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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Dec 27. 2021

독일에 아지트 하나쯤 갖고 싶다 #2

독일 카페는 좌석이 10개가 넘어도 웨이터가 한 명이다. 파인 다이닝이 아니고서야 카페든 레스토랑이든 서빙하는 사람이 2명인 곳은 보기 드물다. 인건비가 비싼 탓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기다림도 잘하는 독일인들이라서 웨이터가 적은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웨이터가 한 명인 것보다 신기한 것은 기다림에 특기가 있는 독일인들이다. 물 한잔을 달라고 할라치면 홀을 종종거리며 홀로 서빙하는 웨이터가 보인다. 아이에게 기다리라고 하고 웨이터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린다. 흔히 독일인들은 눈 마주치길 기다려 자연스럽게 웨이터의 서비스를 잘 받아내는데, 내겐 웨이터 부르기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첫 주문할 때에 만반의 준비를 하여 한 번만 웨이터를 부를 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본다. 아이들이 포크라도 떨어뜨리면, 아이들을 덜어줄 앞접시 달라고 하길 깜박하면, 식어가는 음식을 아쉬워하며 하릴없이 웨이터를 기다려야 한다. 

계산은 더 골치다. 계산을 해 달라고 하면 웨이터는 카운터에서 계산서를  끊어서 자리로 가져온다. 팁과 음식 값에 대한 현금을 주면  거스름돈을 가지러 다시 카운터로 간다. 잔돈을 가지고 오면 그것으로 계산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저녁 식사라면, 코스요리라면 그나마 기다릴만하겠지만, 커피 한잔에 크루아상 하나를 곁들인 브런치라면  웨이터 기다리는 일이 성질 급한 한국인에겐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또한 독일인들만 아는 눈 마주치기의 비방이라도 있는 것인지, 나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아 유독 길게만 느껴지는 웨이터 부르기는 불편한 일이다. 


독일 산지 10년이 넘은 나의 바느질 선생님 (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후에 자세히)과 읍내에서 브런치를 했다. 독일 도착 3개월 차였다. 그녀는 내게  동네 생활을 차근히 보여줄 생각으로 읍내 중심을 선택했다.  동네 독일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수업과 같은 만남이었다. 그녀에게 음식 주문법, 메뉴 보는 법을 듣고 나니 하늘이 맑아 보였다. 좋아. 굶어 죽진 않겠구먼. 메뉴판도 읽을 수 있고, 주문도 할 수 있다. 카페 돌아가는 법도 얼추 알았으니 다른 데도 비슷하겠거니. 2.3유로짜리 커피 한잔 ein Kaffe를 마셨다면 3유로 정도를 테이블에 두고 웨이터와 눈을 마주친 뒤 계산 여기 해뒀어라고 말해주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안 그래도 웨이터도 바쁘니 내가 마신 카푸치노 한잔 값 정도는 가볍게 치르고 나가면 되는구나. 웨이터 부르기에 소질이 없는 나에겐 꿀팁이었다. 


바커스 카페를 매주 가니 웨이터가 눈에 익기 시작했다. 물론 웨이터 아가씨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비슷한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민트 생강차 한 사발을 들이켜고 가는 동양인을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지 않을까? 그녀는  나에게 무엇을 주문하겠냐고 물었다. 한 번쯤은 "오늘도 민트  생강차?"라고 말 걸어주는 날을 기대하기도 했다. 

민트 생강차는 2.5유로 남짓이라  2유로 1개, 1유로 1개 이렇게 3유로어치 동전 두 개를 테이블에 남겨두고 멀리서 서빙하는 그녀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차 값 여기 있고, 그대를 위한 팁도 남겨두었어. '라는 긴 문장을 의미하는 미소를 장착한  눈 맞춤을 그녀와 나눈다. 유유히 히 카페를 나오면 이젠 독일 살이는 껌이야 라며 으쓱해했다. 원하는 메뉴가 있고, 내가 항상 앉는 자리가 있고, 눈에 익은 웨이터 아가씨가 있는 바커스가 나에게 말한다. 

" 유럽 좀 살아봤구나? 아지트도 있고." 

그렇게 소중한 공간에서 혼자여도 좋은, 혼자라서 기쁜 시간을 만끽했다. 


