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발급과 주재원 등급
- 주재원도 등급이 있나요?
2014년 11월, 주재원 발령이 나자마자 남편은 프랑크푸르트 법인으로 출장을 나간다. 가장 급한 것이 비자 신청과 국제학교 지원 때문이다. 남편의 비자가 법인의 근로자에게 발급되는 취업비자인 까닭에 동반 가족인 나의 경제 활동은 독일 외국인법상 금지다. 이 비자의 종류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주재원 내부 규약인데 파견 동반 가족, 배우자의 취업이나 경제 활동은 회사가 허락하지 않는다.
독일 외국인청이 블루카드라 불리는 이공계 고급인력을 위한 비자를 발급해주는 경우도 있다. 파견으로 비자 신청을 했는데 조건이 맞아 블루카드가 발급된 경우, 주재원들 사이에선 부러움을 산다. 블루카드면 독일 법상으로는 배우자가 일할 수도 있고, 인터그라찌온이라 해서 공짜 독일어 연수도 받을 수 있다. 블루카드야 말로 꿀비자인데 뼛속까지 문과이고 담당은 해외영업인 남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블루카드를 받았다고 남편 따라 나와서 대 놓고 일하는 와이프는 단 한 명도 없다. 주재원 내부 규정 때문이다.
주재원 와이프들은 반쯤 강제적으로 경력단절들이다. 사내 규정이 서로 비슷하다 보니 사정이야 뻔히 들 안다. 그러면 이 주재원 부인들의 공동체에는 모종의 연대감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동질감 물론 있다. 기대하였듯이 이 공동체 속에서 내 눈물과 웃음을 함께 한 이들을 만났으니까. 이야기가 이렇게 해피 엔딩이기만 하다면 나의 글은 나오지 못했겠지.
Y는 독일 유치원을 3년이나 다니다 국제학교로 들어왔다고 했다. 딸아이는 1월부터 국제학교를 매일 울며 다녔고,드디어 새 학년 8월이 시작되었으니 딸아이도 이젠 국제학교 좀 다닌 듯이 안정화되어 가는 거겠지 여기고 싶었다. Homeroom 담임 선생님인 Ms. Koppe 가 딸에게 네가 Y를 좀 도와주겠니 했을 때는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아직은 아기티가 나는 다섯살 딸아이의 얼굴이 빛났다. 비록 반년이란 짧은 시간이였지만 귀도 입도 트였고, 나도 이젠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야 하는 뿌듯함은 아이 얼굴 가득히였다.
그때 Y 엄마의 표정을 봤었더라면, 아마 나는 훨씬 더 준비된 대응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순진한 나는 딸아이를 보고 기쁨에 겨워 Y엄마의 성향 따위는 파악하고 싶지도 않았다.
" 우리 Y는 독일 선생님들이 모범 케이스라고 칭찬이 자자했어요. 이 독일 유치원을 빛내는 아이라고요."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아이들을 잠시 교실에 두고 카페테리아에 앉자마자 묻지도 않은 Y의 독일 유치원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정말 여자 속을 1도 모르는 곰도 이런 곰이 바로 나란 여자다.
주재원들의 복지와 학비지원 정도는 회사에 따라 항목과 정도에 차이가 있다. 남편의 회사는 학비 지원을 잘해줬고, 어떤 회사는 의료보험 지원이 좋았고, 다른 회사는 간단하게 월급을 많이 줬다. 그러나 학교에서 주재원 와이프들을 만나면, 그 집은 학비 지원이 잘 돼서 학교 부속 유치원부터 다니니 너네 회사가 최고야라고 했다.
수박을 삼각뿔 조각을 내어 테스트를 하면 그 수박의 전부를 알 수 있는가? 삼각 조각의 맛보기로 그 수박은 1% 착오도 없이 무조건 맛 좋은 것인가? 커도 너무 커서 속을 알 수 없는 터키 수박 같은 이 주재원 생활에 대한 이런 단순 명료한 평가를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하필이면 그 때가 딸아이의 부속 유치원 시절이였으며, 그 시간들은 딸아이의 울음과 긴긴 부적응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말이다.
