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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문제야

by 호박씨

왜 거듭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를 묻는다. 반복해서 묻는다. 같은 질문을 큰 아이 나이에서 했나 보다. 똑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엄마는 나를 믿지 않는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어디서부터 문제인 걸까 풀지 못하니 무기력함에 빠져든다. 우울하고 가만있다가 울음이 터졌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 마냥 아들과 마주하고 대한다는 게 무섭기만 하다. 실패하는 나와 계속 직면한다.

분명 아이는 달라지고 있다. 단지 그 속도가 느릴 뿐이다. 나는 아이에게 변화하고 있음을 온전히 칭찬하지 못한다. 목표지점을 정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다. 나의 고2를 떠올려보면 방황투성이었다.

하필이면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남녀합반이었고, 60명의 학급 중 고작 여자애들은 고작 20명 남짓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 나누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마음 맞는 사람 만나는데 어려움이 있는 나로선 고역이었다. 연애를 통해 관계를 연습하는 주변 여학생들 틈바구니에서 키 작고 살쪄가는 내 외모를 스스로 비판했다. 이렇게 생겨서 관계 맺지 못하는 거라 생각하면 간단했으니까. 친정엄마에게 살을 빼고 싶단 이야기를 참말로 어렵게 꺼냈다. 왜 살이 빼고 싶은지에 대해서 엄마에게 설명하지도 못했다. 그저 끄덕여주고, 저녁끼니 대신 먹을 수 있는 건기식을 건네준 엄마가 고맙기만 했다. 그렇게 공부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엉망진창인 상태로 그 시간을 보냈었다.

유학을 보내달라는 내 요청에 엄마는 성적표를 들어 밀었다.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살지 않는 이상 유학은 절대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사촌오빠가 있는 영국 사우스햄튼의 어학연수 코스를 다 준비하고서도 가지 못했던 것은 대학 성적 때문이었다. 남편이 아이에게 하는 말과 정확히 동일한 말을 엄마는 스무 살의 내게 건네었었다. 아버지와는 무슨 대화를 했을까? 대화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엄마는 아빠와 나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지 조차 않았을 것이다. 휴학을 하고 약국 전산화업무를 도왔었다. 휴학을 하고 CPA 학원에 가서 매일 잠을 잤다. 종로에 있는 학원까지 광역버스를 타고 가 씨앗호떡을 사 먹고 조계사를 구경했다. 수업시간엔 실컷 잠을 잤다. 회계사가 되려고 휴학을 한다고 엄마에게 말해뒀으니 학원을 가기만 했다.


벌을 받는가 보다. 나는 지금 벌을 받고 있나 보다. 인과응보라는 부정적인 생각만 자꾸 혼자인 나를 찾아온다. 남편에게 아이 문제를 이야기하면 두려움에 빠진 남편이 어쩔 줄 몰라 아이를 윽박지르고 소리를 지르니, 엄마처럼 나도 고민을 나눌 상대가 사라져 버렸다. 오롯이 전적으로 혼자 짊어지고 가는 벌이다. 혼자 벌을 받으려니 외롭다 싶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바라보다 눈물이 솟아나고, 스크린 앞에서 매출 집게를 하다 울음이 터진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아이의 성적표가 떠오른다.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아이가 동년배의 다른 아이들로부터 한참을 떨어져 나가 늙고 힘 빠져가는 내 옆에서 내내 지내는 잉여인간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꿈을 꾼다. 꿈속엔 서른의 아들이 나타난다. 사발면이 나뒹구는 방구석에서 PC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 아이가 보인다. 그건 아이가 아니라 나다. 경영학과 전공 점수는 모두 바닥을 치고, 디자이너든 예술이든 하고 싶은 꿈은 응원받지 못한 채, 부랴부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100개의 원서를 쓰는 내가 그곳에 앉아있다. 그 방에서 나 혼자 걸어 나왔지만, 도망치듯 회사를 뛰쳐나온 바로 나.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내가 꿈속에 있다. 똑같은 실수를, 아프고 외로웠던 시간을 부디 아이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답을 알 수 없다. 한 번 살아본지라, 부모는 처음인지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서 발만 동동 구른다.

아이는 내가 아니다. 남편은 내 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친정엄마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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