그날은 작은 아이 생일 며칠 뒤라 카페에 잠시 앉았다가 쇼핑센터 안 Aldi 슈퍼에 가서 생일파티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휴대폰 메모장에 장 볼 리스트를 작성하며 차를 마셨다. 동전을 쥐고 웨이터 아가씨를 찾아보았다. 반대편 카페 끝에서 써빙을 하고 있다. 오늘은 그녀와 눈 맞춤은 못하겠군. 2유로가 조금 넘는 차값은 외우고 있지만, 혹시 누가 알겠는가? 지난주에 민트 생강차만 가격 인상을 했을는지. 그러니, 메뉴판을 다시 확인한다. 민트 생강차 2.3유로. 테이블 위에 동전 두 개를 두고 카페를 나섰다. 카페와 슈퍼는 마주 보고 있다. 슈퍼 앞 카트에 동전을 넣고 있었다. 

" 이봐."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있음 직한 키에 직원용 에이프런을 두른 여자가 나를 쳐다보며 다가온다.

" 계산하고 가야지." 

아. 처음 보는 이 사람 또한 바커스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인가 보다. 목소리 톤이 높고 눈은 부릅뜨고 있다. 

" 팁까지 포함해서 테이블에 남겨두고 나왔어." 

" 난 못 봤는데." 

" 그래? 거기 두고 왔어." 

이 알바생의 감정 파도는 이쯤에서 치기 시작한다. 내가 우리 돈 3천 원 정도의 생강차를 계산하지 않고 줄행랑을 쳤어야 그녀의 소리 지름과 허리춤에 붙은 손은 옳은 일이 될 텐데. 불행히도 오늘 그녀는 옳기는 힘들겠다. 그녀가 소리지른 대상은 차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왔으니 말이다. 

" Normal 한 행동이 아니야. 네가 한 행동은."

내가 한 행동이 정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그녀의 판단을 듣고 싶지 않다. 정상이 아녔다고 해도 계산은 했으니 소리는 이쯤에서 낮춰야 정상 아닌가? 한국말로 직역하자면 나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다는 말이겠다. 쇼핑센터 안 가운데에서 나를 세워두고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진정시키는 것이 먼저일 텐데, 사실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과는 하자. 

"미안해. 근데 나는 전에도 그렇게 내가 마신 커피 값을 테이블에 두고 왔었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매주 이 카페를 온 지 2년 여가 다 돼가니 계속 해오던 행동인 것은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바커스 카페가 정겹고 익숙한 곳이라는 말이었다. 나에겐 정다운 공간이니 바커스 가게의 일부인 그녀가 나에게 소리 지르는 지금 이 순간은 꿈이었으면 좋겠다.


" 내가 저 카페 매니저야. 넌 누구한테 그런 식으로 계산을 했어? 그건 Normal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 그만 가르쳐! Stop teaching me like that!"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소리 질러본 날이었다. 한국에서도 누구랑 집 밖에서 말싸움해본 적은 없는 마흔 살이었는데 말이다. 넌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가 아지트의 매니저구나. 매니저는 내가 단골인지 알리가 없구나.

소리를 지르고 등을 돌려 카트를 밀고 알디 슈퍼 안으로 들어왔다. 카트를 미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엇을 사야 하는지 머릿속이 하얘져서 카트를 밀고 슈퍼를 한 바퀴 돌았다. 아까보다 천천히 걸으며 카페에서 적어둔 메모장을 꺼내 딸아이의 생일 장보기를 했다. 계산을 마치고 슈퍼 카운터 직원에게 Danke 고맙다고 독일어로 말하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독일에 아지트를 만들어보겠다던 야무진 꿈이 사라진 날이었다. 돌이켜 보면 리드베어그는 동양인이 많았다. 샤넬백을 둘러 매고 쇼핑하는 중국인은 쇼핑센터 안 어디든 있었다. 카페 매니저에게 그날의 나란 카페 매너를 모르는 여러 동양인 중에 한 명이였겠다. 바커스가 일터인 그녀보다 카페에 대한 애정은 내가 더 컸을 터인데 그녀에게 직접 말하지 못해서 아쉽다.  한 때는 내겐 아지트였던 그곳을 방문하는, 매너가 부족하고 이해 안 되는 손님에게 소리는 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녕, 바커스. 그 후론 다신 가지 않았다. 아이들의 한국화 수업은 계속되었기에 쇼핑센터로 걸어가 장을 보고 내 차로 돌아와 라디오를 듣거나, 메모를 했다. 그날 아무렇지도 않게 놓은 민트 생강차 값 때문에 아지트를 잃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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