이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한 학년 내내 Y의 엄마가 이룩하고자 했던, 나와 그녀의 다름을 증명하기 위한 말과 행동들을 말이다.
" 남편분 회사 다녔잖아요. 저. 임신 때부터 해서 육아까지 정말 편하게 다녔어요. 배려해주는 회사예요. 그 회사. 좋은 회사 다니시네."
그런가요? 난 잘 모르겠는데. 난 독박 육아에 절어 살다 한국 왔는데, 그대는 배려받으며 회사 다니셨다니....
겨울방학이라 한국에 갔다 온다는 그녀가 혹시 필요한 책이 있으면 자기가 가져다주겠다며 책을 배달시킬 주소를 적어준다. 친절하다. 마침 그녀가 적어준 주소가 나의 친정과 무척 가깝다.
" 아, 여기 사셨었어요? 반갑다."
" 아니요. 저는 동부 이촌동 토박이라고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그 주소는 저희 시댁 주소예요. 전 거기 가본적도 없어요. 전 동부 이촌동 살았어요."
그런가요? 동부 이촌동은 제가 물은 것은 아닙니다. 그대가 연거푸 알려주신 것이죠.
독일 오기 전 살던 동네 이름을 주재 내내 나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서울에서 애들 키우기 좋다는 그런 반듯 깔끔한 동네가 아니라 결혼 당시의 자금이 가능한 곳으로 신혼집을 구했다. 남편과 나의 일터 딱 가운데, 둘 다 출퇴근하기 1시간이 안 되는 동네 중에서 자금이 맞는 곳은 그곳뿐이었으니까 거기에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도 그곳에서 키웠다.
주재기간 동안 어디서 살다 왔냐는 질문은 계속 받았고, 내가 동네 이름을 답하면 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흔히 나오는 답으로는 ' 동탄, 목동, 분당, 일산, 용인' 이 많아 같은 동네에서 왔다고 하면 서로들 대화 트기도 편했을 것이다. 처음 듣는 동네가 나왔으니 물은 이도 답이 없었겠지. 서울은 동네 이름이 나오면 전셋값이 뻔히 다 나오니 분류하고 차별하기에 동네 이름은 딱 좋은 기준이겠다.
그녀는 나와 다른 점이 많았다. 대기업 워킹맘이었고, 시아버님이 한의대 교수였고, 남편이 스윗 했다. 다 그녀가 말해준 것들이었다. 그녀는 나에 대해서 뭐를 알고 있었을까? 새 학년이 시작되고 딸아이는 다시 아침에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겨우 교실에 집어넣고 나면 학교 첫날처럼 아이가 나를 찾을까 싶어서 좌불안석 교실 앞 카페테리아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내 건너편에 앉아 본인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없었나 보다. 그녀도. 한국사람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한국 사람은커녕 아시안도 한 명 없는 독일 유치원에서 씩씩하게 지낸 그녀는 아이를 위해 독일어까지 유창하게 마스터한 그런 멋진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녀와 대화를 나눌 사람은 없었겠지. 어느 독일인을 붙잡고 집안 자랑과 나의 과거 경력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Y의 엄마 입에선 나왔던 난 너와 달라라는 주제의 말들은 사실 Y엄마 자신에게 한 말들이었나 보다. 주재원 와이프들은 사실 다 같다. 회사 규정도 비슷비슷하니 서로 사정이 어떻겠다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국제 학교 선택권이 많지 않고 커리큘럼이 비슷하니 아이들 상황도 서로 이해하기 좋다. 외롭게 지낸 시간들을 보상받기 위해 목놓아 부르짖은 Y 엄마의 고생도 후에 차차 나 또한 어김없이 그녀와 비슷하게 겪어야만 했었다. Y엄마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 처음엔 다 힘들죠. 저도 힘들었어요. 적응 기간이 길어도 언젠가는 다 적응합니다. 독일이 너무 좋아, 그리워지는 그런 날도 살다 보면 옵니다."
이 문장으로 우리는 연대할 수 있었을 텐데. 재독 주재원 와이프 연맹 같은 것 결성 가능했을 텐데. JWCA 따위의 그 연맹 가제 한번 만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