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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도 던지고, 겨울도 던지고

Fasching day

by 호박씨

봄 냄새가 난다. 올 겨울은 이렇게 봄을 향해 가나보다. 추위다운 추위도 없이, 눈 다운 눈 한번 없이 말이다. 코로나로 신음하는 우리에게 시린 추위까진 오지 않으려나보다.


독일의 봄은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햇빛 다음으로 독일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10월부터 시작하는 흐린 날씨 탓에 2월이 되면 독일인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이제 겨울 좀 그만하자 한다. Fasching을 맞이하는 그들의 애티튜드는 이러하다.

" 나 말리지 마라. 한바탕 놀아 볼 테니까. 이 놈의 겨울, 견딜 만큼 견뎠다고!"


파싱이라 읽는다. 자음이 연달아 세 개가 붙어있는 낯선 스펠링에 놀라지 마시길. 발음은 퐈씽에 가깝다.

파싱이 이름이 여럿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축제이기 때문이다. Rosenmontag 날이 파싱이라는 카니발의 정점이다. Rose Monday로 영어 해석을 하지만, 사실 장미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Roose라는 옛 독일어 사투리가 있다. 놀아 재껴버린다는 의미의 이 단어 Roose가 세월이 지나면서 rosen이 되었다. 카니발이 열리는 2월 독일에 장미가 필리가 없다.


중세부터 이 날이 되면 가면을 쓰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음식을 나눠먹곤 했는데, 중세 전에도 그러했을 것이나 그 기록이 없을 것이라 홀로 추측해본다. 파싱을 즐기며 쥐불놀이를 떠올렸다. 겨울 쫒고 봄을 그리며, 올해 농사는 잘되게끔 모든 생명들에게 이제 곧 봄이 오니 준비하라고 외쳐본다.


작은 오버 오젤 시내는 파싱을 시작으로 10월까지 연달아 매 달 축제다. 축제들을 챙겨서 1년을 지내는 것이 독일을 살아내는 방법이다. 그해의 첫 축제이기에 파싱은 동네 주민 누구도 빠지지 않는다. 소속되어 있는 클럽, 예를 들면 체육 센터나 학교, 라이온스 클럽, 주민 동호회 등에서 몇 달 전부터 어떤 테마로 퍼레이드를 준비할 것인지 고심 고심한다. 퍼레이드 카 순서와 퍼레이드 경로는 한 달 전부터 지역 신문을 채운다.


오버 오젤 시립 체육관 Gymnastics 실내 체조교실 퍼레이드카는 체육관 로고와 같은 파랑과 하양으로 꾸민다. 체조교실 학생들은 얼굴에 파랑과 하양의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반짝이는 체조 의상을 맞춰 입었다. 그들은 1시간 여의 행렬 내내 푸른 포장지의 사탕을 던져준다. 행렬 옆에선 우리는 일지감치 사탕 받기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우산을 받쳐 들고 있다. 사탕 받기엔 우산이 제격이다. 어른 우산은 심하고, 7살이던 딸아이의 뽀로로 우산 정도면 주변 독일인들도 이해해주는 수준이다. 카니발 즐기는 사람이 많은 대형 축제는 프랑크푸르트나 쾰른 등의 대도시에서 열린다. 우산 펼치기엔 민망한 대형 축제의 경우 사탕 줍기에 부지런을 떨어야 하니 담기 편한 주머니를 준비하는 편이 지혜롭겠다.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사람만 페이스페인팅에 코스튬을 입는 것은 아니다. 구경꾼들도 한껏 실력 발휘를 하여 이 날만큼은 다른 캐릭터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눈길을 끌면 끌수록 그날의 흥취가 더해진다. 아빠와 함께 온 이제 막 걷던 아기의 아래위 붙은 푸우 파자마가 취향저격이었다. IS 테러가 한창이던 2016년, 장난감 기관총이나 장총은 알아서 서로들 삼가는 분위기였다. 퍼레이드 차 중에서 일부 대포를 장착한 차도 있었는데 그 해에는 대포소리도 내지 않았었다.


파싱 데이를 오늘 아침 식탁에서 꺼내니 딸이 씩씩 댄다.

" 감자를 던지면 어쩌냐고!"

아직도 딸은 감자를 잊지 않았구나.

퍼레이드 카마다 사탕이나 젤리를 던지고 그것을 1년 내내 먹는 맛이 쏠쏠하다. 가득 채운 사탕 주머니에 가끔 엉뚱한 것도 껴있는데 그것이 감자였다.

감자 농장 협회에서 나오셨었다. 그럼 감자칩 한 봉지씩 던졌으면 좋았을 텐데, 꽤 높은 퍼레이드카 꼭대기에서부터 감자를 던진다. 보통은 구경 행렬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거 받으세요 하는 식인데, 아마 감자는 우리 딸 뒤에 서있던 누군가와 눈을 마주쳐 던졌을 것 같다. 딸이 조그마했으니, 딸 머리를 향해 날아온 감자는 딸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딸에겐 날벼락이었으나, 함께한 우리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Helau! Helau!"

사탕을 받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이 날을 위해 준비한 이들에게 추임새를 열심히 넣어주어야 한다. 퍼레이드를 향해 조그만 아이가 크게 헬라우를 외쳐댄다. 행렬과 눈이 마주치면 그들도 더 크게 헬라우를 외치며 흥에 겨워한다. 퍼레이드카에서 나오는 트롯 느낌의 독일 전통 노래보다 큰 목소리를 내려면, 딸아이는 최선을 다해서 헬라우를 소리 질러야 한다.

헬라우는 외쳐 보면, 이 말엔 별 뜻이 없겠구나 싶다. 외치다 보면 절로 흥이 나는 발성의 조합이다.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봄을 부른다. 축제의 계절이다. 이렇게 한 해가 또 시작되는구나 하던 때였다.

한국도 구정이 진짜 새해 같다. 신정은 가짜 새해 같은 느낌이 여전하다.

겨울의 한 중간인 신정보다 한 발자국 봄에 가까운 구정은 날 것이다.

같은 봄은 한 개도 없듯, 같은 시작은 한 개도 없다. 늘 날 것의 새로운 봄이 온다. 코로나 봄으로는 마지막이길 기원하는 마음에 올 구정에는 왠지 밤새 헬라우를 힘껏 외쳐보고 싶다. 감자 좀 던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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