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 식구들과 호압사에 올랐다. 서양식으로 새해인사를 하려면 사진이 필요하다. 산에 올라 가족 넷이 정다워 보이게끔 서 사진을 찍는다. 가족사진과 함께 Happy new year 인사를 보내면 된다. What's app으로 외국인 친구들 6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구 반대편의 독일, 스페인, 영국에 있는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랐다. 2021년에는 꼭 만나자는 바람도 문장 속에 눌러 담았다. 모두에게도 사진과 함께 답이 왔다.
2022.1.1 아들이 밤새워 국제학교 친구들과 온라인을 하고 있다. 스페인으로 돌아간 데이비드가 잠시 독일로 놀러 가 2019년과 같이 뭉쳐 슬립오버, 밤새 놀고 함께 자는 날이랜다. 낮에 내내 집에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서 산책도 가고, 서점도 데려갔다. 아들은 나도 비행기 타고 슬립오버 sleepover 하러 가고 싶단 말을 하는 초딩이 더 이상 아니다. 애들 다 모였다는데 한마디를 하고는 말을 마치고 눈길을 돌리는 아들은 코로나 철이 들어 버린 중학생이다.
밤새 그 아이들과 게임을 하도록 해주고 나니 위안이 되었다. 게임하는 아이 옆에서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1년 전이었으면 그들에게 영어로 문자 보내기 바빴을 텐데 싶어 왓츠앱을 열어본다. 이전에 왔던 스팸 문자들만 쌓여있다. 섹시한 프로필 사진과 함께 한국사람이냐고 묻는 식의 자극적인 스팸이 대부분이다.
2019년 겨울 독일을 떠나면서, 다음 해 여름휴가를 보내러 유럽으로 다시 오겠다 마음먹었다. 한국에 와 본 적 없는 미국인 친구에게 대만인 맨디와 함께 놀러 오라고도 신신당부를 했다. 맨디는 한국에 와본 적도 있었고, 거듭 한국에서 재밌었다고 이야기도 했었다. 맨디를 믿고 함께 오면 좋겠다고 했다. ( 대만의 메이링 미국의 맨디 (brunch.co.kr)의 맨디다.)
트랭은 한국은 핵을 가진 북한이 인접해 있어 한국 가기 두렵다 했다. 트랭에게 찬찬히 설명해주었다.
" 유럽이 IS 때문에 시끄러워서, 한국의 내 부모님들은 내가 테러와 함께 사는 줄로만 아셔. 근데 사실은 아니잖아. 우리 테러에 둘러싸여 사나? 뉴스로 세상을 다 알긴 힘들어. "
한국 오면 북한에서 멀리 떨어진 쪽에서만 만나면 된다는 농담 반쯤 섞인 계획을 나누었다.
그리움이 흐려진다.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은 옅어지고, 기억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만남이 적은 2년이었지만, 혼자서라도 또는 몇 되지 않는 가족하고의 시간으로 삶이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다. 묵묵히 삶을 살고 있을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느낀다. 지구 어딘가에서 울고 웃고 먹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느낄 수 있다. 어제 떠나온 듯, 연락해서 지금 비행기 타니 14시간쯤 후에 커피 한 잔 하자고 whats app 보낼 수 있는 인연들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새해는 1년 중 1번 폭죽놀이를 할 수 있는 날이다. 공식적으로 큰 소리를 내도 되는 날이 정해져 있는 이유는 다른 날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낮잠시간이라고 해서, 주변 이웃에서 소음이 되는 청소기 돌리기는 의례적으로 하지 않는 시간이 존재하는 나라다. 1년을 기다려 한번 하는 행사를 코로나 때문에 폭죽을 팔지도, 폭죽놀이를 하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사제 폭죽으로 여기저기서 사고가 낫다는 뉴스가 한국까지 날아왔다.
폭죽을 만들어 가기까지 하며 폭죽놀이에 진심이냐고 묻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다. 모범생으로 법과 규칙, 예의를 지켜가며 사는 독일인들에게 일탈은 숨 쉴 틈이다. 그 틈을 틀어막으면 더한 일탈이라도 해야 영혼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말 잘 듣는 한국인들은 티 안 나게, 소리 없이 이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태연한 척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너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싶다. 오지 않는 메시지를 기다리며 먼저 메시지를 보내볼까 하고 고민하고 망설이길 반복한다. 우는 소리든 웃는 소리든 밖으로 내지르는 것이 어색한 한국사람이 왜 아니겠는가?
유럽에 마스크가 동났다는 소식에 어떻게든 마스크를 보내주고 싶어 왓츠앱 문자를 쏟아 보냈다. 도와줄 수 있는 것,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냉큼 오지랖을 떤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냉큼 연락했다.
먼저 문자를 보내봐야겠다 싶어 앱을 열었다 닫았다. 연락해본들 나눌 대화는 뻔하다. 말 없음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자 싶다. 연락하지 않음으로써 '너도 힘들지. 나도 힘들어.'를 알려본다. 좋은 일 있을 때, 퍼줄 일 있을 때만 전화하고 싶다. 새해에는 챙겨줄 일만 잔뜩 생겼으면 좋겠다. 매일 연락하게 말이다. 2021년 같은 해도 있었으니, 정반대의 한해도 받을만하지 않나? 살아남은 자, 우리 모두에겐 그럴 자격이 있다.
호박씨 표 자격증 발부해본다. 줄 서시길. 희망 새해 자격증을 마구잡이로 찍어내 본다.
지금은 혼자 드라마 보며 찍어내고 있지만, 내년엔 메시지로 오지랖 떨며 모두와 함께 찍어내었으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