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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트렁크에 총알 3개가 들어있다.

by 호박씨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의 Soul이다. 규칙적으로 크리스 마켓을 무사히 여는 범사를 독일 국민들은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독일 생활에서 내내 느낄 수 있다. 마치 계절을 따라 숲의 색이 영겁을 반복하며 변화하듯 말이다. 독일인들은 한해의 이벤트가 기입되어 있는 그 동네표 달력을 따라 10년이고 20년이고 동일한 행사를 반복함에 안정감을 느끼는 나무 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살던 오버오젤도 1월이 되면 Rathaus 주민센터에서 오버오젤의 상징인 성녀聖女 오버우어젤 사진이 프린트 되어있는 달력을 나눠준다. 또는 지역 신문 사이에 B4 사이즈의 한 장 짜리 달력이 껴있곤 한다.


이 달력에서 가장 긴 연휴는 뭐니 뭐니 해도 크리스마스 연휴다. 한국으로의 귀임 발령이 나고 우리 가족에게 독일에서의 남은 시간은 만 2 달이었다. 컨테이너 이사하랴 한국에서 들어갈 집 구하랴 아이들 한국학교 알아보랴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마켓을 마지막으로 꼭 보고 가야겠다고 부득부득 우겼다.

크리스마스 마켓이야 작은 우리 동네 오버오젤에도 있고, 크리스마스 연휴마다 신물 나게 갔으니 마지막 여행지를 하필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가야겠냐고 했지만, 나는 로텐부르크가 꼭 가고 싶었다.

아마 그것은 나만의 의식이었던 것 같다. 나의 soul에 이 독일의 soul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면서 새겨 넣음에 필요한 의식. 그 의식은 로텐부르크처럼 독일의 정수精髓다운 도시에서 치러져야 하는 법이다. 나 개인의 역사적으로, 의미상 그러하다.


로텐부르크의 정식 명칭은 Rothenburg ob der Tauber 타우버강가의 로텐부르크다. 독일에는 다른 로텐부르크가 있어 이렇게 구분해서 부른다. 중세의 보석이라고 부르는 로텐부르크는 부르크 패밀리 중에서 제일 유명한 편이다. 가 보면 왜 그런지 안다. 가보기 전에 다른 부르크 시리즈들 , 예를 들면 밤베르크나 뉘른베르크들을 가보면 미묘한 차이들을 통해서 로텐부르크는 그야말로 귀염귀염 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취향저격인 곳이란 느낌이 든다.

로텐베르크에 차로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였다. 12월의 주말 저녁 6기 중세의 독일 도시는 정말 중세처럼 불빛이 드물고 문을 열은 곳도 드물다. 크리스마스마켓이 있는 마크트플라츠 Marktplatz, 광장은 반짝거리고 북적거릴 것이라 기대해본다. 그러나, 나의 이 로텐부르크 여행의 테마가 떠나기 전 독일을 제대로 느끼기였기에, 이 테마를 관통하는 경험들이 줄줄이 사탕이었다.


일 번 사탕, 출출한 저녁 식사 시간에 되어 주차장 건너편 맛이 있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도 중세 독일 가옥의 형태. 독일 관광지의 식당은 숙박업을 겸업하는 경우가 대대분인데 그 식당도 그러했다. 역사가 깊어 보이면 맛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흔한 관광객은 말이다. 독일은 그 법칙을 바삭하게 부셔준다.

우리가 시킨 메뉴는 부어스트 Wurst에 감자튀김 Pommes과 아인 토프 Eintopf라 불리는 수프 형태의 전통음식이다. 짜기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다. 식어가면 점점 더 짜져서 사발, Topf의 마지막은 소금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짜서 혀로는 맛보기 힘들고 숟가락으로 혀를 피해 목구멍 쪽으로 떠먹어 보려고 노력해본다. 부어스트도 웬만하면 그렇게 맛없긴 힘들다. 그나마 감자튀김의 소금은 떨어내고 먹을 수 있으니 감자튀김만 겨우 먹어 보려 하는 내 아이들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다.

