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외식을 하려면 점심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독일은 Mittag 메뉴, 즉 오늘의 메뉴라고 10유로 우리 돈 만 삼천 원 언저리의 점심 특선이 있다. 내가 주로 가던 이태리 레스토랑과 인도 레스토랑에도 점심메뉴가 있어서 세 개 정도 선택지 안에 내가 오늘 당기는 메뉴가 있으면 운이 꽤나 좋은 편인 거다. 음료는 자릿세처럼 시켜야 하니 음료값까지 점심값은 우리 돈 만 오천 원 정도가 든다. 점심식사는 팁을 간단히 줘도 된다는 인식이 있어서 11.4유로라면 올림 하여 12유로만 주어도 서빙하는 이가 눈살 찌푸릴 일은 없다.
저녁식사는 비슷한 메뉴라 하더라도 두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팁도 두둑이 지불한다. 따라서 흔한 독일인들의 저녁 식사 대접은 BBQ, 즉 가든파티다. 초대를 받은 사람도 적당히 과일이나 음료, 주류를 챙겨 가면 되고 초대를 주최한 이도 정육점에 가서, 굽기만 하는 되는 상태로 마리네이드가 된 갖가지 고기를 집에 사두면 된다. 닭꼬치, 양갈비, 소시지 Wurst, 스테이크, 새우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따라서, 손님도 주인도 마음이 가볍다. 좀 정성을 들이고 싶다면 안주인이 디저트인 케이크를 구워두는 정도인데 그 또한 꼭 그리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게 독일 정서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국제 학교 아이들은 주말여행을 가거나 저녁 약속이 있거나 해서 수업이 끝난 세시면 학교는 썰렁하다. 2015년 가을 늘 그렇듯 나와 아이들은 수업이 파하고 텅 빈 국제학교 부설 유치원 놀이터에 있다. 놀던 아이들도 하나씩 집으로 가고 우리 셋만 남는 것은 보통 다섯 시 정도다. 유치원에서 집까지는 아무리 천천히 가도 십오 분이다. 걸어서 국제학교를 다녔으니 배부른 소리다 하겠지만 난 텅 빈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독일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금요일은 플레이 데이트 잡기가 좋다. 아이들이 초대를 받아서 놀러 가거나 외국 친구를 초대해서 놀아야 뭔가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만족감과 우리도 이곳에 뭔가 연결고리가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래서 난 목요일부터 약속을 못 잡을까 불안하다. 부지런을 떨어도 이럭저럭 스케줄이 안 맞는 때도 있다. 이번 주는 아이 둘 다 약속이 안 잡힌다. 그래서 나는 긴 금요일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놀이터에 앉아있다.
아이들도 내 맘을 아는지 딱히 놀이터를 떠날 생각이 없다.
"저녁 먹으러 가자."
" 우리 뭐 먹어, 엄마?"
난 이 질문이 싫다. 음식이란 것이 누구랑 어디서 어떤 분위기로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른데, 이런 기분으로 셋이서 뭘 먹으러 가야 하는지 내가 결정해야 하다니 말이다.
지구 반대편에 나와 아이들만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다. 남편은 또 출장이다. 밤늦게나 지친 어깨와 꺼칠한 얼굴로 돌아올 테지.
작은 오버 오젤 읍내에 터키인들이 하는 케밥집이 여럿 있다. 그중 단골 케밥집도 한 군데 정해두고 자주 들르곤 했더랬다. 케밥의 가격은 언제나 5유로, 칠천 원 선이고 케밥 즉, 고기 덩어리를 굽고 야채를 조리하는 터키 요리사가 세명이다. 한 사람이 캐셔도 한다. 홀에는 16세쯤 돼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마도 요리사들의 친척인듯해 보이는 이가 주방과 홀을 들락 거리며 써빙한다. 홀 이래 봤자 테이블 다섯 개에 의자가 각 두 개씩 놓여있는 좁은 공간이다. 천장에 달린 TV 한대에는 쉼 없이 터키 음악방송이 나온다. 얇은 히잡을 둘러쓴 빨간 립스틱의 육감적인 중동 여자와 검은 털이 많은 근육질의 터키 남성이 배경만 바꿔서 계속 등장한다.
