁘다. 내일은 없는 듯이 하루치씩 꼬박 채워 사는 날들이다.

그러니, 아이는 괜찮다. 옆에서 신나게 코를 골며 자는 이 녀석처럼 태평한 아들의 반려엄마가 호박씨다.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든 당신을 응원합니다를 나누는 아들과 엄마가 될 것이다. 걱정의 대물림은 여기서 끝이다. 불안으로 키워진 나는 매일 불안의 고리를 자르며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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