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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an 07. 2022

김몽클레어 주재원


사심 가득한 글이다. 매일 10회 이상씩 마주치는 몽클레어 때문에 짜증 난다. 교복인 양 왼쪽 팔 같은 위치에  붙은 같은 로고가 꼴 보기 싫다. 그들을 눈에서 떨쳐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한국 들어온 날부터 거듭 쓰길 망설여 오던 글이라는 점도 토로하다.


옷을 만들고 싶었다.  유명 브랜드는 모르는 것이 없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보그나 엘르의 한국판이 나오기 전이라 미국판 보그를 줄 그어 가며 보고 또 보았다. 브랜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디자이너, 그들의 뮤즈인 유명 모델 이름까지 머릿속 내장 메모리에 저장해두었다. 전월 호든 몇 년 전 것이든 가리지 않고 중고 서점에서 사다 보았다. 업데이트가 아니라 다운 데이트였음에도 잡지들은 영양가가 충분했다. 그 후에 라이선스 되었던 엘르와 보그를 보아도 눈에 파격적이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그런 시간들은 흘러가버리고, 리모컨 쥐고 침 흘리며 홈쇼핑을 보는 전업 주부가 되었다. 홈쇼핑에 나오는 옷들 조차도 사기가 팍팍한 외벌이 살림이었다. 그럼에도 쇼미 더 트렌드 같은 프로그램을 기다려 마음 설레는 시간을 갖었고 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가라앉았다. 보기만 해야지 라는 말은 티브이 옆 아이 책장 어딘가에 숨겨두고 3개월 할부 버튼을 몇 번 누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웃 데이트가 되었다. 아기 브랜드는 무엇이 좋은지 훤하고, 아동복은 뭘 사다 입혀야 하는지는 자동 반사되면서 요샌 유명 브랜드라 함은 어떤 것을 말하는지에 대해 문외한이 되어갔다.


K는 독일서 지낸 지가 3년을 넘긴 J사 주재원 와이프였다. 국제학교 유치원에 입학하고 첫 반년이 지나 새 학기가 시작되어 K를 만났다. K의 딸이 유일한 같은 반 한국 아이였고, 성별도 같은지라 잘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누군가와 못 지내는 것보다 잘 지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어차피 남의 나라 살이에는 의사소통이 되는 한국인과의 충돌이 아니라더라도 갈등은 널려있다. 이해 안 되는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야 하는 국제학교에서 마찰음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웬만하면 K 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데 이 분은 공감보다는 서열이 중요하신 것 같다. 그녀를 이해하고 싶어서 여러 가지 생각도 해보았다. 그녀가 한국에서는 워킹맘이었으니 전업주부와는 정서의 메커니즘이 다른가보다 추측해보았다. 그녀가 독일에서 지낸 지가 3년이면 독박 육아가 길었으니 심신이 피로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해보기도 했다. K를 바꾸지는 못하니 이해를 하려고 노오력 이란 것을 해봤던 것 같다.


도착해보니 주재원 공동체는 작다. 한 다리를 건너면 그 집 남편 회사 상사 댁이었고, 두 다리를 건너면 누구네 집 옆집 사는 한국인이었다. 세 다리를 건너면 얘와 쟤가 같은 반 절친이었다. 그래서 반에 한 명뿐인 한민족 하고 한민족스럽게 정 붙이면서 살갑고 싶었다.

그래서 유치원 로비 카페테리아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 학기가 되고 국제학교 유치원 건물에도 한국인이 늘어나 카페테리아 한 테이블 정도는 차지할 수 있다. 5여 명의 새내기 유치원 주재원 엄마들 중에 K는 독일 주재 3년 차에 독일어도 능하니 이야기보따리를 펼 거리도 많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그녀의 의자에 옷이 뒤집혀 걸려있다. 옷 안쪽면에 만화가 붙어있다. 거듭 이야기하여 질렸을 수도 있겠으나, 다시 말하자면 호박씨는 옷 집착자고, 패션 요정을 꿈꾸던 자다. 그녀의 옷 안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리털 패딩의 재료인 오리가 목욕하는 모습이 시원한 그림체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위트 넘치는 캐어 라벨 ( 옷 세탁법을 표기해야 하는 라벨로 모든 의류에 부착해야 한다.) 은 처음 보았다.


K가 돌아왔다. 신난 호박씨, 막 들어온 그녀에게 말한다.

"이렇게 옷 안쪽에 만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처음 봐요!"

" 몽클레어 처음 봐요? 다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처음 본다. 멋쩍어져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시선을 거두었다. 과거에 사랑했던, 그리고 접어버린 꿈에 대해 그녀에게 설명한 적은 없다. 가까워지고 싶다고 했지만, 어두운 과거는 꺼내어 보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K는 자랑이 매일이었다. 카페테리아의 아침시간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었다. 남편 집안, 본인 집안, 남편의 자상함, 아이의 의젓함 까지는 견딜만했는데, 이 포인트에선 참기 힘들었다.

" 그 집 남편 회사, 제가 한참 다녔어요. 좋은 회사예요. "

남편과 같은 그룹에서 재직했던 그녀는 딸을 낳고 기르며 회사를 다녔다고 했다. 딸을 기르면서 독일 오기 전까지 그녀가 했을 고생은 짐작이 되건만 그 부분은 꿀꺽 잘라먹고, 임신 기간 동안 받은 특별 대우에 대해 상세히 나열해준다. 호박씨 남편의 회사가 훌륭한 회사인 이유에 대한 그녀의 변辯이다.

" 상무님 특별 지시가 있었어요. 저 초과 근무 절대 시키지 말라고요. 6시 넘어서 제가 사무실에 있으면 사표 쓸 생각들 하라고 까지 팀에 일러두시더라고요. 그렇게 임산부 대우를 잘해주는 회사예요. 그 회사가."