어쩜 이리 독일은 일관성이 있을까? 마지막 여행이 아름다워지려면 전통음식 또한 맛있어야겠지만, 독일은 우리에게 이리도 강력한 마지막 인상을 남기려고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관광지 음식이 맛없다.


이번 사탕, 너무 많이 남기기가 식당 주인에게 미안하여 꾸역 먹다 보니 식사를 마친 시간은 7시가 넘었다. 토요일 7시면 관광지 이건 아니건 간에 가차 없이 가게들이 다 문을 닫는다. 밥을 먹지 말고 먼저 가게들을 갔었어야 했다. 로텐부르크의 참새 방앗간은 케테 볼파르트 Käthe Wohlfahrt라는 크리스마스 가게다. 가게가 그냥 크리스마스 그 자체라고 보면 된다. 1년 내내 크리스마스인 가게인데 12월이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기대가 컸다. 이 가게는 무조건 봐야 하고, 이 가게를 보기 위해서 로텐부르크에 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게 문 닫혔다. 기가 막히지만 그게 독일이다. 가차 없이 문은 닫혀 있다. 이 비싼 독일, 내 돈을 가지고도 물건 사기가 쉽지 않은 쌀쌀한 이 나라, 제대로 맛보게 해주는 날이다. 케테 볼파르트에서 사실 큰 물건을 사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한국으로 보내는 컨테이너 이사 작업은 일주일 전에 다 마쳤고, 독일 집에 있는 살림들은 출국하기 전까지의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갖춘 상황이었다. 또한 한국으로 가져가야 한다면 트렁크에 꾸역이 담아 내손으로 옮겨 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물건은 아무리 아쉬워도 웬만하면 사지 않는 것이 고생 안 하는 길이였다. 독일은 나에게 말한다.

" 눈에 담아 가렴. 손에 들고 가려고 하지 말고. 그만 소유하렴."


물욕 충만한 작은 아이와 쇼윈도에 코와 입을 납작하게 붙이고 아쉬움을 달래 본다. 남편과 큰 애는 본인들이 관심 없는 바에는 신경을 1도 안 쓰는 타입이라 가게가 문을 닫았건 안 닫았건 두 남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 크리스마스 가게는 아쉬워하지 않는다.

다만 슈니발렌 Schneeballen 가게, 로텐베르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스노우볼 빵 가게에 가서는 두 남자도 아쉬워한다. 어김없이 문은 닫혀있고, 쇼윈도의 안 스노우볼은 눈으로 먹어야 한다.

끝까지 독일은 나에게 교훈질이다.

" 독일에서 제대로 관광을 하려면 영업시간을 일일이 확인해야 해. 우리는 워라벨이 중요한 사람들이라서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쉴 땐 쉰단 말씀. 언제나 오픈하고, 언제나 쇼핑할 수 있는 그런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란 말이지.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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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 3번, 좋은 물건은 그 값어치를 지불해야 한다.

실버라이닝은 항상 있다. 굳게 닫힌 독일인의 입매에서 가끔, 아주 가끔 들을 수 있는 따듯하고 솔직한 독일어처럼 냉장고 자석이라도 살 수 있는 불 켜진 기념품 가게가 저 멀리 보인다. 차갑고 딱딱한 광장 돌바닥을 가로질러 희미하게 보이는 보이는 불빛이 내 아이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 엄마, 냉장고 자석 살 수 있어."

관광지마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냉장고 자석을 모으는 것이 유일한 내 유럽 여행의 취미다. 아이들과 들어간 기념품 가게는 그냥 기념품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주변 흑림 Schwartzwald 지역의 명물인 뻐꾸기시계도 파는 가게였다.

4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소득이 없이 갈 수 없으니 뻐꾸기 시계를 하나 사 가지고 가자고 한다. 여기까지 운전을 하고 온 남편이 말한다. 그깟 시계쯤이야 트렁크에 넣어 한국으로 가져오면 되지 하겠지만, 그건 뻐꾸기 시계를 본 적 없어서 하는 소리다.


