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낳았다고 아무도 안 오더라. 병원에 혼자 누워있는데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발끝이 시려도 덮어줄 사람 하나 없더라."
내 이름 속에는 남자 동생을 얻게 되는 기운이 싣려 있단다. 유명 작명가에게 산 이름은 획수로, 뜻으로 부모님께 아들을 데려오는장녀가 될 수 있었다. 동생의 이름은 중성적으로 준비해 두었지만 여럿의 바람은 무산되었다.
글을 쓰는 순간만은 남성도 여성도 아줌마도 아가씨도 아닌 나다. 이 자유로움을 맛보고 나면 얼마나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규정하는지 깨닫는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맞추는 이는 엄마인데, 엄마에겐 내가 완벽하지 않아 환영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도깨비는 칼을 뽑아줄 도깨비신부를 만나지만, 아들로 태어나지 않아 비수처럼 엄마의 말을 담고사는 딸들은 무엇으로 치유받을까 싶다.
장녀인 내게는 쏟아지지 않은 그 말이 그녀에겐 내내 쏟아졌었단다. J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 잉여 인간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산다. 겨우 두 번째 만남에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사르르 눈처럼 내 마음을 덮어 녹아내린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건넨 한마디, 힘드셨겠어요에 울음이 터졌다. 날 바라보는 그녀는 어떤 당황함도 없었다. 가만 바라봐줌으로써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멋진 거에요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한국 와서 처음 만난 딸아이 친구 엄마 J였다. 사실 겁먹었다. 그녀를 만나기까지 내겐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아는 강남 아줌마, 서초 학부모가 없어 얼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어려운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큰아이와 남편 이야기를 했다.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싶었다.
그럼에도 우린 두 달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엄마 이야기를 꺼낸다. 슬프거나 복받치긴커녕 단호하다.
엄마 같지 않은 엄마라고 선언한다.
그렇게 친정 엄마를 졸업한 J는 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다.
첼로를 전공한 J가 피아노를 가르치려 하자 5살의 딸은
"엄마는 엄마만 해."라 했단다. J는 물러났다. 음악이 필요하다면 학원을 보냈다.
그것은 사랑이다. 배 아파서 낳았으니 넌 내 자식이다 여기면 물러날 수 없다. 받지 못한 사랑이기에 베풀 수도 없다.
"저희 딸은 제 몸을 빌어 세상에 왔을 뿐이에요."
지혜로운 J는 일찍 감치 진실을 깨쳤다. 비록 그녀에겐 부적절한 존재라고 낙인찍는 엄마가 있었지만, 그녀는 딸을 훨훨 날 수 있게 놓아주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을까 싶다.
학원 알바로 부랴부랴 대화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날밤을 새서라도 그녀 기특한 그 내면 아이를 칭찬해 줘도 모자랄 판이라 아쉬웠다. 홀로 상처를 꿰맨 내면아이의 뒷모습이 선명하다.
기꺼이 J를 다시 만나고 싶다. 친정엄마를 용서해드리라고 싶다. 오늘 하지 못한 말은 그녀에게 꼭 전하고 싶다.
다음 세상은 지금과는 다르겠죠? 라 묻는 그녀에게 답했다. 나와 당신이라는 존재가 다른 세상을 꿈꾸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오늘 이 시간만큼 세상은 변했다고 말이다. 아직은 단단한 스스로를 충분히 칭찬해 주지 못하는 그녀가 느껴진다. 받지 못한 사랑을 자아내는 그녀는 기적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거미가 떠올랐다.
J님, 부디 어머니를 용서하세요. 그리하여 더 행복해지세요.
그나저나 드디어 괜찮은 엄마친구를 만나게 되어 행복하다. 딸 덕이다. 엄마의 교우관계를 늘 걱정하는 딸을 오늘은 아르바이트 끝나고 돌아가 꽉 안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