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아니며 내게 길 묻는 것 좋아야 하지 않는다. 마흔 넘은지도 벌써 다섯 해나 지났는데 학생 소리를 들으니 글 시작하자마자 자기 자랑이 늘어진 호박씨라 여기시리라.
막상 당사자는 만만해 보이는 것이 속상하다.
오죽하면 유럽서도 내게 길을 묻겠냔 말이다.
자, 당신이 수유선 종착역인 도봉산역에 내렸다. 이마트 도봉산점 앞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네이버맵을 봐도 방향을 잡기 어렵다.
이제 당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길 물을 이를 찾는다.
1번,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장신 미인형 아가씨
2번, 키가 작고 안경을 썼으며, 안경 속 얇은 쌍꺼풀이 몇 겹이나 진 소심한 눈을 가진 학생
3번, 마블리 체형을 가진 두꺼운 목소리의 문신남
그렇다. 정답은 2번이다. 호박씨는 2번인 까닭에 길 물어보는 이가 외출 시에 발생하기가 부지기수이다.
시댁인 부산을 명절에 가는 그 잠깐에도 어김없이 내게 길을 물으신다.
" 학생, 길 쫌 물읍시데이."
학생 아니고, 부산사람도 아니지만 아는 길이라면 서울말로 안내해준다.
길 알기에 특화되어 있는 인상이기에 묻는 이가 많은 가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날도 더러 있었다.
독일 집의 위치는 도봉산역과 유사하다. 7호선 종점 장암역 내리기 전인 데다, 집과 마주 보는 기차역의 역명은 Waldlust 숲 속의 희열이다. Waldlust 역 다음 역은 Oberursel Hohemark라는 U3 호선의 종착역이다. 북한산을 오르려면 7호선을 타고 도봉산 역으로 가듯 타우누스 산지역의 꼭대기 펠트베르크에 오르려면 호마크 역을 이용해야 한다.
종착역 한 정거장 전인 발트러스트는 은방을 자매의 '마포종점'속 종점에서 오는 한 많은 종점도 '기찻길 옆 오막살이' 같은 아담함도 아닌 독일 다운 미니멀함이 있다. 기차역을 지키는 것은 매표기 한대이다. 매표기 옆에는 세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세로가 긴 직사각형 벤치가 있다. 유리 처마가 달려있는 대기용 벤치와 매표기가 역의 구성이다. 뼈가 시린 독일의 겨울을 녹일 온열 의자나, 독일어를 모르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 안내, 또는 역내 화장실 는 기대할 수 없다.
" 에데카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제 막 에데카에서 장을 보고 산책 겸 운동 겸 장바구니를 낀 나에게 그가 묻는다. 독일어로 내게 길을 물었으니 그는 독일인이겠다. 아무리 길 묻기 좋은 2번 이어도 아시안에게 독일어로 독일인이 길을 묻는다니 길 알려주기는 호박씨의 운명적 천직이란 말인가?
에데카를 묻는 독일어를 알아들었으니, 에데카 문을 열고 나온 지 10분밖에 안 지났으니 안내를 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독일어 강습 3주 차쯤에 배운 방향에 관한 독일어들을 꺼내어 그에게 알려준다. 당시 나의 독일어 실력으로 미루어 그에게 전달한 에데카 찾기의 방법은 단어였을 것이다.
" 길 따라가기. 왼쪽으로 돌아. 맞은편"
사람에게서 답을 구하는 것에 익숙해하지 않아 책에서 답을 찾고 한다. 20년 전 배낭 여행객으로써는 유럽지도책에서, 주재원으로 독일을 다시 만났을 때는 책 대신 웹과 앱에서 방향을 잡아갔다. 말이 아닌 글에서 삶의 방향을 찾곤 했다. 독일인에게 제공하는 독일 길안내는 밑지는 장사인 것만 같다.