뻐꾸기 시계의 형태는 대략 이러하다. 흑림 지역의 전통 가옥인 나무집 안에 뻐꾸기가 각 정시마다 문을 열고 나온다. 옥토버 페스트 의상인 Dirdl을 입은 커플들이 춤을 추고, 사슴 가죽조끼를 입은 낚시꾼이 시간 맞춰 낚싯대를 드리우며,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이런 어마어마한 기능을 가진 가로 30센티, 세로 30센티, 너비 10센티가 넘는 뻐꾸기시계들로 가게 한쪽 벽이 꽉 차있다. 둘러보기 시작하는 남편을 말리고 싶었다. 가격을 알기 때문이다.

독일을 떠나는 주재원들이 가사를 탕진한다는 이 뻐꾸기 시계들은 싸게는 600유로, 우리 돈 70만 원에서 2500유로 즉, 300만 원까지 하는 수공예품이다. 한 땀 한 땀 독일 장인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만든 이 수공예품을 남대문 시장이나 쿠팡에서 찾겠다고 해보자. 10만 원 미만의 훌륭한 중국 가품假品이 널리고 널린 것이 바로 이 뻐꾸기 시계다. 유통의 흐름을 거슬러 가고 있는 대표적인 물건이라고 하겠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을 평정하고 전 세계인을 위한 착한 가격으로 물건을 만들어내고 이 마당에, 독일은 장인의 시간과 손기술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대의 흐름을 타고 가면 될 텐데, 나와 함께 사는 이 남자, 여기까지 왔으니 빈손으로 가면 가성이 떨어진다며 이 독일 장인의 가치를 내 피 같은 돈을 주고 요량이다. 제발 냉장고 자석만 하나 사고 나갑시다는 나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남편은 1000유로짜리, (그래도 많이 양보했다) 뻐꾸기 시계를 들고, 뒷모습이 즐거워 보이시는 늙은 점원 아주머니를 따라 계산을 하러 간다. 점원분 오늘 수지맞으셨다. 문 닫을 시간에 뻐꾸기 시계를 파셨으니 말이다.


나는 남편을 말릴 의지가 없다. 본인이 이고 지고 간다는데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뻐꾸기 시계, 본체가 다가 아니다. 솔방울을 본떠 만든 길이 20cm의 쇠추가 3개 달려있다. 계산하지 못했던 변수다. 불안한 예감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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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항 입국장이다. 내 트렁크를 검색대 위에 올리니 보안검색원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 트렁크 안에 총알 형태의 물건이 세 개가 들어있네요. 이게 무엇인가요? "

" 뻐꾸기시계 추인데요."

"네? 뭐라고요? "

" 뻐꾸기 시계추요."

"!!!? 트렁크 좀 열어주시겠어요."

진짜 귀찮다. 이 추 하나의 무게가 2킬로가 넘는다. 낑낑 거리며 하나를 꺼낸다. 겹겹이 싸 둔 얇은 종이 안에 보이는 것은 길쭉한 솔방울의 형태를 띤, 흑림 다람쥐들이 좋아하는 딱 그 모양의 대포, 아니 뻐꾸기 시계추다. 설마 세 개를 다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

" 이게 뭔가요? "

" 뻐꾸기 시계추요!"

결국 옆에 서 있는 남편 손에 들려있는 뻐꾸기 시계를 풀어 추를 연결하여 보여준다. 보안검색원은 그제야 우리를 보내준다. 별나라 사람들이라 생각하겠지만, 이게 독일이다. 진정한 독일이란 모름지기 총알 3개쯤은 달려 있는 뻐꾸기 시계쯤은 들고 검색대를 지나쳐야 한다. 애플 와치와 갤럭시 플립이 현재 시간이라면 0.1초 안에도 알려주는 세상에서 말이다. 마지막 독일 여행에서의 내 테마는 피날레도 화려하게 보안검색대에서 맞는다. 줄줄이 사탕 같은 독일의 경험은 세 개가 아니라 네 개였구나.

뻐꾸기 시계는 무사히 한국 집에 도착하여 시간 맞춰 잘 가고 있다. 총알 세 개를 달고 말이다. 뻐꾸기 시계가 나이였어도 그날의 로텐베르크와 독일의 크리스마스 soul은 내 soul에 아로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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