근데, 남편은 야근이 일상이었다. 그녀가 일찍 퇴근하던 딱 그 무렵, 호박씨 남편은 야근과 회식을 번갈아 일주일을 채웠고 주말엔 1시까지 피곤함에 늦잠을 자곤 했다. 임산부였던 그리고 나선 갓난아기가 하나 딸렸던 호박씨는 혼자 집을 지키거나, 서투른 실력으로 만든 저녁을 먹거나 했다.


그녀가 쭈그러진 내 과거를 들을 마음의 준비는 안되어있었다고 위로해보자. K가 자신의 자랑을 하는 짧지 않은 말들 속에는 그녀의 팍팍했던 과거도 들어있다. 파고들 틈이 있었다면 그녀도 위로해보며 나도 이랬다며 고달픔을 토로했을 것이다.

국제학교 부설 유치원은 회사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보낼지 말지를 생각할 정도로 학비가 부담스럽다. 독일 현지 유치원은 무료다. 그러니 만 5세 이하의 자녀, 특히 유아가 있는 주재원들은 누구나 유치원에 대한 고민이 크다.

" 공짜 유치원 보내면서 아이 교육비 그렇게 아끼는 거 보면 K엄마 알뜰하신가 보네요."

그녀에겐 이 말이 그렇게 마음에 박혔나 보다. 그녀가 독일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동안 한국 엄마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했다. 국제학교 유치원 입학 첫날 다짜고짜 나에게 그녀가 말해주었기에 알게 되었다.  얼굴 본지 한 시간도 안되었는데, 본인 속상했던 이야기를 하길래 K에게 기대를 했다. 그녀에게 주재원 살이의 민낯을 나눌 수 있겠거니.


기대와는 거리가 먼 K덕분에 카페테리아에서 나오자마자 몽클레어 검색을 해본다. 몽클레어는 프랑스 알프스 자락의 동네 이름이다. 몽 Mont으로 시작하는 몽블랑, 몽셍 미셀 등은 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몽클레어를 입고  프랑스 산악인들은 K2와 알래스카 등반을 했고, 몽클레어가 속한 프랑스 그레노블 시의 동계올림픽 공식 협찬도 했다. 영하 이하로 떨어져야, 얼어 죽을 만큼 추워야 몽클레어의 진가가 발휘되지 한겨울에도 영상인 독일에서는 몽클레어는커녕 한국서 고이 가져온 모피도 못 꺼내 입게 생겼다. 몽클레어 안감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날도 영상의 독일 겨울이었으니, 그녀도 아이를 데리고 나오던 아침에야 입을만했겠으나, 2시 무렵의 픽업 시간에는 빵빵한 오리털 덕에 땀 흘리며 운전해왔을 테지.


K의 허리 통증이 심해 운전을 못하는 날이었다. K의 딸이 결석을 하니 딸이 와서 말해주었다. 전화를 하니 운전은커녕 일어나기도 힘들어 아이 등교를 못 시켜주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은 K의 남편이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켜준다기에 오후에 집에 데려다주는 것은 내가 하겠다고 했다. K의 딸과 딸아이를 태우고 Konigstein올드 타운으로 차를 몰았다. 그녀가 입이 닳도록 양반(?) 동네라, 부자 동네라 자부심을 표하던 곳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올드 타운이라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여 천천히 운전을 해갔다. 평소 그녀의 운전으로 걸리던 시간 보단 더 걸렸을 테다. 그러니 그녀의 집 앞에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고 구부정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서있다. 물론 몽클레어는 착용하지 않은 상태다. 헝클어진 머리와 운동복 바지, 그리고 꺼칠한 그녀의 얼굴이 안쓰럽다. 출산을 하고 허리 통증이 계속되었던 호박씨라, 독일에서도 하루도 안 빼고 산책 겸 걷기를 했었다. 그녀에게 공감을 표시하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엔 그녀 얼굴이 까칠하니 K가 학교에 나올 수 있을 때 해야겠다 싶어 말을 아끼고 얼른 들어가 쉬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며칠 후 K를 카페테리아에서 만났고, 베푼 자의 반가움으로 걷기 운동과 허리 건강에 대한 오지랖을 펴려는 호박씨의  입을 K가 가로막는다.

" 그날 우리 애 데려다주던 날, 안전벨트 안 매고 왔다면서요? 우리 애가 그러던데."

아.....

버릇이다. 솔직히, 차 타기를 싫어하고 멀미가 심한 딸아이라 뒷좌석에 안전벨트 안 하고 태운다.

법을 어겼으니, 한 소리 들어 마땅하다. 부자 동네 올드타운 구경 하루 갔다 온 셈 치자 한다. 오지랖과 공감의 대화는 그녀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K와 친하고 싶었다. 국제학교 유치원에서 한인은 셀 수 있을 정도로 적다. 그러니 등 지고 지내기 보다야, 살갑게 지내고 싶다.


K 씨, 아니 김몽클레어 씨, 잘 지내시나요? 2022 한국서 가장 핫한 패딩이 하필 몽클레어여서 호박씨는 김몽클레어씨를 잊지 않고 매일 떠올립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10번도 더 떠올려요. K 씨는 저에겐 인연인가 봅니다. 이리도 잊히지 않고 글로 남겨지기도 합니다. 독일에 계시든, 한국에 계시든 마음 나눌 곳 하나쯤은 갖고 계시길 빌며 호박씨가.


P.S 혹여 글을 읽을 몽클레어 관련자 분들께는 미리 사과 말씀드린다. 호박씨 글을 읽고, 몽클레어를 걸쳐 입고 나가려던 손을 거두는 독자가 발생하였다면 글을 쓰는 이로써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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