'나만 도와줘야 하는 거야? 지구 반대편에서도?'라는 까칠함이 밀려온다.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땐, 도움 따윈 필요 없어. 글이 있다면 알아서 뭐든 잘만 해결해 나간다고.'라며 마음 뿌리를 단단하게 하려고 마음속 보리싹을 자근자근 밟았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외출했다 U3를 타고 돌아오니 5시 언저리인데 자정처럼 캄캄하다. 숲으로 둘러싸인 기차역 발드러스트에서 내려 건널목을 건너 불빛을 향하면 집이다. 기차역 쪽 옆으로 보이는 것은 조명 없이 검은 나무들과 경비실도 없는 아파트라 사람의 자취를 느끼긴 쉽지 않다.
" 기계에 200유로짜리는 안 들어가나요?"
인적 드문 종점에 한 여자가 기계 앞에 서있다. 그녀는 내게 영어로 물었다. 그녀는 관광객인가 보다. 또는 집 방향으로 1분 거리에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가 있었으니 국제학교 방문객일지도 모르겠다.
" 네. 이 기계는 50유로짜리까지만 사용 가능해요."
그녀에게서 멋진 문장이 나온다.
" 뭐 이런 멍청한 기계가 다 있데요?"
사실 해가 지면 집 건너 역 언저리는커녕 대문 밖 외출도 하지 않는 나다. 독일에서는 그리 살았다. 해가 지면 신데렐라처럼 없는 듯이 집으로 향했다. 이전 글 ' 운수 좋은 날' 같은 경험에 대해서 잊기에는 엄마 호박씨의 기억력과 걱정은 온 유럽을 덮고도 남을 만큼 강력하다.
그런데 멍청한 기계와 불친절한 독일을 알아보는 그녀에겐 없는 듯한 호박씨가 되고 싶지 않다. 지갑을 꺼냈다.
" 저에게 바꿔줄 돈이 있을 거예요. 잠시만요."
안타깝게도 지갑 속엔 130유로 정도뿐이다. 현금 쓸 일이 많은 독일이라 넉넉히 지니고 다녔지만, 시내 외출 후라 지폐가 많지 않다.
" 200유로는 없네요."
" 오케이. 알겠어요. 고마워요. 그나저나 이 기계는 참 별로네요."
" 맞아요. 길 건너에 호텔이 있는데 프런트에서 돈을 바꿔줄지도 모르겠네요. 호텔은 친절하잖아요."
무상으로 잔돈을 바꿔주지 않는 독일이다. 게다가 역 주변에는 상점도 없다. 역에서 11시 방향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이라면 돈을 바꿔줄 것이다. 집 방향으로 함께 길을 건너 호텔을 향하며 그녀는 독일 기차역에 어이없어했고, 나에게 고마워했다.
복을 짓다는 말이 있다. 상대도 호박씨처럼 '알아서 해결 좀 하지? ', '뭘 그리 사람에게 물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호박씨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 발트러스트 역에 살고 있었다. 만만해 보여서 길을 묻는다라는 피해망상에 '나는 세상에게 묻지 않으니 세상도 내게 묻지 마오'라는 식의 더하기 빼기 셈법을 지니고 있었다.
노파로 변장을 한 아테나가 아라크네를 찾아간다. 아라크네는 신을 알아보지 못했고, 깨달음도 얻지 못한 이유로 인간이 아닌 거미가 되고 만다. 내게 길을 물은 아테나 여신은 한둘이 아니다. 인간다움을 찾고 복 지을 기회를 주겠노라고 길을 묻는 인연이 셀 수 없이 많다.
글도, 글들의 집인 책도 사람이 쓴 것이다. 마흔 넘게 살며, 나를 돕고자 책을 남긴 얼굴 모르는 작가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길을 찾아왔다. 글이 쓰고 싶어 안달이나 오늘도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궁극의 목적은 도움 주기이다. 그러니 댓글 하나에도 광대가 승천하는 것일 게다.
삶의 여정 속에서 방향을 잃는 날이 올 것이다. 200유로짜리 지폐는 못 먹으며, 알아보지 못하는 언어만을 답하는 기계 한대만이 역을 지키는 종착역에 서 있는 날도 있겠지. 그땐 길 묻기 편안하게 느껴지는 2번 호박씨는 기꺼이 나가오는 그 누구에게라도 길을 묻겠다. 도와줄 것이라고, 길을 알려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