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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이 사피엔스예요.

by 호박씨

멀미가 심한 나를 아기들도 꼭 빼닮았다. 차만 타면 대성통곡했다. 20살이 안 돼서 운전을 시작한 시댁 식구들이 멀미란 어떤 기분일지 두 번 태어나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벤츠 뽑고 다음 주에 벤츠 시승식을 거행했겠지. 그리고 우리를 초대했겠지.

서울 외곽에 치질수술전문 병원을 개업하고 아슬아슬해하던 시간은 흘러, 6개월 정도에 자리가 잡히고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나 보다. 리스인지 매매인지 어린 며느리인 나는 알 수 없었다. 벤츠 색이 곱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이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바른 듯 부드러운 색에 실소했다. 차의 색상을 골랐을 남편의 누나 S야말로 뾰족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그녀를 대표하는 색이라면 핫핑크나 스카렛레드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벤츠 뒷좌석에 아기를 앉고 탄지 10분이 지나자 나란히 앉은 S가 쳐다본다. 뭐라도 한마디 하지? 그녀의 눈빛이 읽힌다. 아들의 멀미가 시작될까 싶어 상태에 집중하고 있으니 S가 바라는 답을 줄 틈이 없었다.

" 편안하네요."

모자라다는 눈치다.

" 얼마예요?"

공을 S에게 넘겨준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풀어진다. 자고로 자리를 깔아줘야 자랑도 할 수 있다. 병원으로 흘러들어오는 돈을 보여주고 싶은 S다. 일 매출 액수보다는 크림색 벤츠가 얼마이고, 차를 구입하는데 걸린 정성과 시간에 대해서 설명하길 즐긴다. 하루 수술 건수로 대화하면 간단하고 편할 터인데, 상스럽다 싶은가 보다. 벤츠 자랑은 상스럽지 않고?




"U실장님, 제네시* 뽑았잖아."

원장이 면접 때 언급한, 골프 치러 다닌 다는 실장이 U 실장인지 이제 감을 잡았다. 시급 만원, 3개월마다 천 원씩 올라가는 시급을 모으면 골프 치러 다닐 만큼 여유 있다고 말하고 싶은가 보다.

안타깝게도 골프라면 지긋지긋하다. 내게 스포츠는 아픈 허리와 발목을 낫게 하는 치료이다. 그러니 골프는 운동시간으로 가성이 바닥이다. 골프 치라고 해도 안 칠판인데, 여기 학원에서 일하면 여유 있다는 실례로 골프를 물고 오는 원장이다. 원장은 골프도 고급차도 좋아하는 대중이며, 그녀는 나 또한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이번주 월요일에 U 실장이 차 뽑은 이야기를 하며 원장은 기분이 좋다. 월급을 모아서 산 제네시*가 아닌데 원장이 신난 이유를 알 수 없다.

" 우리 아들, 성공했구나."

한국으로 돌아오던 해, 시골로 차를 몰고 오는 젊은 아들의 소나*를 보고 뛰어나오는 노모가 나오는 광고가 내겐 가장 인상 깊었다. 원장이 노모 코스프레하시는 걸까? 인간적인 원장이라면 실장의 새 차에 걸맞은 방향제를 선물해 주면 훈훈하겠다. 하나, 그녀는 U실장의 차 뽑은 바를 내게 자랑하고는 그것으로 그만이다. 우리 학원에서 일하며 비전을 가지고 일한다면, 제네시*가 아니라 더 한 것도 선물해 줄 수 있다고 통 크게 뻥이라도 낫겠다 싶다. 꿈과 희망까진 아니더라도 일할 맛은 샘솟을 터이다. 일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신입에겐 그런 의미가 될 수도 있다.





2015년 독일, 일등 시민으로 칭송받던 독일을 뒤흔든 디젤 게이트가 터졌다. 시민문화가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다는 결과론적인 찬양은 매체 어디에서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필이면 차였으니까. 하필이면 민중의 차, Folks(시민)의 wagen(차)이었으니까.

옆집 독일인 U와 단 둘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던 2015년의 겨울, 나를 바라보던 U의 눈빛을 기억한다.

"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독일인이라 부끄러워. "

폭스바겐 회장은 말단 직원 단 3명이 벌인 바라며 꼬리를 자르고 전 세계 인을 우롱했지만, 미국에서만 48만 대의 차량이 조작된 차량이라고 밝혀졌다. 부끄러울만하겠다. 폭스바겐뿐 아니라, 자회사인 아우디와 포르셰를 아우르는 거짓이 밝혀지던 2016년, 한국에선 독일차의 수입은 정점을 찍었겠다.

오늘 아침 매경, 전 세계 10위 자동차 판매 순위 안에 있지도 않은 독일차가 헤드라인에 걸려있다. '전 세계 Top10에 독일차는 찾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한국인이 독일 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신문사는 알고 있다. 아침 시간을 경제신문을 읽는데 쓸 수 있는 구독자들 중 많은 숫자가 흔쾌히 독일차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을 잘 아는 기자는 독자에게 걸맞은 헤드라인을 뽑아냈다.


경제신문을 읽으면서도 걸을 시간을 쪼개내니라 고민이다. 오롯이 경제신문의 내용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 핸드폰 시간을 바라본다. 오전 9시에 걸으러 나가야만 학원 출근 전에 브런치 글을 올리고, 저녁 준비를 해둘 수 있다.

살아 있던 소를 죽여 한 접시의 저녁을 먹고, 음식 배달로 재활용 쓰레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배달은 사용하지 않고, 육고기는 일주일에 3번만 하자 싶지만 비밀리에 세운 이 목표를 달성한 주는 없다. 내 몸뚱이로 온전히 해 낼 수 있는 바는 걷기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낸다.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않을 수 있다면 신나서 걷는다.

내게 자가용이란 죄스러움이다. 배기가스를 뿜어내지 않는 기술이 아직은 없으니, 차를 몰고 나가는 행위는 지구를 더럽힘과 동의어다. 걸을 시간을 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는 데 순도 100%로 내 다리를 이용한다면 기쁨이 차오른다. 테슬*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해도 이 기쁨과 바꿀 순 없다.

지도 앱을 연다. 오른쪽에 걷는 사람 모양의 아이콘을 누른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과 비교해 본다. 10분 이하의 차이라면 벅차오르기도 한다. 자동차와의 경주에서 이긴 인류나 된냥, 홀로 좋아라 한다. 뭘 그리 복잡하게 사냐고 누군가 묻는다. 원시인이 되고 싶냐고 할 수도 있겠다.

테슬*도, 벤츠도, 제네시*도 아닌 사피엔스로 살고 싶어 이 난리다. 누군가는 벤츠를 몰며 스스로를 벤츠로 여긴다. 또 누군가는 테슬*를 사며, 스스로를 일론으로 바라본다. 애지중지 어디 하나 소중한 나의 제네시* 흠날까 불안해한다. 여러분들은 부디 사람으로 사시길 빈다. 무엇을 타고 다니든, 무엇을 몰고 다니든 당신의 인간의 가치와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기도한다.

난 그저 멀미 때문에 걸어 다닐 뿐이다. 호박씨가 내내 걸어 다님의 진짜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당신만이 안다.


사진: UnsplashHyundai Motor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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