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으로 나가기 전만 해도 머릿속은 축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우리가 유럽을 가는 때는 그나마 휴가가 긴 여름이다. 20살에 배낭여행으로 유럽의 여름은 한 달이나 즐겼으니, 드디어 다른 계절을 만끽할 때가 왔다. 봄이면 지평선까지 펼쳐진 튤립을 보러 갈 것이고, 가을이면 베니스영화제를 가고, 겨울이면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리라는 로망을 심장이 터질 듯 가득히 부풀려댔다.
삶이란, 꽃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엔 어렸나 보다. 30대가 끝나가는 자락이었지만, 마음은 20살의 찬란한 여름 로마의 광장 어디쯤, 서늘한 포츠담 상수시 궁전 그늘 밑 어디쯤에 머무르고 있었다.
스위스는 절반의 독일어권, 절반의 프랑스어권인 나라다. 이탈리아가 근접한 스위스는 또 다른 모습을 품고 있기도 하다. 명절 시댁이 있는 해운대 바닷가의 야자수와 저 너른 만주 벌판의 살을 에이는 바람을 한국이라는 이미지로 한데 품기 쉽지 않음과 다르지 않다.
독일어권과 프랑스어권의 경계에 있는 바젤은 독일 문화권에서 큰 명절인 파싱 카니발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했다. 바젤 관광청에 들어가 카니발 코스를 입수한다. 내 로망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식구들을 끌고 스위스 바젤로 갔다.
가는 길에 뭐든 비싼 스위스 편의점에 들러 Fasnachtschüechli 한 봉지와 confetti 3 봉지를 산다. 인도의 난 정도의 두께로 튀긴 과자에 슈가파우더를 그득 뿌린 파싱의 대표 디저트다. 제멋대로 부풀어진 바삭한 과자가 제대로 파싱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부스러기 없이 먹을 수가 없는 과자이기 때문이다. 온 입에 슈가 파우더며 과자 부스러기며 먹은 티를 내면서 즐겨야 하는 것인데, 먹고 난 자리가 마치 파싱 날 거리 가득 나리는 컨페티와 똑 닮았다. 당시만 해도 8살 6살이었던 아이들이 원 없이 뿌리라고 세 봉지나 산 컨페티는 카니발 복장을 입을 용기는 없는 우리를 위한 추임새로 여겼다.
바젤 시내로는 차가 들어갈 수 조차 없었다. 이 큰 축제에 도로 통제는 당연한 것을 유럽 축제 초보인 우리 가족이 알 턱이 없다. 시내에서 가장 가깝다는 실내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지만, 6살 딸아이는 곧 보채기 시작했다. 즐기자고 왔는데 시작 전부터 고난의 행군이다.
축제 시작 1시간이 넘게도 전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퍼레이드를 보기에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관광청에서 입수한 퍼레이드 경로에 의하면 여기가 초입이다. 칭얼거리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콘페티도 뿌려야 하고, 사탕도 주워야 하니 바쁘다며 달래 보았다. 에버랜드와 롯데월드의 퍼레이드는 이 카니발 행렬의 짝퉁일 뿐이라며 큰소리도 쳐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긴 기다림의 끝에 그들이 요란한 음악과 현란한 의상과 함께 등장한다. 세상 뿌듯한 순간이라면, 아이들이 컨페티를 뿌려대며 퍼레이드 카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릴 때일 것이다.
좋자고 와서 죽자고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제야 한시름을 내려놓는 순간 그 퍼레이드 차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카니발 차들마다 테마가 다양해 지치지 않고, 알록달록함을 싫증 내지 않고 바라보던 순간에 다운증후군을 앓는 이들의 퍼레이드 차가 지나간다. 다운증후군을 발견한 영국 의사 John Down는 다운 증후군의 이름을 Mongolism으로 붙였다. 미간이 넓고 눈꼬리가 쳐 올라갔으며, 납작한 코와 작은 입을 가진 특징이 몽고계 동양인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병명이었으나, 후에 인종차별적 이름이라고 존 다운의 이름을 따 다운증후군이라 부른다.
다운증후군 환자들이 퍼레이들 차를 만들어 바젤 카니발 행렬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그날의 퍼레이드카가 내 앞을 지나쳤을 테다. 한국에서 만난 다운증후군 환자보다도 더 많은 이가 그 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울보가 되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제일 놀라운 점은 그들의 나이였다. 다운증후군의 유전병 특성상, 그들은 수명이 길지 않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제법 나이가 든 다운증후군 환자는 생전 처음 본 날이었다. 물론 병의 정도가 경미해서 오래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족히 마흔은 넘어 보이는 그 환자가 행렬 속에 있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주재원 파견 3개월 차쯤이었다. 이미 3개월 만에 유럽이 주는 낯섦과 독박 육아의 무게로 당장이라고 한국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한치도 망설이지 않을 만큼 버거웠다. 유럽에 왔으니 이런 것들 안 보면 시간 낭비라는 마음에 재촉하는 시간들은 사실 온전히 내가 설정한 것이었다. 밤의 한가운데 갑자기 떠진 눈으로 잠 못 이루면 날 괴롭히는 시계 초침 소리는 5년 내내 귓가에서 나를 괴롭혔다. 유럽의 시간은 나의 20대에도, 30대에 나와는 상관없이 흘러갔음에도, 차마 나를 탓할 수는 없어 유럽을 탓했다.
살기 팍팍한 곳이고, 인종 차별은 만연하며, 모든 것이 다르기만 하다는 불평에 휩싸여 지내던 3개월의 초짜 주재원에게 유럽이 가만히 말을 건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린 더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네가 아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갖고 있으니, 배우고 성장하라 말한다.
지금 살고 있는 한국 집을 처음 보러 온 날이었다. 교대역과 강남역의 한 중간인지라 강남역 9번출구에서 15분 정도 걸어야하는 위치의 아파트다. 아파트가 5분여 남은 거리의 작은 공원에는 으레 동네에 하나 있을 법한 노인정과 함께 서초농아인협회가 있다. 발견한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매일 협회 건물 옆 길마중 길을 1시간씩 산책한다. 농아인협회 문에는 수어통역센터 수업에 대한 공지가 붙어있고 볼 때마다 따끔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브런치 글감을 찾아 길마중길을 헤매는 호박씨가 있다. 작년 말에 전세계약을 갱신했으니 아직 호박씨에겐 만 2년이 남았다. 통역센터의 문을 두드릴 용기를 내야지라는 다짐의 1초들이 얼마나 더 쌓여야 실행에 옮길는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지긋한 다운 증후군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얼굴 모르는 그 환자의 보호자를 보았다. 퍼레이드 카에 보호자는 없었지만, 보았다. 다운증후군 환자의 특유의 말간 미소 뒤엔 내 눈에만 보이는 그의 부모 또는 형제, 또는 보호사 그리고 유럽이 있었다. 퍼레이드의 미소를 보았던 봄날, 콘페티처럼 벚꽃이 날리며 산책하다 말고 수어센터 향할 것이다.
파싱카니발이란? https://brunch.co.kr/@a88fe348897042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