그냥 그런 케밥집이다. 물론 가격 대비 맛은 훌륭하다. 웬만한 이태원의 고급 케밥집보다 맛있다. 얇게 잘라낸 고기도 겉바속촉인 데다, 야채는 늘 싱싱하다. 기본 케밥 메뉴 Doner와 Pommes의 메뉴를 두 개 주문하면 아이들과 다 못 먹을 만큼 양이 넉넉하다. 음료는 알아서 갖다 먹다 먹는다. 먹으면 케밥을 자르고 있는 요리사에게 도너 값과 음료 값을 지불하면 된다. 간결하고 명료한, 말 그대로 끼니를 때우는 먹는 행위의 장소, 식당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국제학교 운동장을 지나쳐 집에 도착한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 앞에 주차되어있는 내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오버 오젤 읍내로 향한다. 읍내 주차장에서 케밥집까지는 걸어서 5분이다. 그 길은 오버 오젤 읍내의 작고 오래된 단독주택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이다. 백 년은 됐음직한 낡고 차가운 돌바닥 길을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간다. 이 주택들의 담은 대부분 낮으며 이 나무 담 들 위로 들장미 같은 수풀이 얽혀있거나 키 작은 나무 들까 그 옆에 줄지어 서있곤 한다.
고기 냄새가 골목길에 진동한다. 금요일 저녁이기 때문이다. 낮은 담 너머로 그릴 하기 바쁜 독일 남자들이 보인다. 여자들은 왔다 갔다 음식을 나르고 아이들은 그릴기 앞마당에서 소리 지르며 뛰어논다. 숯이 타는 구수한 향과 익어가는 고기 향이 어우러져서 기분이 좋아진다.
" 엄마, 배고파."
이 말에 왜 난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난 돈도 있고, 남편도 있고, 차도 있고, 집도 있는데 왜 아이들의 엄마 배고파는 슬픈 걸까.
"우리 케밥집 가고 있잖아. 맛있겠다."
내 눈엔 눈물이 그렁해도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은 다정해야 한다.
눈물이 떨어지지 앓으려고 난 하늘 쪽으로 눈을 치켜떠본다.
누구에게도 금요일 저녁 식사에 초대받지 못한 나는 이 BBQ향이 싫다. 스파클링 와인 한 병을 사서 이 골목의 어느 집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마치 오랫동안 친한 사이 이기라도 한 듯 말이다.
다 왔다. 케밥집. 들어가니 금요일이라 역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은 케밥 조리하는 요리사도 두 명이다.
" Zwei doner mit Pommes, bitte."
감자튀김 곁들인 도너 세트 두 개요.
이것이 내가 세 시간 만에 말한 유일한 문장이다.
아이들과 한 한국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이들은 잘 먹는다. 나는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홀로 저녁을 때우려는 독일 남자 한 명이 청바지에 손을 찌르고 식당 안으로 들어와 아무 자리나 자리 잡는다. 큼지막한 도너 한 접시를 뚝딱 해치우고 쓱쓱 나간다.
"얘들아, 우리도 가자. 집으로"
절반은 남긴 케밥을 두고 난 계산을 치른다.
"Danke, schone. Tschuss."
잘 먹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다시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제 어스름 긴 해가 진다. 여전히 바비큐 파티는 한창이고 골목길은 이제 두런두런 어른들의 음성으로 채워진다.
향수병이다. 이것이 향수병이란 것의 증상이다. 아는 사람 그 누구라도 그리운 그런 가을의 저녁이다. 난 독일의 금요일 저녁이 싫다. 고소한 BBQ향은 더 싫다. 향수병, 이것 참 지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