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생 Sep 03. 2023

치매 엄마의 우당퉁탕 유쾌하고 개구진 하루[ 7]

치매 환자도 가족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유쾌한 일상으로 성큼

Background school vector created by roserodionova - ko.freepik.com

혼자 목욕을 하신다. 안전사고가 우려되니 문틈으로 지켜본다. 

샤워기를 몸 구석구석에 갖다 대더니만 엉뚱하게 욕실 벽면에도 한참을 뿌린다. 물이 아까워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꾸욱 참음. 욕실 가득 뜨거운 김이다. 샴푸도 혼자 펌핑해서 머리로 가져간다. 여태껏 못하는 줄 알았는데 혼자서 천천히 하신다. 그리곤 수도꼭지도 잠근다 샤워기를 제자리에 걸어둔다. 내 눈을 의심했다. 

수건으로 몸도 닦는다 이 모든 걸 스스로.

한편에 걸어놓은 목욕가운은 이불 뒤집어쓰듯이 두르고 나온다.

반갑고 고맙고 감사하다.


드라이기 사용법도 알려드렸다. 코드선을 꼽고 빼는 식으로 간단하게,

동작 동작에 매듭이 지어지면서 힘이 있다.

옆에서 일일이 간섭하며 친절히 해드릴 때 주저하던 그 몸짓들이 오늘은 사뭇 다르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보듯.

(그 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혼자 목욕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잊으신 거다.) 


다음 미션을 드린다 걸려 있는 옷을 모두 개켜 장롱에 넣어보시라.

옷 한 장 한 장 야무지게 방밖으로 턴다 거실에 먼지가 자욱해진다. 

침대 위에 방금 턴 스웨터를 펼쳐놓는다. 한참을 보더니 찡그리고 "개키는 걸 모른다" 하신다.

"괜찮아요. 그럼 내가 알려드릴 게. 이렇게 팔을 안쪽으로 모으고 몸통 부분을 크게 한번 접고 다시 한번 접으면 돼"

"알았다" 하시며 웃는다.

생애 처음으로 젓가락질 배우는 아이처럼.


저녁 간식을 드시고 다음 미션은 욕실에 가서 스스로 이 닦기.

가다가 잊으니 목적지 갈 때까지 목적을 말한다.

주방에서 욕실까지 10걸음 가는 동안 보이는 거 들리는 거에 모두 반응하는 엄마를 욕실까지 하나의 목표로 매진하게 하는 건 너무나 힘들다. 기억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그래도 본인이 끝까지 할 수 있게 독려해야 하므로.


걸음마다 이 닦으러 가는 중임을 일러 드린다.

세 걸음 내디뎠을 때 내 말도 세 번째다. “엄마 이 닦으러 가셔?”를 욕실에 도착할 때까지 처음인 양 말씀드릴 계획이다.

엄마도 처음 대답인 양 “응 맞아”를 반복했는데, 네 번째 물음에 예상치 못했던 소리가 들린다.

“생각이 변했어” 하시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것도 평소 걸음보다 빠르게.

아하~~ 엄마도 안다 내 목표를,

순간 나를 골려주고 싶은가? 아님 이것도 본능?


남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건 인간본성과 무관한가 보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이성은 없어지고 본능, 감정만 드세지는 엄마를 보며 인간 날것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의무감과 보편적인 상식에서 벗어나 본능대로 행하는 엄마는 퍽이나 자유롭다


치매환자의 일상을 보며 제 몸으로 숨 쉬고 제 손으로 먹고 싸고 제 손으로 뒤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매 순간 실감한다.

이 자연의 몸에 무엇을 덧씌워 잘나 보일 게 무어냐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매 엄마의 우당퉁탕 유쾌하고 개구진 하루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