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부부 동성제
어제 주문한 '쿠*'와 '마켓 컬*'가 집 앞에 놓여있다. 폰트 38은 됨직한 이름 석자가 선명한 송장이 상자에 붙어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다. 이름과 주소가 보이지 않게 택배 용지를 잘게 찢는다. 택배 상자에 붙은 스티커 송장을 띠어내어 끈끈한 부분이 밖으로 향하게 말아 모은다.
독일을 가기 전에도 이렇게 했을까? 개인 정보에 대한 예민함은 독일을 갔다 오고 나니 날이 서있다. 서구인들과 지내기 전의 나에게도 이런 점이 없진 않았다. 예를 들면 한창 유행이던 카카오 스토리나 카카오 대문 창에 얼굴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가족, 또는 사는 곳, 다니는 유치원이나 회사 등의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은 올리지 않았었다. 돌이켜보니 서구형 사고가 자리 잡고 있었던 면이 없지 않다.
독일은 우편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DHL 도이치 포스트 Deutsche Post를 택배회사로 알지만, 도이치 포스트는 독일의 우정국이다. 독일에서 살다 보면 DHL아저씨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공문서들, 예를 들면 돈을 받아낼 예정인 청구서, 계약서, 영수증을 배달해주기에, 우리 집을 방문하는 이들의 우선순위 중 감히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독일 아마존에 가입하고 아마존 프라임을 사용하면서 아이들은 아마존 아저씨만 기다렸다. 아마존 아저씨는 소비의 즐거움을 배달해주었다면, DHL 아저씨는 독일에서의 생존을 배달해주었다.
이런 배달에서 중요한 점은 주소라 하겠다. 한국의 도로명 주소와 같이, 도로명과 번지수, 그리고 Family 네임이면 배달지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집은 보눙, 공동주택이기에 주택의 현관에 여덟 개의 우편함이 있다. 이 우편함은 각종 서류와 전단 뭉치, 그리고 아마존의 책 한 권 상자 정도가 들어간다. 각 우편함 밑에는 이름을 명시할 수 있는 명패가 있다. 가로가 긴, 직사각형의 투명 플라스틱 바를 손톱으로 띠어내고 바 사이즈에 맞춰 종이에 남편의 성, '김'을 쓴다. 명패 완성이다. Family name 이면 주소 확인이 가능한 독일이다. 부부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서구이기에 가족의 성만 표기하고, 개인 이름을 써두지 않음으로써 개인 정보를 보호하려 한다.
그리하여 나는 성이 변하고 , 이름이 없다. Frau Kim. 이것이 공식적인 나에 대한 명칭이다. 우리말로는 김 씨 부인이다. 서양은 부부 동성제가 법으로 강제되어있지 않지만, 현실은 다르다. 미국의 해리스 부통령이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첫 여성 지도자이며, 독일의 메르켈 총리의 메르켈은 심지어 전남편의 성이다. 메르켈 총리는 전남편의 성에서 현 남편의 성으로 전환하지 않은 것도 속사정이 궁금한 일이다. 여전히 서양인들은 부부가 같은 성을 사용함으로써 가정이라는 묶음을 짓는다. 나를 프라우 김이라 부르기에 나는 프라우 김이 아니고 나의 본디 성인 프라우 박이라고 부르라 한다면, 말은 안 해도 그들은 나를 페미니스트로 보거나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가 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프라우 김을 받아들이다. 명패에는 김 씨 가족이 존재한다. DHL 아저씨는 도로명, 번지수 그리고 김 씨를 찾아 문서를 배달한다. 그러니 독일 생존에 불가결한 공문서들 중에서 나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다.
새로 이사 온 아랫집 새댁의 남편이 김 씨였다. 그들이 이사 오고 명패는 김 패밀리로 바뀌었다. 내 이름을 찾을 때가 온 것이다. 새댁도 아마존을 사용했다. 새댁의 즐거운 택배가 우리 집에 배달 오고, 아이들이 목 빼고 기다리는 우리 집 택배는 새댁의 집에 배달되었다. 우편함 문서는 이름, 성 순으로 쓰여있으니 봉투에 새댁 남편의 성을 확인하고 새댁 집 우편함에 넣어주면 그만이었지만 택배는 그렇지 않았다. 상자를 교환하며 무엇을 주문했는지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은 적도 있었다. 주문이 많은 주에는 요새 과소비하는군 생각하기도 했다. 마침 우리의 보눙에는 박 씨가 없다. 명패를 손톱으로 띠어내고 이름을 바꿔 붙였다. 김과 박. 그리하여 아마존은 프라임의 여왕인 나의 Famliy name으로 나의 욕망들을 배달해주었다.
개인정보를 감추기 좋아하던 축에 속했던 나보다 독일은 엄하다. 그렇게 독일의 삶 속에서 감춰지다 사라져 버린 것이 나의 이름이었다. 아마존 덕에 사이 안 좋은 부부, 또는 동거 부부와 같은 보기 드문 극 페미니스트로 보인데도 찾고 싶었다. 내 이름. 왠지 모르게 불리고 싶었다. 나의 성. 남편 덕에 유럽에 와 신나게 아마존이나 시키면서 사는 주재원 사모님이 아니고 싶었다. 프라우 김이 싫었다. 치열하게 하루씩 살았던 유럽에서의 삶은 프라우 김이 산 것이 아닐 호박씨가 살은 것이다. 5년의 시간이 프라우 김의 것으로 남고 싶지 않다.
택배 상자의 스티커 띠는 일은 귀찮기 짝이 없다. 확진자 수가 늘면 새벽 배송도 늘고, 택배도 늘어 재활용 분리할 상자가 가득한 날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은 신나게 스티커를 띠고 이름 석자가 적힌 송장을 찢어댄다. 이름을 찾은 자가 흥겨움에 취했기 때문이다.
P.S 호박씨 남편은 김씨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인의 성씨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김씨를 빌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