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주방에서 치즈케이크 조각을 한 입 먹어본다. 한 조각이 혼자서 다 끝내기에도 적은 양이 아니구나 싶다. 카페에 가도 남편과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서 시키고 남은 것을 먹는 것이 몸에 베였구나. 오롯이 한 명에게 주어진 접시가 흐뭇하다. 이 조각 케이크가 아지트가 된다.
아지트란 agitpunkt 사회주의 비밀 조직의 모임을 뜻하는 러시아어다. 이 러시아 말속에는 독일어가 담겨 있다. Punkt, 우리말로는 점이다. 바 형태의 간이주점이나 담배가게도 파는 스탠드형 커피가게를 독일에서는 Punkt라 부른다. 즐겨 머무르고자 하는 곳에 점을 찍는다. 계속해서 점을 찍다 보면 가는 선이 생긴다. 자취가 생기는 것이다.
독일서 아이들의 미술 선생님은 한국화를 그리는 한국분이셨다. 그녀를 오랫동안 봤지만, 어떻게 해서 독일에 오게 되었는지, 얼마나 독일에 있었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 그녀는 아티스트로써의 여정을 말해주었고, 그 이상의 정보를 물은 적은 없다. 독일에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그녀와는 친구임에도 말이다.
한국화가 프린팅 된 머그컵과 컵받침이 한인 성당에서 팔리고 있었다. 한인 성당에 열심히이던 지인이 국제 학교 선생님에게 선물 주기 좋았다며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알려주었다.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그린 채색화가 프린팅 되어있는 머그컵들을 본 순간 한국이 묻어났다. 흐린 독일 날씨를 걷어내고도 남을 만큼 선명한 노란색의 나비와 푸른 모란에 눈이 시원해졌다. DM으로 5개 정도 주문을 하고 그녀의 공방으로 가지러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녀의 공방은 Riedberg라고 부르는 프랑크푸르트 시의 신도시에 위치했다. 5층짜리 새 아파트들이 블록으로 늘어선 지역은 한눈에도 깔끔해 보였다. 공방으로 가는 동네 길에 아시안도 눈에 띄었다. 후에 알고 보니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동네로 소문난 뉴타운 지역이었다. 차이나 머니를 쥔 중국인들의 주거주지 였고, 새로이 발령 난 해외 주재원들도 선호하는 지역이었다.
그녀가 알려준 공방 주소에 도착하니 라이엔 하우스, 공동주택이었다. 벨을 누르니 그녀가 나에게 들어오라고 한다. 공방은 그녀의 집이었다. 거실에는 그녀의 캔버스와 화구들이 한편 가득 있었다. 작은 거실은 그녀의 그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주문한 것만 건네주면 될 터인데 구역 그녀는 나에게 차를 권하며 작품들을 그리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준다. 암투병 후의 소회를 그린 나비를 보여주며, 창작 과정을 말해주었다. 독일인들은 스토리를 통해 의미 부여해주면 감동을 느낀다며 선물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작품을 받을 국제 학교 선생님들에게 그녀의 창작 과정과 투병에 관한 이야기를 해줘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좋아한다.
첫 만남에서 그렇게 문을 열어준 그녀가 내겐 문화 충격이었다. 처음 만난 나에게 집을 공개하고, 지난 사연을 이야기해주는 그녀의 대담함이 좋았다. 따뜻함도 좋았다. 단단해 보이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녀는 나와는 다르게 꿈을 일궈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남의 나라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나비 같은 그녀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겠다고 성당에 다닐 수도 없고, 계속 그녀의 작품을 사들이는 것도 어색해 그녀와의 만남은 거기서 끝인가 보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연락을 해왔다. 한국화 수업을 열 계획이니 국제학교 엄마들에게 홍보를 해달라고 했다. 수업을 등록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두려웠다. 막상 아트 수업을 시작했는데 과거 그림 좀 그렸다던 재능이 착각이면 어떡하지? 아트를 좋아하는 것과 아트를 잘 해내는 것은 다른 일이잖아? 자기 검열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그리곤 뒷걸음질 쳐 엄마라는 직업 뒤에 숨어버렸다. 그녀에게 연락을 해 아이들 수업도 하냐고 물은 것이다. 나 대신에 아이들의 수업을 신청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선택했다. 수업료를 내고, 아이들의 라이드로 시간을 보냄으로써 접점이라고 만들고 싶었다. 그녀의 공방은 설레던 10대의 내 꿈과의 Punkt, 만남이었다.
그녀가 미술 전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2년쯤 후에 알게 되었다. 한인들 사이에서 그녀가 하는 수업이 소문인 나면서 첫 학생이었던 아이들의 후기를 묻던 국제학교 엄마가 말해주었다.
" 그분 전공이 미술은 아니시라면서요? "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끊임없이 작품을 그리고, 작품들을 아이템으로 재생산해내는 그녀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아티스트라 부를 수 없는 건지 궁금하다.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논하는 것 또한 의문이다.
그녀와의 한국화 수업에 대한 의미는 이러했다. 아티스트의 정의가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 아이들에게 엄마 말고 이야기 들어줄 사람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한국어로 한국사람에게 외국 살 이하면서 힘든 이야기 하고 싶잖아요. 엄마가 들으면 마음 아픈 이야기도 남에게 하면 그 이야기도 해프닝으로 지나가지잖아요. 어른만큼이나 아이들도 힘들 테니까요."
아이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국제 학교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수업이 1시간 30분이었는데 아이들은 마무리하는데 시간을 소요하곤 했고, 2시간 정도는 필요했다. 그녀의 집에서 기다리기엔 수업의 감시자 같아 싫었다. 애써 마련한 자리인 만큼 내가 빠져야 의미가 살아날 것 같아 아이들을 공방에 내려다 주자 마자 Riedberg zentrum 리드베어그 시내로 걸어갔다. 그녀의 집에서 5분 거리에는 한국 상가 건물과 똑같이 생긴 현대식 쇼핑센터가 있다. Rewe, Aldi 슈퍼와 옷가게, 문방구, 서점, 아이스크림가게, 이태리 음식점, 미용실이 한 건물에 있다. 거기에 독일서는 보기 드문 주상 복합이라 상가 위층인 2층부터는 실내주차장을 겸비한 아파트 건물이었다. 100년 넘은 돌바닥이 깔린 올드타운의 읍내 상가들과 비교하면 여긴 한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구성이었다.
거기에 내 아지트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는 괴테의 생가가 있고 괴테가 가던 카페가 있다. 괴테가 즐겨 찾던 그 Wacker's Kaffe의 분점임 리드베어그 쇼핑센터 안에 있다. 괴테 커피라는 것도 좋고, 카페 안 가득한 원두 진열대도 좋다. 국제학교 바로 앞의 나의 집, 국제학교 코 앞 카페는 미국 LA 한인 타운 같다. 집 현관문을 나서면 아는 얼굴이다. 카페에 가면 아는 사이는 아니어도, 얼굴은 익은 한인과 국제학교 학부모들이 가득이다. 그런 동네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이 카페는 그야말로 독일 독일 하다. 매주 가다 보니 뭐를 먹으면 입맛에 맞는지도 파악이 된다. 리드베어그 동네 주민에겐 동네 카페지만, 나에겐 독일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호젓함이다.
아이들은 공방에서 한국어로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혼자 민트 생강차 한잔을 시킨다. 하루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생각했다.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한인 타운 같은 동네 밖에 나와 생각하는 1시간이 그야말로 생각의 아지트였다. 아지트로 찜을 하고는 고이 점을 찍어가고 있었다. Punkt는 그렇게 진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지트가 발각되는 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