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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남편 기르기

by 호박씨

퇴근에 맞춰서 저녁밥을 차려낸다. 야근이 잦았던 때라 집에 와서 저녁 함께 먹는 일이 자주 일어나진 않았지만, 기다리는 맛이 좋았다. 순식간에 현모양처 된 듯 뿌듯했다. 지친 얼굴로 들어온 사원 김 씨의 얼굴이 보이면 그리 기쁠 수 없었다. 엉망진창인 요리를 묵묵히 먹어주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였냐고 묻기 전에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된다. 난 기꺼이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 어머니, 진지 드셨습니까?"

숟가락을 내려놓은 그는 해운대에 전화를 건다. 해운대 집전화를 걸면 금세 받으시는 어머니니까.

오늘 하루 잘한 일을 엄마에게 고하고, 우쭈쭈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며 넌 잘 될 거다고 같은 말의 반복을 듣고 나면 그제야 그는 하루의 의무를 다 마친 개운한 표정이다. 씻고 잔다. 로봇처럼, 군인과 같이 일관되고 정돈되고 평온한 남편의 신혼이었다.

뭐지? 이게 뭐야?

남편은 이런 사람이다. 한결 같이 이렇했다.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을 한 후에도, 지금도 그대로다. 앞으로도 그렇할 것이다.







꿈처럼, 긴긴 침묵을 깨고 말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며 그렇게 바라던 함께 영화 보기도 했다. OST가 훌륭한 Gardience of Galaxy다. Redbone의 엇박 속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올드팝과 우주 방위대의 조합이라니, 신박하다. E열 옆에 스피커가 위치해서, 귀가 터질 듯한 효과음에 배경음악에 제대로 은하수 속에 풍덩 빠져들 수 있었다. 아들도 딸도 숨도 안 쉬고 잘 본다. 아빠와 함께 보러 온 그들의 기운도 밝아 좋다.

" 중간에 잤다, 아빠는. 영화는 보다 보면 왜 이리 피곤하냐?"

어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띠지 않은 남편이다. 유튜브를 12시간 정도 시청했을 것이다. 조조가 싸니 일찍 가려면 일찍 자야겠다며 토요일인데 착한 어린이처럼 10시부터 잤다. 그러니, 잠이 왔다는 건 집중하기 쉽지 않았고 그의 흥미를 끌만한 매력도 없었다는 얘기겠다.

화해는 했지만, 영화 보는 데 취미가 없고 문화생활에 조예가 없는 남편이 굳이 영화를 같이 보러 갈 이유는 없었다. 그에게 영화 끝나고 만나서 얘들과 밥이나 같이 먹자고 했지만, 그간 얘들과 같이 보낸 시간이 없는 바가 아쉬웠는지 꼭 같이 가겠다고 했다. 딴에는 함께 하려고 노력한 셈이다.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중간에 잠들었다고 란다. 얘들이 하도 집중해서 보니라 피곤한 기색이다. 신나서 나도 피곤했어, 나도 잤어 소리를 한다. 소리와 대형 스크린이라는 자극의 홍수 속에 감수성이 한참 예민한 얘들이 2시간 넘는 영화를 소화해 내니라 피곤한 것이다. 남편은 알지 못한다. 그럼 말이나 말지. 아직 눈가에 눈물도 마르지 않은 눈치의 딸이다. 하도 재밌게 봐서 휘청거리는지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들이다. 그냥 내뱉지 말고 제발 한 템포만 쉬란 말이다.


우리 엄마는 이걸 좋아해. 난 여자형제가 많아서 여자들은 정말 잘 알아.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들으며 남편 잘 골랐어하며 즐거워했다. 그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와 누나들 사이에다 나도 끼어 넣으면 된다. 누나들의 조카들을 살뜰히 봐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휴가 내내 놀아주던 남편을 보면서 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길 즐기는 아빠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의 그는 20년 전 그 모습 그대로다. 한치의 변함이 없다. 그에게 세상이 변했으니 너도 변해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미친 X는 나뿐이다. 나는 너의 누나도 엄마도 아니야. 얘들은 너의 조카도 아니고, 너의 미니미도, 나의 미니미도 아니야. 있는 그대로일 뿐이지.




이번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찬란한 영화였고 DC 최근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참신하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더 재밌어지는 유일무이한 할리우드 영화다. 손뼉 칠 때 떠날 예정인가 보다. 떠나는 마당엔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 메시지를 되뇌고 또 되뇐다.

" 공감하라. 타인의 고통을 함께하라. "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은 순간부터 내겐 남편이란 존재가 있었다. 남편과 아빠가 될 용기가 탑재되지 않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글로 태어나고 있다. 부디, 공감해 주십시오. 당신의 위로가 이제야 경력단절녀 호박씨와 코로나 10대 두 아이들에겐 그 어떤 힘 보다 강력한 뒷배가 될 테니까요. 씩씩해진 우린 당신의 불안을 잠재울 만큼 괜찮아질 예정이니까요.


흘러간 과거를 흘러가버리게 할 수 없다. 그는 미래가 불안하다. 그리하여 과거를 곱씹지 않은 채, 항상성을 유지하려고만 한다. 현실을 직면하지 않은 채, 세상보고 빨리 내 달음 치지 말라고 호통 친다. 미래는 그의 오늘과 같아야만 한다. 장밋빛 미래는 없다.

"우린 있는 그래도 괜찮아. 당신이 세상을 불안하게 보고 두려움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면, 당신의 가족인 우리 또한 그렇게 불행하게 살 거야. 부디 스스로를 사랑하시오, 남편. "

그에게 전하고픈 메세지다. 화해를 하자 마누라 잔소리가 쏟아져내리네 싶겠다. 잔소리가 아니라, 마음이 다급하니 입만 열면 메시지를 담기에 바쁜 나다. 6개월을, 반년을 내 속 정리하니라 흘려보냈으니 그간 내게 충만했던 만족감을 어떻게 그도 느끼게 할까 싶어 조급해진다. 워워워

말이 아닌 행동에 메시지를 담아야겠다. 혹시 알아? 그가 만족하며 사는 내 등을 보고 배울지?

가디언즈들도 말이 아닌 희생의 행동으로 서로를 변화시켰듯이 말이다. 스스로를 기꺼이 껴안을 수 있을 만큼 만족한 사랑을 주고받은 순간 그들은 혼자일 수 있었다. 각자의 길로 떠나는 가디언즈처럼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남편으로 무럭무럭 잘 길러봐야겠다.




제 글을 통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결말을 알게 되셨음에도 불구 하고 꼭 볼 만한 가치 있는 영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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