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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Sep 27. 2021

하굣길, 비가 내리면

너는 하교인데, 엄마는 등교

아이가  초등학교 가고 나서 달라진  중 하나가 통학버스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비가 오든, 짐이 무겁든 유치원 버스가 오는 곳까지만 가면 됐는데 지금은 무조건 초등학교 교문 앞까지 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복장도 더 많이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코로나 때문에 원격 수업이라도 할라치면, 사물함에 뒀던 교과서를 죄다 집에 들고 와야 하니 가방이 무겁고, 원격 수업이 끝나면 다시 교과서를 학교에 들고 가야 해서 가방이 무겁다. 새 학기 교과서를 미리 받은 날 역시 무거워진 책가방을 들어주러 가야 한다. 게다가 말짱했던 날씨가 갑자기 비로 바뀌면 엄마는 무조건 학교 정문에 우산을 들고 대기하고 있어야 다. 직장에 출퇴근하는 엄마였다면 사정상 못 간다는 자기 위안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집에 있는 엄마는 마치 직무유기라도 하고 있는 것 마냥 좌불안석이다. 아이를 자립심 있게 키우려면 안 가는 게 맞을 텐데 하는 희미한 우려 속에,  있으면서 아이가 비 맞아 감기 걸리게는 안  해야 하지 않냐는 모성애의 탈을 쓴 자격지심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우산을 쓰기에도 애매한 보슬비 내리던 날, 아이는 집으로 와야 하는 시간이 지나도 집에 오지 않았다. 핸드폰은 있지만 잘 들고 다니지 않는 턱에 연락도 할 수 없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가,  하굣길에 친구와 장난치느라 늦는 건가 걱정하던 중에 다행히 아이가 집에 도착했다. 내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어보니,

오늘 비가 왔잖아요.
다른 엄마들이 교문 앞에 서 있어서
엄마도 당연히 올 줄 알고
교문에서 기다리다 오느라고요.
엄마는 비 오는데 왜 안 왔어요?


우산 안 써도 될 정정도로 약하게 오는 비인데도 아이는 내가 오길 기다렸다니 이건 잘못된 육아인 것 같았다. 

엄마가 비 오는 날 학교 가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부슬비 정도는 맞고 와도 괜찮아!
엄마가 갈 때는 비가 억수같이 오는 때지.


평소보다 교문 앞에 있는 엄마들이 적어서였을까?평소 같으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을 아이가 이내 수긍을 하였다. 그 일로 인해 나는 폭우가 아닌 한, 어지간하면 학교 출입을 삼가기로 결심하였다.


추석 연휴 바로 앞 평일, 금요일.

태풍이 오후 5시쯤 부산을 지날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아이는 12시 넘어 하교하니 우산만 잘 챙겨주면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안일을 하며 계속 창 밖 상황을 주시하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긴 했지만 억수 같은 비는 아니었다.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청소를 끝내고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열변을 토했다.

엄마, 나 우산 다 부러졌어요! 친구들도 내 우산 보고 다 버려야겠다고 했어요. 바람이 너무 세서 우산을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도 뒤집어졌어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이고, 우리 아들 고생 많았구나! 그래도 태풍 오는데도 혼자서 우산 쓰고 오다니 기특하네! "

나는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계실까 하고 왔는데,
엄마 편안해 보이네요?"


정곡을 찔렸다.

아들아, 엄마는 유구무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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