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터미널 역은 지하철이 3개 노선이나 지나가는 데다, 경부선과 호남선 등 전국 각지로 달려 나가는 고속버스의 승장장이 있어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한 장소다. 사람 구경이라고 하지만 사실 옷차림과 신발을 주로 본다. 패션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20년 전의 열정은 완전히 꺼지지는 않은 셈이다. 여전히도 예쁜 것엔 설렌다. 출근길의 옷차림을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고속터미널을 굳이 환승하지 않아도 사무실에 도착할 방법은 여럿이다. 운이 좋은 편이다. 이리저리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교차되기에 고터역에선 빠르게 움직이려 하다 보면 부딪힐 수도 있는데, 내겐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눈에 담기 위해서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구두 신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구두 신었다고 하더라도 킬힐은 없다. 20년 전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그리고 다리가 예뻐 보이게 하려고, 여자신발은 예쁘다고 하면 굽 높은 힐이 대부분이었었다. 외근이 많았다. 신림동, 청계천, 청담동을 킬힐을 신고 하루 종일 사무실 밖을 쏘다니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엔 물집이 잡히게 마련이었고 발목이 아릿해왔다. 고통을 즐겼다. 아프면 왠지 열심히 살은 증거처럼 느껴졌다.
가끔 검은 구두를 신은 여성을 찾으면 그들 대부분은 올림망 핀으로 머리를 쓸어 담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검은 치마정장에 구두, 올림머리, 그들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사람을 대면하는 서비스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적은 급여의 여자가 여전히 세상엔 많다.
모시송편을 파는 할머니가 계시다. 할머니는 환승 길목에 송편이 담긴 박스를 캐리어에 올려 떡이 적당히 보이게끔 두고 계시다. 캐리어에 할머니의 몸을 의지해서 오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려고 애를 쓰신다. 할머니는 몸빼바지, 점퍼, 모자를 쓰고 계신다. 한겨울에도 고속터미널 지하는 싸늘하진 않은데 옷을 벗어두고 계실 곳이 없으니 다 입고 계신다. 할머니의 신발은 낡은 운동화 또는 낡은 컴포트화. 멋은 없고 그녀의 일상이 묻어난다. 다만 할머니의 얼굴과 손은 깔끔하다. 모시송편을 할머니가 만드신다고 해도 믿을 것이고, 깔끔한 할머니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모시송편이니 사볼까 생각할 수 있을 테다.
명품백은 누구나 들고 다닌다. 20대들은 흔히 아는 브랜드의 검은색 백을 메고 다닌다. 그녀에겐 가진 명품백은 아마 그거뿐일 터이니 검은색을 선택하면 어떤 옷에든 어울릴 수 있다. 명품백을 맨 20대 그 누구도 굽 높아 불편한 구두는 신지 않았다. 그들은 뛸 수도 운전할 수도 그리고 어디든 달음박질칠 수도 있다.
첫 월급을 받아서 산 게 신발이었다. 다른 신을 신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하다. 오색 신발을 지니고 살던 나는 큰 발을 가진 사람들의 나라인 독일에선 양껏 살 수가 없었다. 명품 신발도 내 사이즈는 드물었고, 남편은 신발을 사대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동화를 신고 살았었는데 독일 청소년들이 워낙 크다 보니 아동화 또는 청소년화에서도 얼마든지 내 사이즈를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10대들의 신을 신고 아이들이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국제학교로 출근하다시피 하고 살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물에 뜬 기름처럼 이방인으로 살았다. 아동을 위해서 만든 신을 신고 다녔으니 그렇게 살았었던 게 맞을게다.
신입사원 시절, 패션학과를 나온 입사동기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킬힐을 신고 다니다 원단 더미에 걸려 사무실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20년이 지난 오늘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시간이 흘러 이젠 불편하고 맞지 않는 신발은 신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고속터미널의 할머니 또는 중년 여성 그 누구도 구역 딱딱한 구두를 신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할머니들은 자식이 사준 컴포트화나 미국 브랜드의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이제 그 누구도 그들에게 불편한 상황을 우겨 참으라고 하지 않듯 더 이상 나도 구두를 신지 않아도 된다.
현관 신발장 안에 킬힐은 남아있지 않다. 독일까지도 싸들고 갔던 신행날의 하이힐은 서초동 구축 아파트의 넉넉하지 않은 수납공간을 이유로 신발수거함 행이 되어버렸다. 꽤나 공평한 세상이 왔다. 공평하고 편안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면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아이들과 같은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아이들이 신다 버린 운동화가 말짱하기만 하다면 신고 출근하는 내가 되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 상상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행운을 누리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